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핀 무궁화 5 : 인과응보

입력 2015-02-09 08:00 수정 2015-03-12 09:57
 

압구정동에 차린 역리원 간판은 영남의 첫 출입 이후 바로 접게 됐다.

그 즈음에 발표한 「미리 보는 우리아이 좋은 사주」란 책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과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이 묘하게 맞물리면서 그렇게 결정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일원동 사가(私家)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상담이 어려울 만큼 인터뷰 요청이 쇄도 하면서 명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듯 했다.

조선, 중앙, 한국, 경향, 한경 등 유명 신문사는 물론 여성중앙, 우먼센스 등 여성잡지에 이어 나중에는 방송국 출연 요청까지 있었다.

그때 집으로 찾아와 인터뷰에 응한 것 외에는 응할 수 없는 사건이 생겼다.

가끔씩 소화가 안 되고 배가 아프기는 했어도 심하진 않았는데 손님이 많아지면서 덩달아 배가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돈좀 벌만 하니까 배는 왜 아프고 야단이야>.

 

드디어 확실한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변이 잘 안 나오게 된 것이다.

일부러 많이 먹고 힘주어도 소용없었다.

먹는 것은 제대로 먹는데 티스푼 하나도 채우지 못할 만큼, 그것도 실변으로만 나왔다.

<혹시 대장암? 에이, 설마>

우려에 대한 답을 편하게 내 놓으면서 대장이 왜 나빠졌을까? 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원인과 결과, 인과응보에 대해 분석하며 하늘에 대한 기도도 시작됐다.

<하느님, 고통스럽습니다. 제발 빨리 데려가 주십시오. 만약 살려 놓으실 거면 건강을 주시옵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도 알려 주십시오>

내 삶에 대한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면서 진정한 반성이 일어났다.

기억해 낼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 그러니까 5, 6세쯤부터 추억을 끄집어내면서 나쁜 짓 한 것부터 반성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최근의 것이 가장 큰 화근인 듯 했다.

초저녁부터 술 마시기 시작해서 다음날 해 뜰 때까지의 술독에 빠진 일이 드물지 않았다. 점심때 갈비 집에서 시작한 소주 판이 앉은 자리에서 자정까지 이어 질 때도 있었다.

한 마디로 내 행동은 무질서의 극치,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터진 것이 대장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명리학의 고전에 보면 대장유병, 극손경금(大腸有病, 克損庚金) 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래 맞다, 경금이 망가진 게야.>

세월을 거슬러 보니 병인(丙寅), 정묘(丁卯)년에 시작된 방탕은 갑술, 을해로 10년간이나 계속 돼 왔던 것이다.

<나 같은 놈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쓰레기야, 쓰레기>

후회가 막심했다.

 

지금은 60kg도 안 나가는 몸무게지만 당시는 80kg 이었다.

인간이 돼지 살찌운 다음 잡아먹듯, 돼지가 된 나를 하늘에서 잡아가는 것도 당연하겠다고 깨달았다.

<죽어도 싸다>고 반성할 그때 영남이 명리학 배우겠다고 안간힘을 쓸 때였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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