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것이 잘 팔린다? : Simplicity Trend

입력 2008-09-03 00:10 수정 2008-09-02 21:20
우리의 하루는 매우 복잡해졌다. 누구나 모바일 단말기를 다루며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고, 이메일도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사용하는 기계들의 종류도 엄청나게 늘었다. 알아야할 매뉴얼도 많고, 새롭게 접한 기능들도 많다. 과거에는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들이 이제는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각종 문명의 이기들이, 이제는 우리를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어버린다. 모든걸 버리고 10~20년 전으로 돌아가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 지금보다는 더 많은 시간이 나에게 주어질 것이다. 문명의 진화가 우리를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었다면, 그것을 다시 되돌리려는 노력에서 단순함이 대두된다. 문명의 이기를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좀더 단순하게 만들어서 복잡성을 줄이는 것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단순함을 지향하는 것도 진화의 과정

세계적인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 (Ludwig Mies van der Rohe)는 Less is More (적을 수록 좋다) 라고 했다. 미니멀리즘의 대표적인 슬로건이 된 이 말은 건축에만 한정되지 않고 패션에도 영향을 미치고, 디지털기기를 비롯한 각종 제품 디자인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해가고 있다. 미니멀리즘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 생산과 소비에서의 트렌드가 심플리시티(Simplicity)라 할 수 있다. 사실 미니멀리즘과 심플리시티는 서로 다르지 않다. 이미 예전부터 우리는 단순하고 간결한 것에 대한 지향성을 가져왔었다. 그것이 더욱 확산되어 제품과 소비 영역까지 진화하기에 이른 것일 뿐이다.

단순함은 오히려 진화이다. 기술적 진화의 초기 단계에서는 복잡하고 기능적인 것만 드러난다. 어느정도 진화가 이뤄져야 그 속에서 단순함을 발휘해서 복잡하고 기능적인 것을 분별해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단순함을 지향하는 것은 소비자나 생산자 모두에게 지극히 순조로운 진화이다.
유행은 늘 이전의 것에 대한 변화를 꾀한다. 디지털시대의 돌입은 우리에게 복잡성과 기능성, 과잉을 더욱더 많이 안겨주었다. 새로운 유행을 위해서는 이를 전면적으로 개선하고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나온 것이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화려한 것을 간결하게, 기능과 기술 위주인 것을 사용성 위주로 바꿔놓는 접근이다. 즉, 단순함을 지향하는 것도 진화이다. 인간적인 것을 위하는 소비자의 진화, 새로운 소비자 욕구를 만들어내기 위한 생산자의 진화가 합쳐진 것이다.


과잉과 복잡성의 시대, 단순함이 미덕

물질의 풍요, 기술과 정보의 과잉 시대에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살고 있다. 일종의 과부하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부하는 소비자의 필요성이라기보다 생산자의 필요성인 경우가 많다. 생산자는 최대한 새롭고 많은 것을 소비자에게 팔아야 할 이유를 가지기에 새로운 기능과 기술, 새로운 표현과 유행을 모두 담아내려고 애쓰게 된다. 그러나 소비자에겐 이러한 과잉과 복잡성이 부담이 된다. 아울러 새로운 기술은 더 많은 기능을 낳는다. 추가되는 기술에 따른 기능이 계속 늘어나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기계나 물질에는 아주 다기능, 고기능의 복잡한 제품들이 늘어난다. 여러가지 기능을 복합적으로 담아내는 컨버전스도 이런 경향을 더욱 부추겼고, 기술 만능주의와 디지털신드롬도 이를 부추겼다. 그러나 우리는 금새 깨닫는다. 과유불급의 의미를 말이다. 가령, 자신이 가진 핸드폰에 있는 수많은 기능 중에 직접 사용하는 것은 얼마나 될까? 과잉이자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기계나 물질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하지만, 과잉과 복잡성은 자칫 기계나 물질을 위해 사람이 존재해야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온 경향이 미니멀리즘(Minimalism), 심플리시티(Simplicity)이다. 더 줄이고, 더 단순하게 만드는 것에서 새로운 소비 욕구가 만들어진다. 단순함은 우리는 더욱더 편리하게 만들고, 기계와 물질에 대한 우리의 주도권을 더욱더 높여준다. 결국 인간의 심리적 안정과 편리를 도모한 것이 단순함이 만들어낸 트렌드의 배경인 셈이다.

단순함은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줄여준다. 바쁜 현대인에게 단순함은 아주 강력한 유혹이 된다. 단순한 기계나 제품을 비롯해, 간편조리식품이나 패스트푸드도 이런 단순함의 산물이다. 인스턴트적인 연애나 쉽게 끊고 맺을 수 있는 디지털 인맥도 이런 경향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뭐든 복잡하고 어려우면 우리는 더 피곤하고 불편하다. 참을성도 부족하고, 빠른 속도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단순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이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능력이자 비즈니스 기회

닌텐도 DS와 Wii 열풍은 놀라웠다. 휴대용 게임기 시장의 판도를 바꾼 닌텐도 열풍의 진원지는 쉽고 단순하다는 것이다. 화려한 3차원 그래픽과 복잡하고 고도화된 게임을 구현하는 소니의 PSP와 달리, 닌텐도의 DS는 단순한 2차원 게임을 지원하고, 좀더 다양한 게임을 지원하는 Wii도 어렵지 않은 게임들이 주류이다. 즉, 게임의 룰을 익히기 위해 시간을 투여할 필요가 없을만큼 단순하고 쉬운데다, 게임방식마저도 단순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10대나 20대의 전유물이던 게임기를 전연령대로 확산시킨 덕분에 닌텐도는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단순함이 만든 비즈니스 성공의 대표적 사례인 것이다.

아이팟은 음악 기능에만 충실한 MP3플레이어이다. 아이팟 이전에 세계시장을 주름잡던 아이리버를 비롯한 주요 제품들에는 음악을 재생하는 기능 외에 부가 기능인 보이스 레코더, 외장하드 등 다양한 기능들이 있었다. 반면 아이팟에서는 이러한 부가 가능이 필요할 경우에는 별도 구매를 통해 필요한 사람만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즉, 모두에게 다양한 부가기능을 통합해서 팔지는 않았던 것이다. 컨버전스에 맞선 디버전스인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 디자인의 단순함도 한몫했다. 아이팟은 발대 당시부터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순백색의 심플한 디자인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모든 아이팟 시리즈가 가진 공통점은 단순함을 근간으로 하는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이젠 화려한 치장대신 기본적인 것만 남겨야 한다. 성능은 하루가 다르게 고도화되고 있지만 디자인은 단순해진 결과다.

그리고, 구글이 야후에 역전승을 거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탁월한 검색엔진으로서의 기술도 있지만,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는 사이트 디자인 구성의 미니멀리즘에도 공을 돌려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는 기술로 사양의 차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선택 기준’은 사용성이다. 그리고 이를 담아내는 최고의 그릇은 단연 디자인이다. 사용성이 디자인과 결합해서 구현해낸 답이 바로 단순함이고, 이는 사용자의 편리와 즐거움으로 이어진다.


단순함의 접근은 기업의 생존전략

컨설팅 업체인 베인&컴퍼니 조사에 따르면 복잡성으로 인해 기업이 치러야 하는 비용은 전체 제품 원가의 10~25%를 차지할 정도라고 한다. 즉, 복잡성을 단순성으로 바꾸기만 해도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개선될 수 있다는 말이다. 기업 내에서도 업무에서의 복잡한 절차를 줄이는 것에서부터, 제품 자체나 마케팅에서도 단순하고 명확한 접근을 하는 것을 통해 단순성이 구현되어지고 있다. 이를 통해 낭비를 줄이고, 차별화도 이뤄낼 수 있고, 결정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할 기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복잡한 사회, 급변하는 시대에 조응하며 발 빠르게 진화하는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기업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과감히 문어발식 접근을 줄여나가 사업의 단순함을 갖추는 것에서 시작하여, 사업 내에서도 조직 프로세스의 단순함, 의사결정의 단순함, 소비자 욕구를 대응하는 것에서도 단순함을 활용하는 접근 등으로 단순함의 가치를 전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아울러, 소비자의 새로운 욕망을 찾아내기 위해서 소비자 이해에 좀더 투자해야 한다. 복잡하게 만들기는 쉬워도, 단순하게 만들기는 결코 쉽지 않다. 결국 소비자의 욕구, 사용성을 이해하는 기업만이 단순함이 만드는 비즈니스 기회를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www.digitalcreat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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