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는 ‘지유가오카(自由が丘)’라는 거리가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자유의 언덕’이라는 의미죠. 이 곳은 고급 주택가와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2000년대부터 유명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청담동과 같은 고급스러움과 한적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기자기하고 예쁜 카페들이 많이 몰려 있어 특히나 젊은 직장여성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답니다.

 

이곳에 가면 달콤하고 앙증맞은 디저트를 파는 ‘디저트 카페’가 많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케이크나 마카롱 종류, 초콜릿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요. 이를 일본에서는 ‘스위츠(スイ-ツ, sweeties)’라고 부른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그렇게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은 있습니다)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하는 일본사람들의 취향을 여실히 발휘한 이 스위츠들은 달콤한 맛뿐만 아니라 그 모양들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해 우리나라 20대, 30대 젊은 여성들도 도쿄 여행을 가면 한번쯤 방문해서 시식을 해보는 곳으로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 장기불황의 산물, 스위츠 문화?!

 

그런데 이 일본의 스위츠 문화에 대해 2000년 초반에 저와 친한 일본인 한 분이 지나치듯이 한마디를 했던 게 아직도 저의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살기가 팍팍해지니, 그런 것으로나마 위로를 받고 싶은 거겠지…”

 

요즘에는 우리나라에도 ‘강남의 가로수 길’이나 ‘분당 정자동 카페거리’ 등이 일반화 되어 있고, 또 디저트 카페라고 해서 조그마한 케이크 하나에 5~6천원, 커피 한잔에 4천원씩이나 하는 것을 즐기는 문화가 서서히 퍼져나고 있지만,

 

2000년 초반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문화가 일반적이지 못해서 저는 당시 그 분이 지나가듯이 했던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살기가 팍팍해지는데 왜 무려 1만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배도 부르지 않는 그 조그마한 디저트에 열광을 하는 것일까? 저런 건 먹고 살만해야 사먹는 게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 경제도 팍팍해지는 것과 디저트 카페 문화가 서서히 일반화되고 있는 상황을 보며 그 분이 한 말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이해가 가는 듯 합니다.

 

 

♠ 과거 풍요의 심리적 보상, 스위츠 문화?!

 

일본은 60년대와 70년대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거두며, 80년대 접어들어 버블의 시기를 맞이 합니다. 2000년대 당시 스위츠와 같은 디저트와 커피를 열광적으로 소비했던 젊은 여성들은 주로 이 시기에 유년시절을 보낸 세대들입니다. ‘1억 중산층론’이라 할 만큼 그들이 어렸을 때는 대부분의 가정이 중산층이었고 수준의 차이는 다소 있었겠지만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전후 세대였던 그들의 부모들은 배고픔과 가난의 쓴 맛을 자식에게는 전해주고 싶지 않았기에 더욱더 풍요롭게 키우려 노력했겠죠. 그래서 좋은 교육을 받고, 먹고 싶다는 것, 입고 싶다는 것을 아주 쉽게 부모로부터 제공받으며 풍요롭게 커왔습니다.
 

또한 사회분위기도 미국을 따라 잡고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되어가고 있는 일본의 현실에 고무되어 희망에 차 있었습니다. 이들 세대가 태어나서 처음 접한 것은 바로 풍요와 번영이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버블붕괴가 지속적인 장기불황으로 이어질 때쯤 그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게 됩니다.

 

이들은 아마도 엄청난 괴리감을 느꼈을 겁니다. 초등학교 시절엔 그렇게 풍요롭던 자신의 나라 일본이 이제는 아끼고 절약해도 아등바등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라가 된 것이죠. 풍요는 고사하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불황의 시대가 되어 버린 겁니다. 게다가 자신의 신분도 일용고용직이거나 언제 구조조정 될지 모르는 월급쟁이일 뿐입니다. 사회분위기도 침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살기가 팍팍해진 거죠.

 

하지만 인간은 그들이 태어나면서 접한 환경을 쉽게 잊을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 전쟁을 치른 세대가 어른이 되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었어도 사치와 낭비를 잘 못하듯, 풍요 속에 자란 이들 20대후반에서 30대 후반의 세대들은 아무리 돈이 없고 신분이 불안정해도 과거의 풍요를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 그들에게 허용된 작은 사치, 스위츠?!

 

그래서 그들은 스위츠와 커피에 열광했는 겁니다.

 

우아한 또는 모던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달콤한 스위츠와 잘 뽑아낸 커피 한잔. 물론 점심식사 한끼와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라 할 수 있지만, 그들은 그곳에서나마 어릴 적 풍요의 향수를 만끽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비록 호텔에서 럭셔리한 저녁을 할 수는 없어도, 백화점에서 명품을 살 수는 없더라도 단돈 1~2만원 수준으로 다만 한두 시간 정도라도 어릴 적의 풍요를 느끼고 싶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제가 아는 일본 분이 지나가듯 한 말을 제가 너무 확대해석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연성이 전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회사들이 밀집한 도심에서 6천원짜리 점심을 먹고 4~5천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30대, 40대 직장인들의 소비행태가 이미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40대 직장인들은 돈 아깝다며 요즘 젊은 직장인들 이해가 안 간다며 눈살을 찌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연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물가 수준보다 훨씬 높지만 잘 꾸며진 카페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과거 풍요의 시대에서 자란 우리 30대초반에서 40대중반까지의 직장인들이 무의식 중에 느끼는 상실감을 대변하듯이 말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어릴 적의 풍요를 이렇게 나마 보상받고 싶은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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