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 / 한승원


 

30년 전 내가 근무하던 중학교 우렁이각시 같은 여선생님은 여름철에 허벅지 드러나는 치마를 입곤 했는데, 학교 안에 ‘오늘 우리 여선생님 빨간 팬티 입었더라’는 말이 떠다녔습니다.

한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가 통로에 떨어져 있는 손거울을 발견한 그녀는, 생활지도 주임을 앞세우고 가서 그 반 학생들의 호주머니 검사를 실시했는데, 키 작달막한 아이의 호주머니에서 손거울 한 개가 더 나왔습니다.

생활지도 주임은 그것을 압수하면서, 이 손거울 가지고 다녀야 하는 이유가 있으면 교무실로 와서 말하고 찾아 가거라, 했고, 키 작달막한 아이가 교무실로 와서 “꽃한테 제 얼굴을 비춰주려고요” 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옆에 앉은 여선생의 연꽃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했는데, 생활지도 주임이 빈정거렸습니다.

“야, 이놈아, 꽃에게 거울을 비춰주면 꽃이 제 얼굴을 알아본다냐?”

학생이 말했습니다.

“모든 꽃은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보고 비틀어진 꽃잎을 바로잡고 향기도 더 진하게 뿜습니다.”

얼굴 빨개진 생활지도 주임이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썩 꺼져!” 하고 소리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돌아가려 하지 않는 그 학생을 나는 내 자리로 데리고 가서 물었습니다.

“그것을 누구에게 배웠니?”

“우리 할머니요.”

“네 할머니는 무얼 하는 분이시냐?”

“점도 쳐주고 굿도 하러 다니셔요.”

“네 할머니는 집안에 꽃이 피면 어떻게 하시니?”
“치자꽃, 족두리꽃, 금강초롱꽃들이 피면 앞에다가 체경을 세워놓아요. 밤이면 초롱불을 켜 달아놓기도 해요.”

가슴에 불이 환히 켜진 나는 생활지도 주임에게, “저는 가짜 시인이고, 이 아이하고 이 아이의 할머니하고는 가슴으로 시를 쓰는 진짜 시인입니다” 하며 손거울을 찾아 돌려주고, 이후 그런 손거울 하나를 장만하여, 세상의 모든 꽃들에게 얼굴 보여주기를 부지런히 하고, 그 손거울을 무수히 제작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팔고 또 팔면서 이때껏 잘 살아오고 있습니다.

 

*** 시인이자 소설가인 한승원의 '손거울' 전문입니다. 진실하면서도 아름답고 향기로운 글이지요. 가슴으로 시를 쓰는 진짜 시인이라… 꽃의 숨소리를 듣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손거울, 갖고 싶네요. 나도 꽃에게 얼굴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출처 :  Steve Hwang 유튜브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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