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시장, 만만하게 보지 마라

입력 2006-07-05 11:16 수정 2006-07-07 13:30
1인당 국민소득 640달러, 대졸 초임자의 한 달 급여가 약 100달러, 도시 근로자 점심 한끼 가격이 대략 0.5달러. 이게 현재 베트남의 경제 수준을 대략적으로 보여 주는 수치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1986년 도이머이(개혁) 정책 이후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먼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흔히들 베트남을 우리나라의 70년대 초반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수치만으로 보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한창 경제개발에 피치를 올렸던 우리나라의 1970년대 초반. 어쩌면 사람들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빡빡하게 짜여진 사회구조와 안정화된 경제환경 때문에 급격한 변화도, 엄청난 대박이 터지는 기회도 많지 않는 세계 12~13위의 경제대국인 2006년 대한민국보다 말입니다.

 

“70년대 강남개발 할 때 강남 쪽에다 땅이라도 조금 샀더라면, 아니 IMF 때 강남에다 아파트 한 채라도 사놓았더라면…” 아마 한번쯤은 이러한 상상을 해보았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비행기로 4시간만 가면 닿는 곳에 있는 베트남이란 나라가 있습니다. 최근 4년간 7%이상의 고도성장을 이어가고 있고, 2005년에는 8.4%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며 무섭게 성장하는 베트남 말입니다. 현재 수도 하노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홍강 건너편에는 한창 신도시 건설이 진행 중입니다. 한국의 70년대 강남개발과 비슷합니다. 호치민시 증권거래소에서는 이제 겨우 20여개 업체이지만 주식거래가 한창 진행되고 있답니다.

 

이쯤 되면 마치 과거 70년대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해 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최근 들어 베트남에 투자를 하겠다며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이나 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70년대 경제 개발의 시기를 겪은 한국으로서는 과거의 축적된 관록(?)으로 베트남 시장을 요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 보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핸드폰 제조업체인 ‘K社’ 역시 베트남으로 진출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삼성, LG, 모토롤라가 판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자신의 브랜드를 달고 핸드폰을 팔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한계가 있다. 차라리 베트남에 가서 베트남 기업과 합작회사를 설립해서 베트남 자체 브랜드로 물건을 팔자. 우리의 기술력과 베트남의 애국심을 활용하여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자. 특히 베트남은 미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누구보다도 애국심이 강한 민족이 아닌가!” 이게 K社의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베트남의 상황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확! 하는 하노이 공항의 열기와 함께 전해진 것은 노키아, 삼성, 모토롤라와 LG의 광고 간판들이었습니다. 2006년의 베트남의 경제 수치는 우리의 70년대 초와 비슷한 것 같지만 정작 하노이를 뒤덮고 있는 상품들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미 핸드폰은 노키아, 삼성, 모토롤라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가전제품은 SONY, Panasonic, LG, 삼성이라야 통합니다. 자동차는 토요다와 대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교통수단인 오토바이는 YAMAHA, HONA, SUZUKI가 대부분입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할 때는 과거 선진국이 밟았던 단계적인 절차를 그대로 밟지는 않나 봅니다. 적당한 선에서 스킵(skip)을 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역시 유럽처럼 산업혁명의 과정을 겪지 않았으니까요. 베트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겪었던 70년대 초와 지금의 베트남은 확연히 다릅니다. 베트남에는 한국의 70년대에서 2006년까지가 공존합니다. 그들이 경제 개발을 시작할 때부터 다국적 기업들은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베트남의 소비시장을 장악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자생력을 가져보기도 전에 이미 브랜드에 길들여진 게 바로 현재 베트남의 소비시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다 할 브랜드가 없는 한국의 중소기업인 K社가 현지회사와 합작법인을 세워 품질과 애국심만으로 베트남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은 너무 위험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

K社 부사장과 동행을 했던 저는 개인 사업을 하면서 한국인들 대상으로 가이드를 겸하고 있는 30대 중반 베트남 현지인에게 물었습니다.

나 : “만약에 베트남 자국 브랜드 핸드폰과 삼성 애니콜이 있으면 어느 걸 쓰겠습니까?”

가이드 : “그야 당연히 삼성 애니콜을 쓰죠. 베트남 건 못 써요.”

나 : “그럼 둘 다 품질이 비슷하다면 어떤 걸 쓰겠습니까?”

가이드 : “그래도 삼성 애니콜을 쓰죠. 같은 품질이라도 삼성 애니콜이 더 폼 나잖아요.”

나 : “그럼 베트남 브랜드가 품질이 더 좋다면 어떤 걸 쓰겠습니까?”

가이드 : “에이~ 베트남께 품질이 더 좋을 리가 있나요.”

나 : “그래도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이기고 애국심과 자존심이 강한 국민이라 그러던데.. 자국 브랜드를 키워야 되지 않나요?”

가이드 : “물론, 말은 그럴 듯 하지만 사람들은 애국심 그런 거 별 관심 없어요. 그건 과거 전쟁을 했던 할아버지 세대나 통하는 거죠. 우리는 돈 많이 벌어서 내 집 장만 하고 좋은 차도 사고 애들 잘 키우는 게 최고의 목표죠.”

 

물론, 개인 마다 가치관은 다릅니다. 저와 이야기를 나눈 베트남 현지 가이드의 이야기가 모든 베트남 사람들의 마인드를 대변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그의 그러한 답변이 의외였기는 해도 그리 터무니 없이 들리지는 않았던 건 유독 저의 착각만은 아닐 것입니다.

 

얼마 전 베트남을 다녀와서 느낀 점을 두서 없이 적어봤습니다.

 

*추신 : 이 글을 쓸 때 즈음 TV에서 PD수첩을 방영하더군요. 한미 FTA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두렵고 암울하더군요. 꼭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인터넷 VOD 서비스도 가능하니까요...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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