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면 후회한다

입력 2009-01-20 00:19 수정 2009-01-20 00:26


KTX를 타려고 서울역에 들어서는 순간,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신사가 말을 건네온다. 표정에는 꽤나 애절함이 묻어있다. 고향에 가려고 하는데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려서 차표살 돈이 없으니 3만원만 빌려 달란다. 눈빛을 보니 동정유발을 불러 일으키기에도 충분하다. 행여 경계심을 가질 세라 나중에 꼭 갚겠으니 계좌번호를 적어달라고 친절히 메모지와 펜까지 건네준다. 여기에 연신 죄송하다는 예의 바름까지 한 몫을 하고 있다. ‘멀쩡한 신사분이 어쩌다 이런 딱한 일이......’이쯤되면 도와주려는 마음이 일어나 어느덧 지갑으로 손이 향하게 된다. 그 신사는 돌아가면 꼭 송금해 주겠다며 몇 번이고 머리 숙여 감사를 하고 도움 준 사람은 한 순간 불쌍한 사람을 위해 좋은 일 했다는 뿌듯함까지 느껴본다.

그러나 그 감정은 거기까지 이다. 몇 달이 지나도 송금은 이루어지지 않고 다음번에 서울역에 갔을 때 얼굴은 다르지만 똑같은 수법(?)으로 다가오는 말쑥한 신사를 보면서 후회 반 분노 반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순수한 동기로 도움을 청하고 순수한 마음에서 도움을 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에서의 도움의 상호작용이란 이렇듯 흉흉하다. 뿌듯했던 봉사활동을 여지없이 짓밟아버리는 조작된 구원의 손길앞에 우리는 언제나 후회라는 찌꺼기를 치워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 이후 부터는 순수하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 한켠 마저  단단히 빗장을 걸어 잠그게 된다. 인간의 가장 풋풋한 감정인 인심마저 얼룩지게 만드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도움주고 후회하고 도와주고 욕먹고 돕고 나서 가슴 아프다면 이 무슨 아름다운 도움 실천이란 말인가? 그럴바에는 차라리 도와주지 말자. 그래야 도와주고 난 후의 잘못된 결과의 잔상으로 고생하지 않는다. 나만 잘먹고 잘살자는 이기심이 아닌 범위내에서 나중에 후회할 수 있는 도움에는 철저하게 원천봉쇄를 해 보자는 것이다.

친한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빛 보증을 서줬지만 친구가 갚지 않아 신경 쓰고 후회한다. 아는 사람을 내가 하는 일에 끌어들였는데 그가 더 큰 역량을 발휘하여 공연히 질투가 난다. 어려운 단체나 기관에 한번 도와 주었는데 계속 도와달라고 은근히 부담을 주어 짜증이 난다. 힘겹게 도와 주었건만 도움 받은 사람은 도와준 은혜를 잊어버리고 어처구니 없는 배신으로 회답을 한다. 지나던 길에 싸움 말리려다가 괜히 말려들어 경찰서에까지 가서 곤욕을 치른다. 이 모두 도움이 가져온 잘못된 부작용이다.

더 이상 도움주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도움 자체를 차단하자. 도와줘서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자칫 잘 못된 방향으로 흐를수 있음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기에 도움 예찬을 무시할 수 없다면 도와주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만 도와주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도와줄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으면 된다. 돈을 빌려줄 때도 받을 것을 의식하지 말고, 일을 주니까 나에게 보답할 것을 바라지도 말고 내가 한만큼 피드백이 올 것이라는 자체를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정말 생색내지 말고 그저 돕는 자체만의 의미를 찾고 결과에는 연연해 하지 않는 것이다.

실천하기는 좀 힘들 것이기에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도와주면 후회할 수 있다.
그러려면 절대 도와주지 마라.
롯데인재개발원 자문교수
한양여자대학 외래교수
관세청 교육개편 실무위원회 자문위원
소상공인진흥공단 컨설턴트, 한국교통대학교 외래교수
자치발전연구원 칼럼니스트
아하러닝 연구소 대표 컨설턴트 (소장)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112명 36%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202명 64%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