우리가 브라질에 졌다

입력 2006-08-30 13:15 수정 2006-08-30 13:15
우리가 브라질에 뒤졌다.” – 축구 이야기가 아닙니다.

 

통계청에서 2005년 우리나라 경제성적표를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브라질은 11위, 한국은 12위였습니다.

 

지난 8/28일 발표한 '통계로 본 세계 속의 한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7,875억달러로 전년보다 15.7% 증가했지만, 세계 12위로 오히려 한 계단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반면에 2004년 세계 15위였던 브라질은 31.8%나 늘어난 7,961억 달러로 11위로 올라섰고요.

 

게다가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6,291달러로 세계 29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인당 2만불시대를 열겠다는 정부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데 정작 받아 든 경제성적표는 여전히 불만족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한때 우리와 더불어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주목을 받았던 싱가포르의 경우 1만불에서 2만불로 가는데 약 5년 정도가 걸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1995년 1만불을 넘어선 우리는 아직도 2만불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과 독일 등의 선진국의 경우 10년 정도가 걸렸습니다. 그러니 우리 성적표가 아직은 완전한 낙제점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그럼 국민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제학에서 ‘소득=생산량’입니다. 한 나라가 물건과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서 지불하는 가격이 그것을 받는 사람입장에서는 소득인 것입니다. 따라서 생산량을 많을수록 소득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불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생산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1만불에서 2만불로 가는 사이에 경제성장률에 비해 설비투자증가율이 더 높았다고 합니다. 설비투자를 많이 해야 그 힘을 바탕으로 생산량이 더 늘어납니다.

 

미국이 2만불이 되는 기간 동안 경제성장률이 3.2%인 반면, 설비투자증가율이 4.8%였고 독일이 2.3%(경제성장률)과 4.1%(설비투자증가율), 싱가포르가 9.3%(경제성장률)과 10.8%(설비투자증가율)이었습니다.(자료참조: 최성환著 직장인을 위한 생존경제학 P312, 원앤원북스) 하지만 우리의 경우 현재 경제성장률은 4.5%인데 설비투자증가율은 3.3%에 불과합니다. 향후 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부족하다는 거죠.

 

그럼 왜 설비투자증가율이 낮은 걸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의 주도자는 바로 ‘기업’들입니다. 그런데 생산의 주체인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럼 돈 버는 데는 도사들인 기업들이 왜 투자를 하지 않을까요?

 

여기에는 정부의 규제가 큰 몫을 차지한다고 봅니다. 얼마 전 창업을 해서 자그마한 회사를 10여년 정도 운영하고 계신 사장님 두 분을 만났습니다. 요즘 사업하기 너무 힘들다는 거죠. 제일 힘든 게 뭐냐고 물으니 각종 규제라는 겁니다. 외국계 기업 CEO인 일본인 선배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한국이 동북아의 허브가 되겠다고 하는데, 절대 그렇게는 안될 거다. 이렇게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에 누가 찾아 오겠느냐?”

 

과거에 비해 경제규제는 더욱 늘어 났습니다. 1999년 7,124건이든 정부 규제는 2005년 현재 7,995건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사실 규제는 제 힘으로 뭔가를 못하는 불완전한 존재에게나 어울리는 것입니다. 규제를 하는 쪽은 완벽하고 규제를 당하는 쪽은 남의 도움이 필요한 불완전한 존재라는 구도가 성립되어 버립니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논리에 대치되는 구도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규제가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정부로서의 할 일은 분명 있습니다. 다만 규제가 단순하고 명확해야지, 복잡하고 시류에 따라 자주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더욱이 자본주의 경제에서 ‘실제로’ 경제주체들을 규제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란 걸 잊어서는 안됩니다.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은 개인의 이익을 공공의 이익과 조화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글귀가 시사하는 점은 크다 하겠습니다.

 

모든 개인은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자신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되도록 노력한다. 각자가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이지 사회의 이익이 아니다. 그러나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에서 가장 이로운 방향으로 유도된다. (중략) 각자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목적에 기여하게 된다. –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 中에서

 

우리가 저녁거리를 장만할 수 있는 것은 고깃간 주인과 빵집 주인들이 우리의 저녁거리를 걱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저녁거리를 손쉽게 장만할 수 있다. 우리가 의존하는 것은 그들의 인류애가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이다. 우리는 또 그들에게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켜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면 된다고 말한다. –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中에서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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