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힐링 트레킹...제5신, '유노쓰(溫泉津)' 옛길을 걷다

입력 2014-03-26 15:32 수정 2014-03-26 15:32



호수를 끼고 있는 일본식 온천 호텔에서 개운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커텐을 젖혔다. 간유리를 통해 보는 것처럼 창밖이 뿌옇다.
호숫가에 묶어둔 쪽배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차라리 눈(雪)이었으면... 그런데... 비(雨)다.
이번 힐링 트레킹의 본게임(?)이 오늘인데, 날씨가 협조 않을 모양이다.
어제 저녁부터 진눈개비 날리더니 오늘은 바람까지 거든다. 
TV에서도 눈비 올 확률 70%라 했다. 예보가 딱 들어맞을 거 같다.
 
비를 맞지 않게끔 호텔 로비 처마 밑에 버스를 바짝 붙여 놓았다.
버스기사의 배려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체크아웃을 마친 일행들이 속속 탑승했다.
 
트레킹 코스를 안내할 가이드도 날씨 때문인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 가는 세계자연유산 '이와미긴잔'은 이곳 호텔에서 40여분 소요될 겁니다.
지금은 후줄근하게 비가 내리지만 바람이 찬 걸로 봐서 곧 눈으로 바뀔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빗길 걷기 보다야 눈길 걷는 게 낫겠지요.
어제도 진눈개비가 오락가락 했지만 걸을 땐 다행히 살짝 멈춰줘서
무난히 일정을 소화했는데 오늘도 날씨가 도와줄 걸로 믿습니다.
 



마부(갱도)만 600개가...

'이와미긴잔'이란, '이와미(石見)'라는 지역의 긴잔(銀鑛,은광)이란 뜻입니다.
일본의 4군데 지정된 세계자연유산 중 한 곳이지요.
지금은 은을 채광하지 않으나 16~17세기에 은을 많이 캤던 장소입니다.
마부(갱도)만 600개가 넘을 정도로 당시 꽤나 번성했던 곳이랍니다.
 
에도시대 때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일본과 무역을 많이 했습니다.
일본은 유럽인들에게 사무라이나 도자기로도 유명했지만 은이 많이 나는
동쪽의 나라로 인식되어져 있을 만큼 이곳의 은은 알아주었지요.
당시 일본 전체에서 채굴되는 은의 90%가 바로 이와미긴잔 것이었답니다.
 
조선시대 일본과 무역을 할 때에도 우리는 인삼 등을 수출했지만
일본에서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은 주로 은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당시 은을 캐서 운반하던 산길, 제련하던 마을길을 두루 걷게 됩니다."
 
설명 도중, 가이드의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 수신음이 들려왔다.
누군가와 일본말로 한참을 통화하고 난 가이드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마이크를 들더니 '다소 차질이 생겼다'며 차분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저희가 걷고자 한 길이 은을 채굴하여 제련했던 지역의 옛길입니다.
옛 은광마을에서 시작해 걸어서 채굴했던 마부(갱도)를 지나 산을 넘어
온천과 도자기 마을로 돌아오는 것이 예정된 코스였는데 변수가 생겼습니다.
얼마 전 폭설로 산길이 군데군데 망가졌답니다. 대나무가 많이 쓰러지고 길이 패여서
중간 중간 길이 막혀 복구공사가 진행되고 있다하여 예정했던대로 걷지 못하게 됐습니다.
조금 전 시마네현 담당공무원이 전화로 알려 왔습니다.
 
그래서 역(逆)으로 도자기마을에서 스타트하기로 했습니다.
도자기마을을 출발하여 2시간 반 정도 은을 운반했던 옛 산길을 걷다가
중간지점 정도에 있는 마을회관에 들러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할 것입니다.
시골마을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이 지역 농산물로 직접 만든 도시락이지요.
그 도시락을 사서 마을회관을 제공받아 식사를 하게 됩니다.
 
마을회관에서 부터 길이 끊겨 통과하지 못하는 산길이 있는데 이 구간은
다시 버스를 타고 산허리를 돌아 점프해 은광마을까지 이동하여
거기서 다시 걸어서 은광마을 옛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걸어야 하는데 중간에 점프해 다시 걷게 된 점 양해바랍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도시라면 빨리 복구가 되었겠는데 여긴 일반인들이 왕래하지 않고
걷는 사람들이 찾는 자연 속이라 나무를 치우고 길을 정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입니다.
 
총 트레킹 거리는 13.5km인데 아무래도 4~5km는 버스로 점프하게 될 것 같네요.
그래도 은광길을 걷는 느낌만은 충분할 것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걷길 바랍니다."
 








시마네현 담당 공무원(앞에 女 두분)이 마중나와 설명을...



도자기마을(야끼모노노사토) 입구, 거대한 가마 앞에 버스가 멈춰섰다.
이번 트레킹의 날머리인 이곳이 돌발변수로 들머리가 된 것이다.
시마네현 담당 공무원 두명이 환영 현수막까지 내걸어 놓고 일행을 맞이했다.
 



도자기마을을 출발해 전통 온천마을, 유노쓰(溫泉津)로 들어섰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만큼 길이 좁다.
걷는 발자국 소리가 미안할만큼 마을은 조용했다.
양편으로 늘어선 전통가옥들, 제대로 일본스럽다.
붉은 세키슈(石州) 기와로 만들어진 목조건물들이 늘어선 거리엔 당시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곳 '유노쓰'는 16세기 초반에 본격적으로 개발된 이후 20세기까지 조업된
긴잔(銀山)의 핵심부이며 이와미은광의 생활을 지탱해주던 항구로 번성했다.
은이 많이 채굴되었던 17세기 때 이곳은 최고의 부자동네였다.
지금도 료칸(여관)과 온천을 알리는 간판들이 다닥다닥 내걸려 있다.
 
전통 료칸(여관)이 많으나 지금은 일반 도시의 호텔보다도 비싸다고 한다.
음식점 역시 허름해 보이나 일본 전통요리를 제대로 맛 볼 수 있단다.
과거 은광 갑부들이 놀던 물좋은 곳이라서 그런가... 
 



옛부터 치유온천으로 유명한, 작지만 따스한 분위기가 넘치는 유노쓰 온천가를
맹숭맹숭 스쳐 지나려니 못내 아쉽다.
전통 여관에도 들러 다다미방의 느낌도 제대로 체험하면서
여행의 피로를 풀며 쉼표를 찍어야 하거늘...    
 



아쉬움을 뒤로하고 골목을 빠져 나오자, 옴팍한 항구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은광을 선적했던 유노쓰 항구다.
과거의 번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그마한 목선들만
한가로이 포구를 지키고 있다.
 



포구에 접해 있는 유노쓰안내소에 들러 한글판 안내지도를 취한 뒤
유노쓰 외곽으로 나 있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걸었다.
 



중간중간 이정표엔 '중국자연보도(中國自然步道)'라 적혀 있다.
중국과 무슨 연관이 있는 길일까?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 처럼? 궁금했다.

단언컨대, 일본의 지명일 뿐 중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사카에서 규슈로 이어지는 서쪽 지방을 일컬어 '주고쿠(中國)'라 한다.
주고쿠 지방은 오히려 한국과 관련이 깊은 곳이다.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신령인 스사노오노미코토(須佐之男命)는 고대 신라의 신,
우두천왕(牛頭天王)이라는 설이 있다.
이 신령이 신라에서 건너와 시마네현의 이즈모(出雲)지역을 다스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고쿠(中國)'는 신라의 속국?이었을 수도 있겠다. ㅎ
 
마쓰야마 이정표(松山の道標)에서 비로소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산길로 접어든다.
일행 중 몇몇은 입이 댓발은 나와 있다. 이국의 호젓한 산길을 생각했는데
팍팍한 포도를 걸으려니 부아가 치민 모양이다.
  
<계속>


빨갛게 표시한 길을 따라...

**뱀발: 이야기가 자꾸 늘어져 죄송^^ 다음 편에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주말 산에 푹 빠져 사는 트레킹 매니아로서 산행 관련 기록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山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 월간지(3종:월간 봉제기술/배관기술/플랜트기술)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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