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M&A, 애국심에만 호소할 순 없다.

입력 2006-03-03 13:33 수정 2006-03-03 17:41
요즘 ‘칼’이 장안을 시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기업사냥꾼이라 불리는 ‘칼 아이칸’의 KT&G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가 바로 그것이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KT&G가 공기업의 민영화 사례 중에서 가장 우수한 사례라고 치하를 했었습니다. 2005년에는 KT&G가 ‘기업지배구조 최우수 기업’이라며 시상까지 했습니다. 특정 기업이 주인이 되면 특혜시비가 있을 수 있다고 해서 롯데 같은 대기업이 경영을 하겠다고 할 때 정부는 이를 막았습니다. 이렇듯 ‘주인 없는’ 기업이라 그런지 ‘칼 아이칸’의 먹이감으로 안성맞춤이었나 봅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다 보니 이제서야 정부는 경영권 방어 수단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 수단(제 칼럼 ‘166.[금융]M&A : 처녀가 쓰고 있는 왕관에…’ 참조) 중에서 현재 정부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이 바로 ‘독약처방(Poison Pill)’과 ‘차등의결권’ 제도라고 하더군요. 이러한 제도가 어떤 것이길래 적대적 M&A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는 걸까요? 한번 알아보도록 하죠.

 

■ 독약처방(Poison Pill)

 

회사의 정관에다 ‘독약(毒藥)’과 같은 조항을 넣어두어 외부의 세력이 적대적 M&A를 하려고 해도 그 조항 때문에 인수·합병을 도저히 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방법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누구든지 우리 회사의 주식을 30%이상 취득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회사는 새롭게 주식을 더 발행해서 30%이상 취득한 자를 제외한 나머지 주주들에게 자동적으로 주식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한다.” 라는 조항을 넣어 두는 거죠. 그러면 제아무리 ‘칼 아이칸’ 같은 사람이 큰 돈을 들여서 주식을 사더라도 회사는 주식을 더 발행해서 칼 아이칸만 빼고 나머지 주주들에게 주식을 나눠 주게 되므로 칼 아이칸의 지분율은 다시 떨어지게 되겠죠.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만 된 칼 아이칸으로 하여금 스스로 물러나게 만드는 거죠.

 

이러한 독약처방은 1982년 미국의 Martin Lipton이란 변호사에 의해 발명된 제도인데요.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한 대표적인 방법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방법이죠.

 

■ 차등의결권제도

 

미국의 Roper Industries, Inc. 라는 회사의 정관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고 합니다. “4년 미만의 기간 동안 회사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의 의결권은 1주당 1개이며, 4년 이상의 주주의 의결권은 1주당 5개이다.” 이렇듯 ‘모든 주식은 평등하다’라는 ‘1주1의결권의 원칙’이 아니라, 주주의 성격이나 주권의 종류에 따라 1주의 의결권을 차등하여 부여하는 제도를 ‘차등의결권제도’라고 합니다.

 

이 역시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겠죠. 해당 회사의 주식을 예전부터 계속 가지고 있었던 주주가 더 많은 의결권을 가지고 있으니 제 아무리 ‘칼 아이칸’이라고 해도 갑작스럽게 사들인 주식으로는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하기가 쉽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이와 같이 적대적 M&A의 효과적인 방어 수단들에 대해 재계는 계속적으로 도입을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도가 기존 대주주의 기득권을 너무 보장해 준다는 비난도 없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동안 소액주주나 경제시민단체들의 반대로 만만치 않았죠.

 

언제나, 항상 그랬듯이 KT&G사태가 터지고 나니 이제서야 정부가 부랴부랴 도입을 검토하고 있답니다. 하지만 정부가 이 제도를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상장회사가 이를 당장에 실전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헌법이나 다름없는 ‘정관’을 고쳐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회사가 정관을 고치기 위해서 주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것도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입니다. 특별결의 사항의 경우 발행주식총수의 과반수가 주총에 참석해서 그 참석한 의결권의 2/3이상이 찬성을 해야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자~ 요즘처럼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곤혹을 당하고 대기업의 지배구조에 반기를 들고 있는 사회분위기에서 ‘독약처방’이나 ‘차등의결권제도’를 소액주주들이 얼마나 환영하며 찬성해 줄지 의문이 듭니다.

 

이는 어쩌면 우리나라 대기업의 자업자득일 수도 있습니다. 두산그룹의 가족분쟁이나 현대그룹의 형제의 난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간 대기업의 총수 가문들은 많지 않은 지분으로 상장기업을 가족기업처럼 운영해 왔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소액주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외국투기자본이 들어와서 회사를 먹겠다고 들 합니다. SK-소비린이 그랬고, 삼성물산-헤르메스가 그랬습니다. 이런 경우 과연 대기업 경영자들이 소액주주들의 애국심에만 호소할 수 있을까요? (물론, KT&G는 약간 성격이 다른 사안입니다만…)

 

하나의 기업을 하나의 국가로 본다면, 지금 삼성이나 SK 들은 외세의 침략에 전전긍긍하는 구한말의 조선과 같습니다. 무능한 군주와 탐관오리의 횡포로 백성들이 민심을 돌린 상태에서 외세의 침략을 맞이한 조선 말입니다. 그래도 터전을 잡고 살아야 하는 국가라면 애국심이 솟아 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라도 주식을 팔아버리고 떠나면 그만인 회사일 경우 외국투기자본이 침략하니 우리를 좀 도와달라고 경영진이 아무리 호소해봐도 이미 실망한 소액주주들이 손을 들어 줄지는 장담 못합니다. 도입이 필요하다는 ‘독약처방’이나 ‘차등의결권제도’가 바로 그러한 겁니다.

 

모든 제도란 게 잘 쓰면 약이 되고 잘못 쓰면 독이 되는 것입니다. 부디 이러한 제도들이 제대로 활용되어 머니 게임을 노리는 적대적 M&A 세력에는 효율적 방어 수단이 되면서 반면에 대기업의 불합리한 지배구조 구축에는 악용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영진부터 소액주주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에 앞장 서야 할 것입니다. 그게 소액주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대주주 및 경영진을 위한 것이란 걸 명심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대주주 및 경영진이 개선의 의지를 보일 때 이를 넓은 아량으로 받아 들여주는 소액주주의 성숙된 자세도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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