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는 없다. 스스로 멘토가 되어라

입력 2008-09-30 10:22 수정 2008-09-30 22:56


고대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오딧세이의 아들에게 때로는 상담자, 조언자, 친구, 심지어 아버지가 되어 잘 돌봐준 ‘멘토’와 같은 사람이 나에게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오늘날 현실에서 이처럼 진정한 멘토를 만나는 행운은 지극히 어려운 일일 것 같다. 갈수록 메마르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은 자기 한 몸 하나 챙기기에도 힘에 부쳐 타인에게 좋은 멘토가 되어줄 여유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에게 멘토가 없다는 아쉬움을 표현하지도 말고 멘토기 없어 자신의 방향성을 잘 설정할 수 없다는 억지 핑계도 대지 말자.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는 말이 현실에서 꽤 설득력을 갖는 세상이다. 오딧세이 친구와 같은 멘토는 매우 친숙한 친척 또는 친지간에도 기대하기 어렵다.  쉽게 생각해 보자. 나와 절친한 친구의 아이를 정말 조건 없이, 아무런 보상을 받지 않고 직접 최고의 교육을 시키며 몇년이고 돌봐줄 수 있겠는가?

진정한 멘토는 없다. 정말이다. 모두 적절한 이해관계에 의해 ‘멘토’인 척, 또는 표면적으로만 ‘멘토’ 역할을 해 주고 있는 것이다. 멘토관계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공연한 평가절하라고 비난을 받을지라도 적어도 순수한 멘토링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멘토라 여겼던 가짜 멘토에게 받는 기대감의 상실을 최소화 할 수 있다.

회사에 입문한 A군은 업무를 하면서 많은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유지 했다. 그런데 유독 거래처의 B실장이 자신에게 너무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해주는 것을 느꼈다. A군은 가까이에서 언제나 자신을 챙겨주는 B실장이 한없이 고마웠기에 비즈니스 거래관계 이전에 자신의 멘토라고 까지 여기며 잘 따랐다. A군은 조직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을 때 B실장을 도와주는 것으로 동안의 B실장의 멘토링에 대한 보답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A군이 뜻한 바가 있어 회사생활을 그만두었을 때 누구보다도 그를 격려하고 이끌어야 할 B실장은 그에게 멀어져 갔다. B실장의 멘토링은 A가 그의 일을 도울 수 있는 회사에서의 능력이 있을 때 만 발휘되는 것이었다. A군은 지금 잃어버린 멘토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애초부터 진정한 멘토가 없었다는 것에 대한 절망감을 더 크게 갖고 있다.

사례에서 알수 있듯이 멘토의 출현을 섣불리 판단해선 안된다. 앞으로는 철저하게 나 자신이 멘토가 되어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더구나 나 자신의 미래와 인생은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멘토에 의존할 필요도, 시시콜콜 남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의무감도 없다. 필요할 때 내가 나 자신에게 묻고 답하며 내가 직접 지도하고 조언하고 상담하고 가르치면 된다. 이는 이기적인 것과는 다르다.

 멘토는 없다! 스스로 멘토가 되어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도록 하자. 그래야 자생적 멘토링과 더불어 독립심도 강해지고 더욱 가치 있게 성장할 수 있다.
롯데인재개발원 자문교수
한양여자대학 외래교수
관세청 교육개편 실무위원회 자문위원
소상공인진흥공단 컨설턴트, 한국교통대학교 외래교수
자치발전연구원 칼럼니스트
아하러닝 연구소 대표 컨설턴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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