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중국집을 그만 둔 어느 사장이야기

입력 2011-02-15 08:52 수정 2011-02-15 08:52


여의도에서 중국음식점을 하던 박사장은 최근에 업종을 바꾸었다. 30여년을 중국요리집 관련 일을 했던 박사장으로서는 자신의 주력 업종을 떠난 다는 것이 섭섭하기도 했지만, 장래의 발전가능성이 보이지 않아 고민하다가 결국 지역을 옮기면서 당구장을 인수하였다.

 

박사장이 경영하던 중국집을 포기하게 된 것은 가게 주인의 임대료 재계약 요구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는 하였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고민하던 사항이었다. 박사장은 주방에서 요리하는 요리사출신은 아니었다. 그는 그야말로 홀 서빙부터 배우면서 중국요리집 경영을 배워, 30대부터는 제법 규모가 크고 유명한 식당의 매니저를 하였다. 그가 했던 일은 주로 홀 손님과 주방을 무리없이 연결시켜주기도 하고, 직원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 일을 오랫동안 성실히 하면서 인정을 받은 박사장은 전에 모시던 가게 주인의 도움으로 여의도에서 꽤 이름있는 가게를 인수하였다.

 

여의도하면 주로 증권, 국회 그리고 방송등 하이클라스의 직장들이 모여있어 괜찮은 상권이었다. 하지만 그가 여의도에 진입한 이후 3가지의 결정적인 타격이 있었다. 우선 주 5일제 근무였다. 이전에는 토요일까지 근무하면 손님들도 토요일 저녁까지 찾아와 그야말로 주 6일 영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토.일요일에 쉬는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어 주말에 장거리여행이 가능해지면서 토요일은 물론 금요일까지 손님이 줄어들었다.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을 즐기자는 분위기는 근처 직장들의 금요일 회식마저 사라졌다.

 

두 번째 타격은 박사장이 ‘리먼브라더스 사태’라고 부르는 국제금융위기이다. 금융위기가 오면서 가장 먼저 증권사와 금융기관들이 지출을 줄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왠만한 회사의 부장급이면 ‘법인카드’를 가지고 접대를 하거나 부서의 회식을 하였으나, 이 법인카드들이 회수되었다. 그러면서 1인당 5-8만원하던 회식이나 접대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점심시간에도 간단한 요리를 곁들여 식사하던 직장인들이 짜장면, 짬뽕과 같은 저렴한 식사만 먹고 가면서 객단가가 확 낮어졌다.

 

게다가 젊은 직원들의 술을 많이 먹지 않으면서 중국 음식의 기름진 느끼한 음식을 싫어하고, 오히려 서양음식인 피자나 스파게티등을 즐기는 것도 중국집에서의 회식을 줄이는 한 요소가 되었다.

 

이같은 경영상의 압박을 줄이기 위해 박사장은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배달을 시작하였다. 식당에 와서 먹지 않고 배달시켜먹는 계층을 공략하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배달이 수익성 향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1) 식당에 와서 박사장집의 음식을 즐기던 손님들이 배달시켜 먹으면서 내방 횟수가 줄었고, 2) 전체 판매 그릇수는 늘었지만 배달료, 광고비등의 추가비용이 들었으며, 3) 배달을 함으로써 고급스러운 요리위주의 ‘중국요리집’의 이미지에서 식사위주로 ‘중국집’으로 이미지가 격하되었다. 게다가 점심.저녁시간에만 음식을 하던 주방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주문에 쉴 틈은 물론 객단가가 높은 요리손님을 위한 준비가 소홀히하게 되는 어려움도 생겼다. 문제가 점점 어려워짐에 따라 박사장은 곰곰이 자신의 경영에 잘못이 있었는 지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같은 어려움은 자신만 겪는 게 아니라 주변상가가 모두 겪는 공통적인 상황이었다. 이같은 고민을 하던 차에 주인이 재계약을 요구하자 중국요리집을 더 이상 지탱할 자신이 없고, 그 자리에서 업종을 변경하자니 인테리어 개조비용등 추가로 소요될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를 이전보다는 낮지만 적당한 권리금을 받고 그만두었다.

 

돌이켜보면 여의도에서 3번의 큰 변화가 있었지만, 박사장이 대응한 것은 별로 없었다. 메뉴에 변화를 준 적도 없고, 직장인들이 비는 주말시간에 매출을 늘리기 위한 적극적인 방법도 없었다. 물론 금융위기는 갑자기 불어닥친, 그야말로 ‘사고’와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3가지 변화에 대한 시장의 흐름이 어떻게 갈지 예측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 것까지는 무리라고 하여도 변화가 일어난 다음에 어떤 대응이라도 있었으면 사정이 좀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박사장으로 보아서는 시장의 변화가 불리하게 흘러갔다. 그 것은 분명 박사장뿐만 아니라 여의도에서 음식점 내지는 여의도 직장인을 상대로 하는 모든 상점이 공통적으로 처한 불황이기는 하다. 그리고 다른 상점을 나름대로 더 버티거나 불황을 뚫는 좋은 방안을 만들기도 했을 것이고, 어떤 상점은 그저 악화되는 상황을 쳐다만 보고 있기도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취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 박사장은 사업을 접기로 하였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후퇴의 시기’를 결정한 셈이다. 일단 현재까지 보아서는 당구장의 손익분기점을 충분히 넘어가고 있다. 게다가 요즘은 술을 많이 먹는 대신에 같이 즐기는 오락거리로서 당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양재동의 당구장은 사실 과히 나쁜 결정은 아니었다.

 

사업이나 전쟁을 하면서 ‘진격’하기를 결정할 때보다, ‘후퇴’할 때를 결정하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박사장은 일단 ‘후퇴’를 하였다. 30년간의 종사해왔던 전문분야에 대한 후퇴이다. 그로서도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겠지만, 그야말로 과감한 용단을 내린 셈이다. 이제 그는 새로운 세계에서 사업을 시작하였다. 지난 몇 년동안 여의도에서 마음고생한 것을 거울삼아 현재의 사업에서 남들이 따라오지 못할 멋있는 당구장으로 키워가길 바란다.
89-95년 대한무역진흥공사 근무,
95년부터 드미트리상사 운영.
Feelmax 라는 브랜드로 발가락양말을 핀란드등에 수출하고, 맨발 운동용 신발을 수입.
무역실무 및 해외 영업 강의
지은책 : 무역 & 오퍼상 무작정 따라하기, 책은 삶이요 삶은 책이다, 국제무역사 2급 단기 완성, 결국 사장이 문제다 등 다수
drimtr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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