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방패, 권력의 창

입력 2012-07-19 08:00 수정 2012-07-27 06:49



  정치권에서 횡령ㆍ배임죄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들에게 집행유예를 금지하자는 입법 논의가 벌어지자, 재변단체에서는 정치인들의 범죄에 대해서도 똑같은 조치를 취하자고 맞받아쳤다. 오랫동안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이었던 유전무죄, 유권무죄, 그 어두운 그림자가 수면위에 드리워진 것이다. 일그러지고 뒤틀린 법의 눈금을 바로잡자는 논의가 돈과 권력의 주변에서 제기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희랍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는 오른 손에는 칼을, 그리고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저울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양심을 의미하고, 칼은 법을 어기면 베인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법을 다루면서 법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돈과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법을 왜곡하거나 남용하면 그들의 심장도 결국 찢길 것이다.”라는 경고일 것이다.
  법이 구부러지고 뒤틀려져 허위와 진실이 구분되지 못하는 일이 계속되다 보면, 사람들이 옳고 그른 것을 분간하지 못하여 방향감각을 잃고 우왕좌왕하게 된다. 어느 때는 거짓 신념에 불타 마구 날뛰며 만용을 부리다가, 갑자기 겁에 질려 숨을 죽이고 생쥐가 망을 보듯 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틀린 것을 틀렸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사람의 도리가 아닌 “병든 의리”가 판을 치기 때문이다. 진정한 용기란 바른 자세, 바른 생각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지저분한 짓을 하고도 딴전을 피우거나, 조롱거리가 된 줄도 모르고 헛기침하는 유명인사들 주변에 법을 많이 공부한 인사들이 무리지어 몰려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들 중에 법을 지키려고 법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 법망을 교모하게 피해가는 변칙과 편법을 연구한 인사들은 얼마나 있을까? 법이 형평성을 상실하면 누군가는 특혜를 얻는 대신에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 특별한 손해를 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해, 법이 「돈의 방패」나 「권력의 창」이 되면 될수록 선량한 시민들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은 그만큼 위축되거나 유린될 가능성이 커진다.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법의 심판임을 생각할 때 법이 무딘 양심을 가지고 있거나 양심을 팔아버리는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보장받기 어렵게 된다.

  법이 구겨지는 상황이 반복되면 그 재앙이 어느 개인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동서양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어느 시대건 그 말기 증상은 한결같이 ①극심한 부의 편재 ②종교의 극성과 타락 ③(법)질서 문란으로 집약된다. 여기서 말하는 질서문란은 오로지 모든 것이 힘으로 움직이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말한다. 이 세가지는 따로 따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 폐단이 통제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커진다. 
  한국경제는 절대빈곤상태에서 벗어나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힘의 논리가 도덕성을 압도하고 준법정신을 제압하는 불상사들이 나타났다. “힘이 정의”라는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다보니 상을 받을 자가 벌을 받고, 벌을 받을 자가 상을 받는 모습도 여기저기 보인다. 신상필벌 원칙이 없으니 끼리끼리 무리를 이루어 보호를 받거나 나아가 특권을 넘보려는 「커넥션」이 유행하게 되었다.

  정의의 여신 「디케」의 눈은 가려져 있다. 이것저것 눈치를 보다가는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지 못한다는 뜻이다. 신화(myth)가 지배하던 고대사회에서도 이것저것 사정을 감안하다보면 법의 눈금을 엿가락처럼 늘어지게 할 우려가 있었던가? 그 아득한 옛날에도 돈이나 권력에 눈이 어둡다보면 선과 악을 구분하기 어려웠나 보다. 하물며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고 생각하는 황금만능주의에 포위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인간의 자연권은 법률 이전의 천부의 권리라는 자연법 사상이 정립된지도 벌써 3세기가 지나갔다. 우리사회에서 "만인이 법앞에 평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법이 힘센 인사들의 방패가 아니라 억울한 사람들의 마지막 구원처가 되어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음은 누구나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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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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