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사전] 헤드헌터가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구직자들에게

입력 2015-06-30 09:21 수정 2015-09-22 14:42
 

#3_헤드헌터 vs. 구직자


 

청년실업률이 치솟고 있습니다. 체감실업률은 10%를 넘었다고도 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취업에 목마른 취준생들, 이직을 꿈꾸는 직장인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실 '꿈의 직장' '신의 직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의 가치를 조금 더 인정받고 야근 없는 직장에 정착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더 나은 직장을 꿈꾸며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에게 헤드헌터는 어둠 속 한 줄기 빛이자 동아줄 입니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백기는 사수 강대리가 마음에 들지 않고, 주어지는 일에 불만이 많습니다. 사람들과의 잦은 마찰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띠리링' 헤드헌팅 전문업체의 문자를 받고 고민을 시작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이곳 원인터, 여길 떠나면 더 좋은 곳에 갈 수 있을까? 이 헤드헌터에게 나를 한 번 맡겨볼까 고민을 했겠죠.

 

헤드헌터의 문자를 보며 이직을 고민하는 장백기 (출처: tvN 미생 캡쳐)



 

헤드헌터는 정말 내 취직을 도와주는 도우미일까?


 

<미생>에서는 헤드헌터와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백기의 모습 까지만 보여줍니다. 마치 궁지에 몰린 직장인에게 해결사이자 고민상담사 같은 모습인 헤드헌터, 그런데 정말 이들이 내 취직을 도와주는 선의의 도우미일까요?

 

헤드헌터(혹은 서치펌)를 생각할 때 사람들은 대개 나의 이직을 도와주고, 마법사처럼 나를 위한 직업을 찾아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합니다. 헤드헌터는 전문가 이니까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나의 장점과 흥미를 파악해서 나에게 '맞춤' 직업을 추천해줄 것이라고 장밋빛 희망을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헤드헌터가 과연 내 취직을 도와주는 도우미 일까요?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구직자가 모를 뿐이지, 사실은 구직자-헤드헌터 사이에서는 헤드헌터가 갑입니다.

 

구직자에게는 사실 헤드헌터가 갑(甲), 그런데...


 

희망에 목마른 구직자들은 헤드헌터가 갑 인것을 눈치채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굉장히 친절하니까요.

 

헤드헌터를 접촉해 보면 알겠지만, 헤드헌터들은 나의 고민 상담을 굉장히 잘 해줍니다. ‘연봉 500만원만 더 받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꼭 외국계로 이직하고 싶어요’ 다양한 요구 조건을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하면 헤드헌터는 진지한 얼굴로 이를 들어주고, 어떤 때는 현실이 그렇게 녹록치 않다는 따끔한 조언도 곁들이면서 마치 인생 선배이자 멘토처럼 상담해줍니다. 한 시간쯤 상담을 했는데도 상담료를 달라고 하지도 않고, 이직에 성공하면 성공 보수를 달라면서 계약서를 내밀지도 않습니다. 내가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는 동안, 나를 대신해서 좋은 자리, 나에게 알맞은 자리가 있는지 검토해서 연락을 준다고 순순히 대답합니다. 한 시간 쯤 상담을 했는데도 상담료를 달라고 하지도 않고, 이직에 성공하면 성공보수를 달라고 계약서를 내밀지도 않습니다. 아니, 돈도 안 받고 내 커리어를 위해 힘써준다? 마법사가 아니라 거의 요정이라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친절한 헤드헌터가 사실은 나를 위한 요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돈'의 흐름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지난 글들에서 이야기 했듯이 갑을 관계에서는 ‘누가 돈을 주는지’가 힘의 방향을 설정하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나(구직자)는 헤드헌터에게 서비스 금액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상담료도 내지 않고, 성공하면 성공보수를 준다고 약속한 적도 없죠. 그럼, 헤드헌터라고 해서 땅을 파면 돈이 나오지 않을텐데 헤드헌터에게 돈을 주는 갑이 누굴까요? 헤드헌터들의 진짜 관심사이자 손님은 바로 그들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겠죠?

 

채용기업이 갑(甲)이고 헤드헌터가 을(乙), 구직자는 병(丙)


 

바로 채용기업입니다. 헤드헌터에게는 돈(수수료)을 주는 채용기업이 갑입니다. 그리고 갑이 원하는 상품(구직자)을 가져다 주는 것이 그들의 책무이죠. 말하자면 채용기업이 '진짜' 갑(甲)이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헤드헌터가 을(乙), 그리고 헤드헌터가 친절하게 구슬러서 데려오는 상품인 구직자는 병(丙)이라는 3자 공식이 세워집니다.

 

헤드헌터는 자신들이 추천한 인재가 채용될 경우, 수천만원을 넘나드는 성공보수를 받습니다. 그 돈을 주는 채용기업이 헤드헌터에게는 상사이자 갑 입니다. 헤드헌터에게 을인 구직자는? 결국 병(丙)이 되겠죠.

 

조금 더 돈이 오가는 구조를 살펴볼까요? 헤드헌터는 채용기업으로부터 인사채용과정을 일임 받는 아웃소싱(outsourcing) 업체입니다. 최대한 많은 수의 구직자를 만나보고 인력풀(pool)에 등록한 후, 채용기업의 입맛에 맞는 준비된 인재를 공급하는 것이 헤드헌터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 지원자의 커리어 목표와 적성을 함께 고민해주는 헤드헌터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갑이 원하시는’ 인재를 보급하기 위한 밑조사의 일부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채용기업-헤드헌터-구직자로 이어지는 관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힘 없는 병(丙), 구직자만 손해를 보게 됩니다.

 

헤드헌터는 채용기업을 위해 일하는 조직이다, 구직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약간은 각색된' 한 구직자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 구직자는 헤드헌터를 통해 외국계 기업과 면접을 한 후, 면접 결과를 헤드헌터로부터 전해듣습니다. 해당 기업 담당자가 채용의사를 밝혀 왔으나 연봉은 딱 500만원 밖에 못 올려준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헤드헌터를 통해서' 채용기업의 의사를 전해들었다는 것입니다. 채용기업 인사담당자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 아닌 것이죠. 대개 헤드헌터를 통해 채용하는 기업들은 이처럼 헤드헌터의 입을 빌려 구직자와 연락을 취합니다. 그리고 이는 커뮤니케이션을 왜곡시키기는데 일조합니다.)

 

꼭 그 기업에 가고 싶었던 구직자는 연봉 수준이 아쉽기는 하지만 결국 Ok를 하고 맙니다. 하지만 입사 이후 우연히 새로운 상사에게 이야기를 듣게 되죠. 희망연봉이 생각보다 낮아서 의아했다는 것이죠. 단돈 500만원만 올려달라고 하길래, 왜 그 정도만 부르는 건지 궁금했다고 묻더랍니다. 알고 보니 중간에서 말을 전한 헤드헌터가 '희망연봉을 낮게 잡아야 오퍼를 받을 확률이 높겠지'하고 생각하고 구직자에게 ‘채용기업 측에서는 이것밖에 못 준다더라’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낮은 연봉을 요구한 이 구직자는 성공적으로 이직을 하기는 했지만, 성공보수를 받기 위해 구직자에게는 불이익인 딜(deal)을 한 헤드헌터가 과연 구직자의 입장에서 도우미 였을까요? 구직자가 직업 채용기업과 협상했다면 더 올려 받을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연봉계약을 마쳤으니 어찌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억울하지만 을(乙)이자 병(丙)인 구직자가 별 도리 없이 포기했다는 슬픈 결말 입니다.

 




 

몇 가지 당부 사항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우선, 돈을 주는 갑(채용기업)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을(헤드헌터)을 부정적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직장인들은 상사의 입맛에 맞는 아웃풋을 내려고 노력하는게 당연하듯이, 자연스러운 조직의 생리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를 모르고 헤드헌터에게 접근을 하는 순진한 구직자들은 스스로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게 될 수도 있고,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무작정 헤드헌터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는게 아니라 헤드헌터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구직자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숨겨진 갑을관계를 이해함으로써 헤드헌터를 대하는 방식을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헤드헌터는 그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기업의 채용 트렌드를 읽고, 지원자들의 역량과 성격을 파악하고, 더 나아가서는 미래의 산업과 경제의 향방을 읽어서 이에 맞춘 구직자의 이동을 돕는 전문가들입니다. 정보력이 뛰어나고 사람 파악 능력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구직자들은 헤드헌터와의 만남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고, 통찰력(insight)을 배우는 데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정말로 성공적인 취직과 이직을 원한다면, '스마트한' 헤드헌터 사용법을 익힌 구직자가 되어야겠죠.




 
'갑을사전'을 통해 순진하게만 바라보았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조금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합니다.
작은 것에도 집착하고 보이는 모든 것을 한 번 더 의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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