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보드 정글

입력 2012-01-12 08:00 수정 2012-03-26 17:45
   아름다운 추억으로 평생 간직되어야 할 청소년들의 학창시대가 상처투성이가 되어 곪아가고 있다. 과외공부에 시달린 학생들에게 학교 가기가 신나지 않고, 안 다닐 수도 없는 떨떠름한 회색지대가 되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본의 아니게 깡패가 되어버린 불량배들에게는 조폭 흉내를 내야 축에 들 수 있는 정글지대로 변하였다. 어쩌다가 따돌림을 당하게 된 아이들에게는 가까이 하기 두려운 적색지대가 되었다.



  자라나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놀이터나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가 포근하게 안아주고 감싸주는 일이다. 사교육비 때문에 맞벌이 부부가 되다보니 사랑으로 꽃피어야 하는 가정교육이 부실해지면서, 집에 혼자있는 외톨이 아이들의 정서는 메마르기 십상이다. 학교에서도 제 자식만 아는 학부모들에게 멱살을 잡히는 등 선생의 위엄이 추락하면서, 스승의 사명감보다는 그저 생계수단으로 여기는 교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래저래 정말 중요한 사춘기 아이들의 인격도야 내지 정서함양은 누가 관심을 가지고 책임을 지고 있는가?

                 졸고 ; 교단과 교권, 스승의 기도 참조,

   우리나라에서 교육이 국가백년대계라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교육평준화가 시작되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통하여 개개인의 재능과 자질을 발굴해 내야하는 교육 본래의 기능은 퇴색되었다. 자식의 대학입학에 인생을 거는 사회에서, 학생들은 그저 찍기 잘하는 "시험선수" 되기를 강요받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평준화를 표방하면서, 이면에는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게끔 일렬로 줄을 서야하는 순위경쟁을 해야 하는 이중성에 청소년들은 좌절하고 분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냉정하게 생각할 때, 평준화와 학군제도는 그저 밭만 열심히 갈면 되는 농부와 매뉴얼에 충실한 직공과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병사만 있으면 유지되는 군국주의 내지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어울릴지 모른다. 그러나 평준화는 후기산업사회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청소년들의 유연하고 창조적 사고 발달을 가로막고 있다. 그들의 천연색 꿈을 배양하고, 융합하고 데서 성장잠재력은 움트고 자라는데 말이다.
  생각건대, 학교에서 학원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지친 수재들이 자신들에게 잠재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시들어 갔는지 모른다.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할 인재들이 평준화의 틀 속에 갇혀 있다가 꿈조차 못 꿔보고 사라져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국수 조훈현에게 오늘날과 같은 붕어빵 교육을 그대로 받게 하였다면 그의 천재성이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무용수 강수진에게 국어, 영어, 수학 공부 잘하도록 재촉하였다면 세계적 무용가로 발돋움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을 한 교실에 묶어 두었다면 그저 조금 뛰어난 학생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아이비리그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우리나라 학생들이 졸업하는 비율은 고작 60~70%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재든 둔재든, 가해자든 피해자를 막론하고 블랙보드 정글에서 허덕이는 청소년 문제는 어른들 모두의 책임이다. 청소년들이 왕따도 되고 폭력배도 되게 할 위험에 처해 있는데도, 못 본 척하고 있다면 어른들의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신체적 정신적 성장속도가 빨라져 중학생만 되어도 사실상 미성년자가 아님을 인식하여야 한다. 그들은 "힘이 정의"라고 착각하는 어른들의 행동거지를 속속들이 다 들여다보고 있다. 사회병리현상이 그들에게 여과 없이 전염되어 그대로 흉내 내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블랙보드 정글(blackboard jungle)인지도 모른다. 등하굣길에 보안관을 세워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고 학교폭력을 없애자는 구호와 다짐으로 될 일도 아니다. 그들에게 평준화의 멍에를 벗게하여 힘차게 뛰어 놀고 마음껏 꿈꾸게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방법이다. 그리하여 저마다의 크고 작은 잠재능력을 발굴하게 하여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교육평준화라는 씻을 수 없는 시행착오에 당초 어떤 정책의도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일그러진 구시대의 얼룩진 유산을 과감하게 청산하여야 할 때다. 성장이고 분배고 뭐고 간에 아이들을 수렁에서 건져내기 전에는 죄다 쓸데없는 일이다.

                             easynomic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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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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