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인쇄된 글자에 나약한 우리…

입력 2003-02-23 21:22 수정 2003-02-23 21:22
얼마 전 어느 출판사의 의뢰로 금융에 관한 글을 써 주고 대가를 받는 계약을 한적이 있습니다. 계약서는 다섯장 정도로 워드의 9pt 정도의 작은 글씨로 깨알 같이 쓰여져 있었죠.




그 계약서 양식에다 저와 출판사 분이 서로 동의한 몇 가지 조건 (원고 마감날짜, 계좌번호, 금액의 몇 % 등)을 기입하더니 마지막으로 저의 이름과 주소 등을 적고 저에게 사인을 요구하더군요.




원래 계약서라는 게 ‘내가 이렇게 하면 너도 이렇게 해야 한다.’ 뭐 이런 간단한 내용을, 굳이 ‘甲은 乙에게 무엇 무엇을 아니 하여서는 안되며…’ 하는 식의 복잡한 표현으로 가득 적어 놓았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도 계약서로 절반 정도는 먹고 사는 창투사의 투자심사역 인지라(신주인수계약서, 전환사채인수계약서 등을 매일 본답니다.^^;) 출판사가 내 놓은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전에 먼저 전체적으로 한번 읽어 봐야 겠다고 했죠.




아무리 말로서 이렇게 하자고 했어도 계약을 할 때는 반드시 계약서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랬듯이 그 출판사 분의 말씀이,


“아 이거 우리 회사의 표준양식이라 별 특이한 조항은 없습니다. 지금 굳이 안보셔도 됩니다. 나중에 가시는 길에 천천히 보시죠”


이러는 거 아니겠어요.




그때 저는 얼마 전 읽은 허브 코헨(Herb Cohen)의 「협상의 법칙(You Can Negotiate Anything)」이란 책이 생각 나더군요.




그 책에 보면 사람들은 합법성을 갖거나 공인된 어떤 것에 약하다는 거죠. 이러한 특성은 실생활에서 문서화 되어 있거나 인쇄로 찍혀 있는 글에 약하다는 형태로 표출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계약을 할 때도, 부동산 중개소에서 “아 이건 부동산 계약 표준양식인 걸요. 아랫 부분을 보시면 형식 승인번호가 찍혀 있지요?”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계약자들은 “아! 그렇군요. 그럼 굳이 끝까지 읽어 볼 필요는 없겠죠.” 이렇게 말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러한 일은 정말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듣게 되면, “설마… 그런데 그 이야기 누구에게 들었어?” 하고 되 묻게 됩니다.


그럴 때, “응 신문에서 봤어.” 하고 대답하면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 말에 대한 진위 여부를 따지지는 않습니다. 그냥 “참 요즘 세상 참 요지경이야. 그런 일도 다 있으니 말이야.” 하고 승복을 해 버리죠.




그 신문이 과연 정확한 기사를 보도했는지 혹시나 추측성 기사는 아닌 지, 또는 소위 말하는 ‘카더라 통신’을 그냥 옮겨 실었는 지에 대해선 전혀 따지지 않는 거죠. 이러한 오류로 인해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실수를 하게 되죠.




재테크에서도 마찬 가지입니다. 이라크 전운이 감돌고 국제 유가가 급등한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 핵문제까지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앞으로 경기가 어떻게 갈지 누구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그럴 때 경제신문의 증권면에 모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앞으로 주가는 더 떨어진다. 한국 주식시장 지하 몇 층까지 가야 하나.’ 라든지 ‘지금이야 말로 바닥이다. 서서히 미래를 준비하라’ 라는 제목의 글이 오르면 우리는 우왕좌왕합니다.




인간인 이상 아무도 미래를 맞출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주가가 곧 오를 거래. 신문에서 그러던데…’ 하는 식의 이야기에 현혹되는 거죠.




신문의 주가전망 코너에 인쇄된 글… 그것도 인쇄되기 전에는 몇몇 사람의 의견이었을 뿐입니다. 그 의견에 전적으로 혹하여 여러분의 귀중한 자산을 망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우리에게 문서화된 그 무엇에 약해지는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죠…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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