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입력 2012-01-04 08:00 수정 2012-01-09 17:27



  상형문자 화(和)는 입(口)으로 하는 말이, 벼(禾)이삭끼리 비벼대는 소리처럼, 온화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속이 꽉 찬 벼이삭들이 황금물결을 치며 내는 화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넉넉하게 하였기 때문인가?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편안하게 보이는 까닭인가? 
  이는 생존 자체가 어려웠던 고대사회에서 의식주 중에서도 으뜸인 먹을 것이 있어야 사람들이 화목하게 지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생산수단도 간단하고 사람들의 가치체계도 단순하였던 농경사회에서도 화합을 소중하게 여겼다는 의미가 있다. 오늘날처럼 복잡다기하게 돌아가는 후기산업사회에서는 화합은 사회, 문화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크나큰 가치를 가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화합과 부화뇌동을 혼동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화합은 사람 살아가는 이치를 거역하지 않고, 나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되 남의 의견을 존중할 때 비로소 이뤄진다. 이는 자신과는 다른 윤리적 이상을 인정하여야, 비로소 자유의 가치가 있다는 근대 자유주의(Liberalism) 정신과 부합된다. 반면에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마구 휩쓸리는 부화뇌동은 피할 수 없이 불화와 반목을 잉태할 수밖에 없다. 소인배들이 모였다 흩어졌다 하고나면, 서로 욕설을 퍼붓는 일이 다반사다.
  오래된 예를 들어보자. 양심적인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없었던 「자유당」시절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표어가 풍미하였었다. 그러나 당시 사회상은 대의를 위하여 뭉치는 것이 아니고 타락한 권력을 떠받들며 검은 배를 채우려 뇌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변칙개헌, 부정선거를 정당화하려고 땃벌레단 같은 폭력집단이 공포를 조성하고, 우의마의 같은 관제데모가 민심을 왜곡시키는 행태가 뭉치는 일이 아니다. 내 편이라고 해서 떼지어 불의와 부정을 조장하거나 덧칠하며 미화하는 일을 어찌 단결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처럼 부화뇌동하는 풍조가 번지면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무턱대고 비난하거나, 무작정 적으로 몰아붙이는 인사들이 판치기 쉽다. 생떼를 쓰며 무지막지한 욕을 퍼부어 적을 만들고 결과적으로 적의 적을 내편으로 만들려고 한다. 내가 생각할 때, 이들은 모두 이데올로기의 가면을 쓰거나 아니면 거꾸로 뒤집어 쓴 파시스트에 불과하다. 약자들에게는 잔인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강자들에게는 한없이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족속들이 바로 깡패나 파시스트들이다. 다니엘 벨(D. Bell)이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선언한지도 60년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똑같은 모습을 보이느 까닭은 무엇일까? 쏠림현상이 심한 사회에서는 헛된 명분과 거짓신념에 불타는 인사들이 충성경쟁을 하며 누군가를 무턱대고 칭송하다가 돌변하여 저주를 퍼붓는 일이 빈번하다. 애국심이란 이름으로 엉뚱한 사람들을 욕하는 이들을 잘못 건드리면 멀쩡한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반역자로 몰릴 위험이 있다.

  패거리 사회에서는 정실주의(nepotism) 내지 엽관주의(spoils system)가 기승을 부려 사회질서를 혼란에 빠트린다. 선거가 지나가면 엉터리 인사들이 얼토당토한 감투를 쓰거나 뒷돈을 거머쥐려고 조직과 사회를 유린하는 사태는 반복되고 있다. “한국에서 인맥 없으면 취업하기 힘들다”는 KDI의 “인적 네트워크의 노동시장 효과 분석('11,11.14)” 보고서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졸고,"애국, 애국하지 마라" 참조

   한국 경제의 선진화 내지 재도약을 위한 필요조건의 하나는 고질적인 “편 가르기” 내지 “코드 문화”를 극복하는 일이다. 다양한 갈래와 형태로 발전되어가는 사회에서 서로 다른 생각들이 융합되어야 생산성이 향상되어 지속적 성장과 발전도 도모할 수 있다. 크루그먼(Paul Krugman)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후기산업사회에서 경쟁력은 땀(perspiration) 즉 생산요소 투입확대보다 아이디어 내지 영감(inspiration) 즉 기술개발에 더 크게 좌우된다. 조직과 사회의 영감(靈感)을 고취시키려면 각양각색 의견들의 소통과 조화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연구실이 아닌 산업현장에서도 화목하여야 생산성이 향상된다. 유쾌한 음악을 들려주면 소도 우유를 더 많이 생산한다는 실험결과를 음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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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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