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의 변명

입력 2012-05-10 08:00 수정 2012-09-24 18:13


   '12,5 현재 퇴출된 저축은행에 투입되는 공적자금만 약 22조원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공적자금은 공돈이 아니고 세금이든 인플레이션이든 마지막 피난처(last resort)는 결국 납세자와 소비자들이다. 인재든 관재든 모든 부실의 결과는 죄없는 국민들이 어김없이 뒤집어 쓴다는 점이다. 조금만 생각하면,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를 해괴한 에피소드가 잇달아 벌어지고 있는 저축은행 사태는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2001.3 상호신용금고법을 상호저축은행법으로 바꾸어 상호신용금고가 은행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어 위험이 거의 없는 안정적 저축기관이라는 이미지를 덧 씌웠다. 소비자입장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서 은행에 저금을 하면 비록 이자는 낮더라도 원금 상환에 문제가 제기된 적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안정적 이미지에다가 이자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으로 돈이 몰리는 것을 어찌 나무랄 수 있겠는가? 문제는 저성장시대로 접어들면서, 타 금융회사보다 상당히 높은 이자를 지급하며 끌어 모은 돈을 운용할 대상이 점차 없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 치 앞의 경제흐름을 내다보지 못하고 성장초기에 소상인들에게 큰 힘이 되었던 상호금융의 옷을 바꿔 입게 하면서 문제가 내연되기 시작하였다. 

  # 예금자보호제도도 저축은행에게는 하나의 굴레가 되었다. 종전 2천만 원이었던 예금자 보호 한도를 2001.1 이후에는 5천만 원으로 높였다. 가구당이 아니라 각 은행당, 1인당 한도여서 발품만 조금 팔면 보증한도는 사실상 무제한에 가깝다. 엄청난 돈이 몰려 들면서 저축은행은 한 때 황금알 낳는 거위로 오인되기도 하였다. 명색은 서민들의 금고였으나 실상은 돈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이자를 보장 받게 하는 하나의 호구(虎口)가 된 셈이다. 언젠가 가족들 명의로 여러 저축은행에 가입한 통장을 쌓아 놓은 부자가 하찮은듯이 짓는 너털웃음에서 오늘날 저축은행 사태를 읽을 수 있었다.

  # 갑자기 저축은행에 대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규제를 전면적으로 풀어 버렸다. 상호신용금고가 저축은행이 되고 다시 사실상의 종합금융회사로 거듭난 셈이다. 저축은행이라는 이름을 왜 남겨두었는지 모를 지경이다. 소액 자금을 한푼 두푼 거둬 국내외 건설 사업에 거액의 대출을 하도록 유도한 셈이다. 문제는 저축은행과 제1 금융권이 대등한 경쟁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익성에 비하여 위험이 높아, 제1금융권에서 외면한 프로젝트에 저축은행이 뒤늦게 끼어들었으니 문제가 잉태되지 않을 수 없었다.

  투자은행과 저축기관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형성되면서 저축은행의 부실은 현실화되기 시작하였다. 투자은행의 과실은 투자자에게 돌아가야 하지만 저축기관은 당해 기관의 계산으로 투자하고 예금자에게는 고정이자를 지급한다. 한마디로 말해 격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힌 셈이다.

  은행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예금자보호 한도를 늘이자, 저축은행 수신고가 높아지면서 자금 운용대상을 찾지 못하자, 위험을 무릅쓴 투자를 감행하다 손실을 입게 되었다. 의례 그렇듯이 일단 손실이 나기 시작하면 이를 만회하려고 점점 더 고수익·고위험 투자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되었다.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담장이 무너지고, 크고 작은 도둑들이 떼로 넘나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산업구조가 복잡 다기화 함에 따라 산업별, 기업별 수익과 위험 또한 각각 달라지게 마련이고 이에 따라 금융중개기능도 중층화(重層化)되어야 바람직하다. 다양한 금융수요에 부응하여 다양한 종류의 금융상품을 공급하는 금융중층화(financial layering)가 이루어져야 산업구조가 고도화가 진행되어 경제적 성과가 커질 것이다. 그런데 위험을 분산하기 보다는 위험을 한데 모으는 금융기관의 대형화와 함께 엇비슷한 내용의 상품을 크고 작은 금융기관이 경쟁하거나 서로 주고받는 금융중복화(financial duplication)가 진행되었다.
  금융중개기능의 쏠림현상은 오늘날 살찔 대로 살찌는 은행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야위어가는 기타 금융회사의 모습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일반은행들이 통 크게(?) 대부분의 수익원을 장악한 상황에서 일반은행의 새끼 역할을 해온 저축은행들이 제대로 기를 펼 수 없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저축은행 사태는 정책을 수립할 때 눈앞에 효과만을 생각하는 단기업적주의에 빠지지 말고 장기 효과를 생각하여야 한다는 크나큰 교훈을 주고 있다. 정책수립에 있어 압력이나 유혹을 뿌리친다는 사명감도 절실하게 요청된다. 만약, 정책실명제가 일찍부터 시행되었다면, 상호신용금고에 은행이란 이름을 붙이거나, 소상인들의 돈을 모아 마구잡이 PF 대출을 하도록 하는 엉뚱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 관련 글은 http://easynomics.blog.me 를 클릭하면 정리되어 있습니다.
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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