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와 패배주의

입력 2013-02-07 10:20 수정 2013-04-04 11:32
  고위공직자로 봉사하려면 적어도 가면은 벗고 분칠은 지운 맨 얼굴을 보여주어야 한다. 진정한 권위가 뒷받침되어야 정책의 신뢰가 쌓이고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식자는 청문회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여 원로의 권위를 떨어트리고, 국민들을 관음증에 빠지게 한다”는 가당찮은 주장을 폈다.

  이와 같은 발언들의 저변에는 「그들만의 게임」에 끼지 못하는 일반 시민들이 이것저것 알아서 뭣하겠느냐는 선민(選民)의식 내지 권위주의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사실이지 청문회에서 대다수 인사들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고 억울해하는 광경을 보면, 선량한 시민들이 가지는 죄의식이나 수치심을 찾아보기 힘들다. 진짜 모습이 드러날까 초라한 변명이나 늘어 놓는 불안과 번민의 모습만이 엿보일 뿐이다.
  위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바라보고 쳐다보는 이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커진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거부할 수 없는 이치다. 생각건대, 높은 자리에서 근엄한 얼굴을 보이다가 어느결에 똥바가지를 엎어쓴 진짜 모습을 보이고 사람들을 허탈하게 하는 것은 그를 믿고 따른 시민들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공동체 생활은 수신제가(修身齊家)에서 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남 앞에 서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몸부터 닦고 자기 가정부터 바르게 다스려야 한다. 몸가짐이 바르지 않은 인사가 희생과 봉사 정신을 발휘해야 하는 공복(civil servant)이 되면 어떠한 사태가 벌어질까? 본인도 본인이지만 자식에게 나라에 대한 의무를 기피하도록 가르친 사람들이 어찌 나랏일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겠는가? 능력만 있고 정신이 바르지 않으면 공직을 유린하고 사익을 채우는데 급급하게 된다. 어느 시대에서나 매국노와 파렴치범들은 대개 뛰어나 수재였음을 상기하자. 성숙한 사회가 되려면 공직자에게는 능력보다도 도덕성이 더 한층 요구되는 까닭이다.

  우리사회는 오랫동안 권위주의에 찌들다보니, 권위와 권위주의를 혼동하는 경향이 크다. 권위는 자연스럽게 믿고 따르게 하는 곧은 인품과 남다른 전문 실력을 갖추어야 형성된다. 이와 달리 권위주의는 위화감 내지 두려움을 조성하여 얻는 위장된 권위로 사람들을 억누르려는 행동거지나 사고방식이다. 패배주의에 빠져 "그렇고 그런 세상에서 피곤하게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그냥 넘어가자"고 하면 지도계층의 진짜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권위주의가 설치는 사회로 뒷걸음칠 것이다.
  권위주의가 팽배하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막무가내 지배하려 들거나 맹목적으로 복종함으로써 지배자와 피지배자들이 서로 의지하며 (거짓)안정을 취하려고 한다. 프롬(Erich Fromm)은 이 아슬아슬한 상태를 「자유로부터 도피(Escape from Freedom)」현상의 하나라고 보았다. 이 현상이 급격하게 휘몰아치면 사회 전반에 광기가 흐르고 파시즘으로 변하기 쉽다. 또 장기화되면 노예사상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은 역사의 반복되는 경험이다. 권위주의와 패배주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앞에서 말한 사이비 지식인이 “불량 제로인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큰소리로 야유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자신들과는 다른 “양심 있는 사람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는 「파괴적 도피」 현상이다. 아니면 자신이 더러우면 깨끗이 씻을 생각은 하지 않고, 남들도 따라 더럽기를 바라는 패배주의 심리인지도 모르겠다.

  청문회를 효율적으로 활성화시켜 정갈한 인물들을 찾아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시적으로 낭비인 것 같지만 먼 미래를 위한 투자다. 공직자의 권위를 높이는 동시에 권위주의를 불식해 가는 순기능이 커질 것이다. 바로 건강한 나라, 행복한 사회로 가는 길이다. 청소년들에게도 청문회 장면을 적극적으로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청소년들에게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몸가짐, 마음가짐부터 단정히 하도록 하는 일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다.

 * 관련 글들은 http://easynomics.blog.me 를 클릭하면 정리되어 있습니다


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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