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수준과 환율 변동

입력 2012-12-04 08:00 수정 2012-12-03 17:51
‘12년 11월, 엘리 타하리(Elie Tahari) 거위 털 방한복의 국내 백화점 판매가격은 정가 125만원에 30% 할인한 87만 5천원인데, 인터넷 사이트(SAKS FIFTH AVENUE) 가격은 정가 400달러에 50% 할인한 200달러다. 이 때 소비자가 느끼는 환율은 1달러에 4,375원(875,000/200)으로 실제 시장 환율 1,080원과는 터무니없는 차이가 있다. 만약 정보의 확산이 빠르고 무역장벽이 낮아 상품 이동이 자유롭다면, 같은 제품의 수입이 늘어나고 누군가가 중간에서 챙기는 엄청난 유통 마진도 줄어들 것이다. 

  각국 정부가 찍어내는 법정화폐의 가치는 그 화폐로 살 수 있는 상품의 수량, 즉 구매력에 달려있다. 상대국 통화와의 교환비율인 환율은 양국 간의 물가수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가 구매력평가이론(purchasing power parity)이다. 예컨대, 맥주 한 병이 한국에서 1,100원, 미국에서 1달러라면, 한국과 미국의 환율은 1,100원이 되어야 시장의 균형이 이루어진다. 시장에서는 일물일가법칙(一物一價法則)에 따라 똑같은 품질의 상품가격은 어디서나 같아야 한다는 것이 구매력평가(ppp) 이론이다. 그렇지 않다면, 가격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맥주가 이동한다. 다시 말해 화폐가치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상품이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래의 예상환율도 물가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물가상승률은 3%, 미국은 1%라고 가정하면, 1년 후의 맥주 가격은 미국에서는 1.01달러{1$(1+0.01)}이 되고 한국은 1,133원{1,100₩(1+0.03)}이 된다. 그렇다면 1년 후의 대미원화환율은 당초보다 22원 상승한 1,122₩/$(1,133₩/1.01$)로 올라 그 변동폭은 2%(22/1,100)가 된다. 시장원리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환율의 예상변화율은 양국 간 물가상승률 차이와 같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환율이 양국 간 물가수준 차이에 따라 예상되는 1,122₩/$을 이탈할 경우,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 만약 수출을 늘이기 위하여 고환율 정책을 펼쳐 환율이 1133원보다 높게 상승하면, 한국맥주의 미국수출은 활기를 띄게 되지만 모든 수입물가도 그만큼 뛰게 되어 한국 가계의 부담은 늘어난다. 수출주도 성장의 그늘에는 가계가 고물가를 부담하였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환율변동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의 생산비가 상승하거나 독과점 이윤으로 맥주가격이 1,200원으로 오른다면, 미국 생산자는 비싸게 팔 수 있고, 한국 소비자는 싸게 살 수 있어 미국 맥주의 대 한국 수출이 늘어나고 한국의 맥주가격은 점차 인하될 것이다. 시장원리에 따라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가격이 낮은 곳에서 비싼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상품을 싸게 생산하는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된다.

    # 비정상적으로 높거나 낮아 비뚤어진 상황은 언젠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이 세상 변함없는 이치다. 대내외적 요인에 의하여 환율이 이론가격보다 높게 형성되면, 미래의 환율하락, 즉 원화절상을 기대하는 단기투기자금이 유입되어 차익을 노리게 된다. 핫 머니(hot money)가 유입되면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피할 수 없이 환율하락 압력을 받게 된다. 자연히 국내은행의 외화예금도 줄어든다.

  시행착오를 거쳐 환율이 제 자리를 찾게 되면 수출은 줄어들지만 중장기 물가는 안정되고 가계 부담은 줄어든다. 효율적 시장에서는 물가안정으로 시장금리 안정에도 기여한다. 환율이 다시 제자리(1,122₩/$)로 돌아갔다고 판단되면, 더 이상 차익을 거두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핫 머니는 빠져나가고 내국인의 달러 포지션 또한 줄어든다.

    환율이 상대국간 물가수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경우, 외화 수급에 충격을 주고 경제는 이래저래 불확실성을 잉태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 틈을 타 초과수익을 노리는 차익거래가 성행하게 되고 실물부분에서 땀 흘려 벌어들인 외화를 금융시장에서 투기세력에게 빼앗길 가능성이 커진다. 금리와 마찬가지로 환율 또한 정책목표 달성을 명분으로 조급하게 조율하려다가 그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조심하여야 한다.
 
* 관련 글은 http://easynomics.blog.me 를 클릭하면 정리되어 있습니다



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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