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유감

입력 2015-02-09 05:06 수정 2016-07-12 23:33
1. Do you know Kimchi?

 

한·중 FTA가 체결됐지만 김치의 대중 수출은 여전히 막혀있다. 절임 채소의 100g 당 대장균 수를 제한한 중국의 위생 기준 때문이다. 지난 2012년 김치의 연간 수출액이 1억 660만 달러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동안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1억 1000만 달러를 넘었다. '김치 무역' 적자인 셈이다.

중국으로의 김치 수출이 끊긴 까닭을 두고 언론에서는 '김치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중국 정부의 엄격한 위생 기준 적용'과 '주무부처인 농림부의 안일한 대응'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치의 세계화, 한식의 세계화, 궁극적으로는 '한국 것의 세계화[韓流]'를 주창하는 시대다. 한국의 얼굴과 다름없는 김치가 세계 최대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질타가 이어졌다. 급기야 시진핑 주석의 방한 때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검역 기준 완화를 요청하기도 했다. 종주국의 굴욕이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김치 종주국은 더욱 중요한 문제인 김치의 현지화는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선 한궈파오차이(韓國泡菜)라는 이름으로 김치가 유통되고 있으며, 김치 수출액의 80%를 차지하는 일본은 시장 물량의 90%가 현지 생산량일 만큼 이미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그들의 삶에 스미고 있는 한국의 음식문화조차 굳이 메이드 인 코리아란 딱지를 붙여 완제품으로 수출하고 봐야 '밑지는 장사'가 아니란 게 무역대국의 견지인 것이다. 당장의 수출 지표나 경제적 효과에만 연연한 탓이다.

문화는 거래가 아니다. 상품처럼 수용자가 값을 지불하길 바란다면 김치는 더 이상 문화가 아니다. 같은 맥락으로 만두와 우동에 대해 중국과 일본이 문제 삼는다면 당국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두 음식은 종가의 원형에 '중국식'과 '일본식'이란 말이 붙어버렸을 정도로 한국 현지화가 이루어졌다. 중국과 일본은 오히려 웃고 있지 않을까. 완벽한 문화수출을 이뤘으니 말이다.

 

2. 국가라는 레테르

 


 물론 더 있다.


 

사실 한류가 아닌 것이 없는 시대다. 한류라는 단어만 빼놓고 말이다. 한류가 과거 항류(港流), 일류(日流), 화류(華流)와 같은 일본식 조어임을 염두에 뒀다면 타도일본이 골수에 찬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화를 부르짖을 수 있었을지 의구심이 인다. 어쨌든 딴에는 중국 언론이 만들어낸 용어로 받아들인 까닭에 한류라는 이름이 타칭이란 묘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도 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어의 원산지가 아니다. 한류에 대한 실로 거국적인 접근, 그 자체다.

불편하게 들리겠지만 한국은 전쟁 이후 빠르게 경제대국 반열에 진입하는 대가로 불치병을 하나 얻었다. 문화적 열등감을 말이다. 이는 자랑해 마지않는 역사나 유적과는 별개의 문제다. 문화, 즉 양식으로서의 콘텐츠 가치가 얼마만큼의 세계적 수준-혹은 범용성-을 갖추었는지 확인하려는 시도 자체가 열등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문화적 파급력이 앞서 말한 경제적 성취를 미처 쫓아오지 못한 탓이고, 이것이 국격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선진국 입성을 가시권에 둔 반면 문화대국의 타이틀은 요원하다. 동북아 내의 경쟁에서도 사실상 우위를 점하기 힘든 모양새다. 때문에 세계화의 시도에는 자칫 당위성마저 있어 보인다. 허나 '우리 것을 더욱 알려야 한다'는 민족중흥의 사명으로 뭉친 문화판촉이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꽤나 귀찮게, 또 유난스럽게 느끼지 않을지 우려마저 된다.

일례로 2012년 10월 미국 국무부의 정례브리핑에선 모 언론사 특파원이 빅토리아 뉼런드 당시 대변인에게 "싸이와 강남스타일을 아느냐"고 묻는 촌극이 빚어진 바 있다. 시리아 내전과 이란 핵문제 같은 국제 현안이나 한미 간 화두였던 미사일협정을 차치하고 묻는다는 것이 싸이와 강남스타일이었다. 유튜브 조회수 1위와 빌보드 차트 7주 연속 2위, 한국 대중문화로선 초유였던 세계화 경험은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일임에 틀림 없었다. 하지만 공개질의 시간에 미 정부의 입을 통해 재확인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워싱턴 주재의 기자조차도 세계 속 한국의 위치를 각인시키고자 했던 기저에는 바로 열등감이 깔려있는 것이다.

(빅토리아 뉼런드 전 대변인은 당시 기자의 질문에 분명 "모른다"고 답했었지만 한 달 후 이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에서는 말춤을 추는 센스를 보여줬다.)

싸이의 성과를 굳이 한류로 묶어 국적을 부여하고 규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세계적이지 못한, 시대착오적인 행위다. 강남스타일의 흥행은 싸이 개인의 성공과 영달로 끝났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국위선양으로 점철된 언론보도를 통해 토종 국내파 싸이는 일약 한류스타(그것도 미국을 점령한 거물)로 거듭나 버렸다. 결국 앞으로 그의 행보에는 걸음마다 한류 선봉의 중책이 맡겨질 것이 자명하다. '대한의 건아'라는 수식은 1997년 박찬호와 박세리 선에서 끝났던 게 아닌 모양이다.

 


 브라질 월드컵 길거리 응원에 나선 '한류스타' 싸이.


사진, 한경닷컴 변성현 기자.


 

3. 탈아입구의 향기

 

100여년 전, "일본도 할 수 있다"던 그들. 미카사의 함포가 발틱 함대를 조준하는 순간 일본의 열강 편입은 결정이 났다. 한 세기가 지나 한국 또한 한류 3.0을 표방하며 세계를 겨냥해 포문을 열었다. 한류로 들뜬 사회적 분위기는 근대 일본이 기치로 내걸던 탈아입구를 연상시킨다. 아니, 닮아있다. 탈아시아를 위한 병참기지를 동남아로 삼았다는 점까지.

강남스타일 이전의 한류는 철저히 대중문화적 의미로 아시아, 그것도 동남아에서 가장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2011년 조사한 한류콘텐츠(드라마·영화·K-POP·게임) 소비현황에 따르면 한국드라마를 시청하는 주당 평균시간은 베트남(540분)과 태국(318분)이 일본(215분)을 크게 앞질렀다. 영화 역시 베트남(주당 5.1편), 태국(3.3편), 중국(2.6편), 일본(1.5편)순으로 동남아와 동북아의 격차가 컸다. 대일 수출이 전체 수출액의 81%(2011년)를 차지하는 K-POP 역시 정작 일본에서는 주당 평균 111분의 소비가 이뤄져 베트남(465분)과 태국(291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화장품, 의류, 음식, 자동차, 휴대폰, TV, 컴퓨터 주변기기, 의료서비스 등의 상품 구매의도 조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수출에 기여한다고 해서 다 한류겠냐마는 그렇게 외연을 키운 한류의 저변이 생각보다 넓지 않다는 것은 방향을 재고해 볼 일이다.

사실 한류는 기업들의 국제적 성공이 궤를 같이하면서 조금 더 포괄적 의미를 갖게 됐다. 문화가 아닌 한국 그 자체를 한류로 오도하면서 말이다. 삼성이 소니를 제치고 현대차가 도요타를 쫓으며, 일본을 모방한 산업구조가 일본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 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러일전쟁 직후의 일본처럼 온 사회가 고무되고 격양되었다. 일류(一流)인 일류(日流)를 잡았으니 바다를 건너자고,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록 일본이 태평양에서 저지른 오만과 오판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복기해야 한다. '세상엔 형님들이 많다'고, 일본의 탈아입구를 짓밟은 건 팍스아메리카나였다. 한류도 한류(寒流)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게다가 인기 연예인들을 내세워 한국을 선전한 것이 얼마나 전통과 역사, 문화 일반의 이해로 심화되었는지도 의문이다. 80·90년대 국내에 일었던 홍콩영화 붐은 이른바 사대천왕만을 남기고 지나간 대중문화였을 뿐이다. 코앞에 닥쳤던 홍콩 반환과 일국양제 같은 내부적 상황에 대한 접근으로 이어졌다고 보긴 힘들다. 스타 중심의 대중문화가 갖고 있는 일시성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이처럼 예술과 철학, 생활양식이 부재한 문화란 그저 소모되고 마는 것이다. 외려 순수예술 분야의 성취와 의식의 성숙도가 통상적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당장의 개별 방송·연예 콘텐츠들의 연속된 흥행만으로 샴페인을 터뜨리지 말아야 할 이유다.

 


 <영웅본색>에서의 주윤발.


 

4. 착시

 

언론이 한류로 인한 해외반응을 조명하는 데 열을 올리다 보니 '열광하는 외국인들'을 비추기 위한 구도로 자연스레 가수들의 기획성 공연이 늘어나게 됐다. 여러 연예 매니지먼트사와 방송사가 연합한 프로모션인 이른바 한류공연이 그것이다. 여기엔 필연적으로 조성 단계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뒀던 아이돌 그룹들이 그 필두에 선다. 주지하다시피 그들은 연일 어딘가를 '강타' 중이다. 지난 2011년 SM 소속 가수들의 '파리 강타' 때 <르몽드>는 "소년, 소녀들은 음악을 수출 상품으로 기획한 제작사의 의도대로 육성됐고, 역동적인 국가 이미지를 팔고자 하는 한국 행정부의 대대적 지원을 받은 것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드라마 산업 역시 K-POP 못지않게 수출이 고려된 연속극들을 쏟아내고 있다. 인기 아이돌 그룹의 멤버나 소위 말하는 '한류스타'들이 철저히 얼굴마담 역할을 해 주는 작품, 혹은 영화와 맞먹는 제작비를 쏟아 부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음반과 드라마 산업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전체 방송·연예 산업의 기조가 그렇다. 어찌 보면 연예인들이 한류의 최대 수혜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흥미로운 것은 한류의 역군을 자처한 K-POP과 드라마가 차지하는 수출 비중이다. 지난 2012년을 기준으로 음악은 3200억원, 방송은 2700억원의 수출고를 달성했다. 하지만 콘텐츠 산업 수출의 대장은 다름아닌 게임(2조 9700억원)으로, 전체의 60%에 육박한다. 수출 주력상품과 표방하는 대표 콘텐츠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우스운 것은 수출 효자 게임이 국내에선 그 중독성 탓에 4대악으로 규정됐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규제도 천명됐다. 자칫 산업 자체가 크게 위축 될 상황에 놓인 것이다.

 

5. 그리고

 

물론 글의 서두에서도 밝혔다시피 문화산업의 파급력과 가치를 수출 지표만으로 단순 평가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재차 강조하지만 경제적 효과에 연연해 단기간에 상대국의 수용 여부를 따지는 일보다 보편적 문화로 자리잡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특정 문화에 있어 '종가 한국'으로서 국적을 내세우는 것보다 양식으로서의 가치를 갖게 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한류를 논하는 데 빠지지 않는 아이돌 문화의 발원이 사실은 일본이듯 얼마든 다른 방식의 김치가 나올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역시 인도의 커리를 일본식 카레라이스로 수용했다. 문화란 얼마든 재생산 될 수 있는 무형의 가치이며, 그럴 수록 빛을 발하는 것이다.

더불어 'do you know kimchi?'와 같은 억지 문화홍보를 통한 세계화는 세일 기간에 백화점이 붐비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기회성 관심과 반응에 침소봉대하지 말아야 하며 국가가 전면에 나서 장려할 필요도 없다. 한국형 ○○○, 한국의 ○○○, 한국식 ○○○ 같은 유치한 관형적 수사가 나오지 않도록 자국의 내실을 다지는 데 치중해야 한다. 또한 지금과 같이 대중문화에 편향되지 않도록 전파 가능한 문화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일도 중요하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자국 문화 양성과 보호를 위해 문화쇄국 정책이 병행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문화강국들의 공통점은 경제 선진화와 더불어 문화 수용에 있어서도 대국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단순한 순혈주의와 문화제국주의에 치우친다면 한류는 이름처럼 유행으로 흘러가[流]버리고 말 것이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가상통화의 미래, 어떻게 생각하세요?

  • 현대판 튤립 투기이며 화폐로 인정받지 못할 것 729명 59%
  • 결제·지급 수단으로 인정받아 은행 대체할 것 499명 41%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