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취업에 대하여

입력 2013-02-09 18:56 수정 2013-02-09 18:56


여성의 취업에 대하여

                                                            (딸에게 보내는 경제편지)

언젠가 아빠의 친구들과 산에 갈 때였지. 어느 한 친구와 딸들의 취직에 대한 토론이 있었어. 난 사실 내 딸들은 확실한 사위를 만나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전업주부를 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백년해로했으면 한다고 했지. 그런데 그 친구는 무조건 취직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경제적 독립을 이루어야 남자에 대한 대항력을 갖고 독립적이 될 수있다는 거지. 많이 들어본 소리같지. 맞아! 전형적인 여성주의자들이 하는 말이야. 모든 딸둔 아빠들은 결국 딸을 걱정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자연히 여권론자가 되지. 내 안의 가부장주의와 페미니즘이 공존한다고 할까!

 

그럼 난 왜 너희들이 전업주부가 되기를 원하냐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집안 일을 잘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들어. 가정과 직장에서 모두 성공한 ‘수퍼우먼’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 적은 성공사례일 뿐이야. 국민대 이은형교수는 아시아경제신문에서 슈퍼맘이 왜 점점 적어지는 지를 다음과 같이 썼어. “맞벌이 가구와 외벌이 가구의 '실질 소득' 차이가 15% 정도밖에 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LG경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와 외벌이 가구의 소득 차는 106만원이지만 부족한 가사노동 시간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소득 차는 36만원에 그친다고 한다. 육아 및 가사노동의 질이 떨어지는 것 등을 감안하면 맞벌이를 하는 것에서 얻는 경제적 이득이 크지 않음을 보여준다. 우리 세대보다 경제적 타산에 더 밝은 신세대 여성들이 '희생을 무릅쓰고' 워킹맘이 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할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도 여자들이 직장을 갖는다는 것은 둘 중의 하나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은 여성의 취업이 필수여야만 할까?

 

내가 보기엔 두가지로 볼 수있어?

우선 남자들만으로는 가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졌고, 둘째는 여성들의 자아의식이 강해진 거지. 그 이유를 돌아볼까? 우선 최근까지만 해도 일단 취직하면 평생직장으로 간주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경제생활은 안정적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러니 안정적인 직장은 사라지고 수시로 직업을 옮겨야 하는 시대가 되었지. 그러니 여자도 수입원이 있어야 보다 안정적이 된다고 생각하지. 게다가 오랜 기간의 여성운동으로 여자들의 독립적인 의식도 강해진 것도 여자가 직장을 가져야 하는 시대가 되었지.

 

그 것은 두 부부의 마음이 한결같이 평생을 지속한다고 하여도 가정을 꾸리기 위한 생존의 필수조건이 되버렸어. 난 아까 그 친구가 말한 것처럼 ‘경제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말해주었어. ‘독립적이란 여자가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진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잘못되었다고 했지. 원래 인간의 존엄성이란 개념도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거야! 우리의 조선시대나 유럽의 중세시대엔 그런 개념조차 없었지. 남녀를 떠나서 원래 모든 생명은 존엄한 것이고, 그 것이 경제적 독립과는 별개라고 생각해. 그런데 자본주의가 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모든 인간관계도 그렇게 해석되기 시작되었고, 페미니즘도 자본주의 한계내에서 남녀평등을 부르짖다 보니 여자도 반드시 경제적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뿐이야! 예를 들면 어머니들의 집안에서의 역할을 ‘가사노동’이라고 하면 그 가치는 노동임금으로 환산하곤 하지. 그 안에는 사랑과 편안함이란 추상적인 가치는 무시되고. 그래서 난 이런 생각도 해봐. ‘만일,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독립성을 경제적인 능력에 초점을 두지 않고, 가장이나 아내가 모두 똑같이 존엄하다’라고 했다면 어떨까? 그럼 지금처럼 여자들은 가정에서 집안을 돌보고, 남자들은 밖에 나가서 가정을 유지할 생계를 벌어오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분업을 한다면 좋았을 텐데, 이제는 남자도 여자역할을 해야하고, 여자도 남자역할까지 해야하니 더 힘들어졌잖아.

 

이 건 어떻게 보면 역사적인 후퇴야! 여자가 여자로서의 역할만을 온전하게 한 것은 원시시대이후 지난 몇 십년 뿐이었어. 돌이켜봐! 조선시대에 양반집 규수말고는 온전히 집안 일만 한 사람이 어디있어! 다 논밭에 가서 일해야 하고, 그리고 집에 와서 다시 집안 일을 하고. 유럽도 마찬가지지. 그렇게 가다가 그야말로 온전히 성역할에 따른 분업이 이루어 진 것은 미국은 50년대 이후, 한국은 70년대 이후정도라고 보면 될 거야. 그러다가 언제부터냐면 90년대 중반이후부터 여성의 경제활동이이 다시 활발해졌지. 조선시대의 여인네들이 밭을 가는 대신에, 직장으로 나가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둘다 경제활동인 것은 마찬가지지. 취업을 할려면 마땅히 직장이 있어야 겠지. 그런데 직장이라는 개념은 또 언제부터 생겼을까? 조선시대에 직장이라는 걸 가져본 사람이 있나? 아마도 관리빼고는 딱히나 직장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겠지. 농사를 짓거나 상업을 하거나 간에 그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서부터 주어진 것이니, 지금의 자신의 의지대로 어느 한 곳에 출퇴근을 하면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자원을 받는다는 직장과는 개념이 틀리니까. 내가 보기에 그저 직장이라고 불릴 만한 것은 일제로부터 해방이후부터인 것같아.

 

사실 내가 보기에 취직을 한다는 것은 ‘자아성취’라는 개념보다는 그저 ‘생계유지’를 위하여 다니는 경우가 많아. 직장이 재미있어 죽겠다고 하는 사람보았어! 없잖아. 직장이 그렇게 재미있다면 돈을 내면서 다녀야지! 그런데 사람들은 왜 취업을 하려할까? 난 그 대답에 대하여는 에리히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한 말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 그런데 이건 큰 아빠가 나에게 해주고, 다시 그 책을 읽었지. 고등학교때 들은 말인데 머릿속에 쏙 들어오더라.

 

“자본주의 경제의 일반적인 특질중의 하나인 개인주의적 활동의 원리이다. 모든 인간이 정연하고 명확한 사회 조직속에서 일정하게 고정된 위치를 가지고 있던 중세의 봉건제도와는 반대로 자본주의 경제하에서는 개인은 완전히 자기 자신의 의지로 일어서야 했다. 그가 무엇을 하건, 또 어떤한 방법으로 하건, 성공하건, 실패하건 모든 것은 완전히 그 자신의 일이 되고 말았다. 이 원리가 개성화의 과정을 촉진시킨 것은 분명하게 그것은 근대 문화의 영광스러운 측면의 중요 항목중의 하나로서 강조된다. 그러나 ‘......에서의 자유’가 점점 더 진전해갈 때 이 원리는 개인간의 모든 유대를 끊었으며 그 결과 개인은 동료로부터 고립되고 분화된 존재가 되었다. ....... 자본주의가 개인에게 가져다 준 새로운 자유는 개인을 더 욱 고독하게, 점점 더 고립하게 되고, 자유가 외부에 있는 압도적으로 강력한 힘에 의해서 조종당하는 하나의 도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개인’이 되었으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불안한 개인이 되었다. 이처럼 숨어있는 불안이 겉으로 드러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조건이 있었다. 그 첫째가 자아를 뒷받침하는 재산의 소유이다”.

좀 길게 인용했다마는 한마디로 하면 사람에게 자유를 주었더니만, 오히려 뭐든지 자기가 결정해야 하는 것이 두려워졌고, 그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직장이라는 테두리로 들어가려 한다는 말이야. 만약에 그 두려움이 없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자유를 즐겨야 정상이거든. 사람들은 직장을 벗어나 엄마나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올 때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편안해지지. 하지만 식구들에게 진정한 편안함을 제공하던, 엄마와 아내마저도 이제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까도 말한 것처럼 ‘역사의 후퇴’라고 난 생각해.

 

그런데 왜 90년대부터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졌을까? 그건 자유시장이 활성화되면서부터라고 보는 사람도 있어. 세계화가 되고, 전 지구적인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저렴한 노동력이 필요하게 된거야. 게다가 기업으로서는 좀 더 폭넓은 소비계층이 필요했고. 이 것은 마치 2차 대전 중에 남자들이 전쟁에 모두 나가자 노동력이 필요하니까 여성들을 생산현장으로 불러들이면서 여성의 경제생활이 본격화했던 것과 같은 현상이지. 시장이 필요로 했으니까. 내가 보기에는 서로가 본의는 아니었지만, 자본가과 여성주의자들이 협력을 한 셈이지. 자본가는 여성의 저렴한 노동력과 소비력을 필요로 했고, 여성주의자들은 여권향상과 경제적 독립을 원했었으니까.

 

좋든 싫든, 남자든 여자든 간에 앞으로 할 일은 명확해졌어. 표준화된 완전고용 체제에서 유연하고 다원화된 저고용체제로 이전 중인 현대 사회에서 “고용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는 말은 절대 명제가 된 거야. 터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는 많은 선택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면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다만 곁가지의 일부에서만 선택할 뿐이지. 그래도 다행인 것은 모든 일이 컴퓨터화되어 육체노동보다는 정신노동을 중요시하는 지식노동자들의 수요가 커졌어. 그래서 이전보다는 노동자로서 여성의 권익이 많이 향상된거야.
89-95년 대한무역진흥공사 근무,
95년부터 드미트리상사 운영.
Feelmax 라는 브랜드로 발가락양말을 핀란드등에 수출하고, 맨발 운동용 신발을 수입.
무역실무 및 해외 영업 강의
지은책 : 무역 & 오퍼상 무작정 따라하기, 책은 삶이요 삶은 책이다, 국제무역사 2급 단기 완성, 결국 사장이 문제다 등 다수
drimtr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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