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온다. 꾸물꾸물하더니 우중충한 하늘이 마침내 제 무게를 못 이기고 눈물을 쏟아낸다. 내 방 창으로 내다보면 키 큰 나무들이 비에 젖어 처연하기도 하고 요염해 보이기도 한다. 빗소리가 그나마 위안이 된다. 후두둑 하는 소리가 가슴속에도 내린다. 비...라고 말하면 입안으로 가득 비가 내리는 듯하다.

비.

왜 하필 비라고 이름 붙여졌을까? 돌이 돌 같고 꽃이 꽃 같고 길이 길 같듯이 비는 비 같다. 언어의 신비한 탄생이다. 비를 비라 그러지 않고 돌이라든지 눈이라고 했다면 비가 주는 그 맛이 달라졌을 것이다.

시인들은 예로부터 비를 노래했다. 내가 좋아하는 비에 관한 시가 하나 있다. 6.25 당시 북에 끌려가 사망했다는 정지용시인의 비라는 작품. 비를 어떻게 이렇게 묘사했을까...시인의 감각에 감탄이 나온다.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섰거니 하야
꼬리 치달리여 세우고,

종종다리 까칠한
산새 걸음걸이

여울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다.

멎은 듯
새삼돋는 빗낯.

붉은 잎잎
소란히 밟고 간다.

-정지용 비

중간 부분을 보라. 수척한 흰 물살이 여울지어 갈갈이 손가락을 펴다니!

그런데 비가 오면 이렇게 감상에 젖을 일만 아니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겁이 덜컥 나게 마련이다. 조심운전을 해야겠지만 타이어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극하는 광고가 있다. 한국타이어는 눈길과 빗길에서도 잘 잡아준다는 점을 강조한 광고를 선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흡착기로 미끌어지지 않게 하거나 날카로운 칼날로 눈길을 잡아주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웃기는 상황이면서도 슬그머니 믿음이 간다. 한국타이어를 달고 눈길이나 빗길을 한번 달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광고효과가 좋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도 발이 아주 중요하듯이 자동차에도 타이어가 매우 중요하다.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으니 말이다.
비가 오면 남자들이 좋아하는 광고. 캘빈클라인의 속옷 빌보드 광고인데, 명소엔 티셔츠를 입은 여인의 모습이 비만 오면 티셔츠가 젖어서 속옷이 여실히 드러난다. 여자의 속옷이 촉촉하게 젖으면 요염해 보인다는 것은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공감하는 상황이다. 난 이 광고를 보면서 스승 서경덕을 유혹하려던 황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황진이는 유혹을 실패하고 스승을 영원히 존경했다고 한다. 서경덕이 아니고 평범한 우리로서야 그런 유혹을 이길 수 있을려나 모르겠다. 이 광고를 보면서 문득 캘빈클라인 광고담당자가 황진이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비가 그치면 무지개가 뜬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오픈 카. 폭스바겐은 카브리올레의 장점을 멋진 그림으로 부여준다. 지붕을 열고 무지개를 가득 받으면서 햇살이 다시 쏟아지는 도로를 달려나갈 수 있다면...! 폭스바겐의 광고가 얄미운 건 아무 소리도 안하는데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설득의 방법이다.

하여튼,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그치면 그치는 대로 삶을 즐기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작가 /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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