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나무와 풀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

입력 2014-03-25 20:40 수정 2014-03-25 20:40




“오늘 내가 나의 정원을 다듬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정원을 가꾸는 것인지, 정원의 나무나 꽃들이
나로 하여금 정원을 가꾸도록 만든 것인지, 우리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혹시, 정원의 나무나
꽃들이 내가

자신을 다듬도록 나를 유혹한 것은 아닌지?”  





마이클 폴란의

“욕망하는 식물”을 읽고



 



회사는 정원이고, 임원들은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 직원은 정원을 구성하는 나무와 풀이라고 볼 수 있다.  정원사는 자신이 원하는 정원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자르거나 꽃을 뽑거나, 잔디를 기를 수 있다.
그것이 정원사의 역할이다.



 



오늘 내가 자라고 있는 정원에서 살아남을 길은 정원사에게 예쁘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정원사가
나에게 비료도 주고, 물도 많이 주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나는 점점 커지고 예뻐져서
정원사의 최고 보물이 될

수도 있다.



 



선택은 정원사의 몫임을 명심해야 한다. 생존을 위하여 나는 정원사에게

선택되어야 하고, 정원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정원사의

취향이 바뀌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나는
제거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정원사에게 나처럼 예쁜 꽃을 왜 뽑느냐고 하소연 할 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문제는 내가 정원사의


눈에 가치 없게 보였다는 것이다. 정원사도 정원의 주인이 정원이 에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순간 실업자가


되고 마는 것이 현실인데 ….



 



정원사에게 선택되는 것은 나의 종족을 번식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 결코 작은 일이라
할 수 없다. 정원사에게 선택되기

위하여 꽃을 피워야 할지, 열매를 맺어야 하는 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최소한 둘 중의 하나는 해야 하지 않을까?



 



정원의 제한된 공간에서 생존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변화와 내가 그곳에 있음을 인정받는 존재감이
필요하다. 짧은 순간의 잔머리로 승부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부단한

노력과 기다릴 줄
아는 미덕만이 나를 존재하게 한다.







마치, 사과가 자신의 상징이었던 신맛을 버리고 단맛을 택함으로써 인간에게

선택 받아 전세계에서
재배되는 특권을 누리는 것처럼 …



 




조민호/중원대학교 교수, 컴퓨터공학박사
24년간 외국기업, 벤처기업, 개인사업, 국내대기업 등에서 사회생활을 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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