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커넥션

입력 2011-10-05 08:52 수정 2012-02-10 14:41


   그 여검사는 "납득할 수 없는 재판 결과에 피해자들이 검찰, 경찰, 변호사, 법원의 유착이 있었을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며 울부짖었다. 인화학교 사건의 공판검사였던 그는, 보통사람들은 가까이 하기 어려운, 지도층 인사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 경제, 도덕이 쇠락하자 법철학자 솔론(Solon)은 "법이 거미줄처럼 되면 나라가 위태롭다"고 경고하였다. 거미줄이란 무엇인가? 나비나 잠자리가 날아가다 잘못 걸리면, 거미에게 잡아먹히지만, 돌팔매나 사금파리가 날아가면 뻥 뚫리는 것이 거미줄이다. 물 흐르듯 순리대로 세상사를 판단해야 할 법이 공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엿가락처럼 늘어지면 사회 질서가 흔들리고 결국 나라의 명줄도 가늘어진다는 뜻일 게다. 여기서 거미줄을 망가트리는 돌팔매나 사금파리는 이른바 패밀리들 끼리끼리의 은밀한 관계, 부정한 거래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시대의 공동선을 지켜야 할 법과 양심이 「커넥션(connection)」에 의하여 좀먹고 (검은)돈에 의하여 무력화될 때, 사회의 소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은 보장하기 어렵다. 

  소설 「도가니」를 보면, 처음부터 마음이 짓눌리고 끝까지 가슴이 미어진다. 마지막에 가서야, 멍들대로 멍든 제자가 썩을 대로 썩은 선생을 찌르는 장면에서 독자들은 파편같은 한조각 카타르시스를 얻었을지 모르겠다. 이 장면은 법질서가 무너진 사회, 즉 국가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개인이 스스로 자구행위를 할 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었다면 그 귀머거리소년이 칼을 잡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현세에서는 정당방위라 하더라도, 종교적(?) 차원에서 범죄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법이 경시되는 사회에서는 피할 수 없이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the war of all against all)」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다. 세상이 무법천지가 되면 역설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재적) 죄인이 되기 쉽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서로 싸워야 하는 환경에서 죄를 짓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면, 약자는 설자리가 없어지고 결국 강자의 보호를 요청하거나 스스로 노예 되기를 원하게 된다. 조직이나 사회에서 강한 힘을 거머쥘수록, 법과 규범을 우습게 여기거나 법규를 마음대로 뜯어 고치려고 하는 일은 어리석은 인간사회에서 줄곧 반복되어온 일이다. 그래서 권력의 균형이 깨지면 법질서가 파괴되고 민주주의가 그만큼 위협을 받게 된다.

졸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참조

    그 「대한민국 여검사」를 흐느끼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자. 모든 것을 유린당하고도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그 오갈 데 없는 어린이들 때문일까? 스승의 탈을 쓴 악마들의 모습 때문일까? 면죄부를 사고파는 어둠의 「커넥션」 때문일까? 저항도 할 수 없는 약자에게는 비수를 가차 없이 휘두르다가, 강자가 죄를 저지를 때는 촉없는 화살이나 허공에 쏘아대는 힘센 사람들 때문인가? 패밀리들이 주고받는 혜택이 엉뚱한 사람들의 신음소리로 이어지는 현실 앞에서 무력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 때문일까?  

  서초동 법원 청사 앞을 지날 때마다, 큼지막하게 새겨 붙인 자유· 평등· 정의라는 표어를 유심히 보게 된다. 동시에, 무슨 멋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거미줄도 아닌데 가운데가 뻥 뚫린 청사건물을 보며 무엇인지 모르게 허전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법이 굴절되고 인권이 유린된 사례를 남김없이 발굴하고, 그 배경과 관련인물들의 행각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일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것은 어쩌면 "그들만의 법"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법"을 수호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될 것이다.


무섭다 / 허홍구 
 미친 사람이 칼 들고 있으면 무섭다
무식한 사람이 돈 많은 것도 무섭고 권력을 잡으면 더 무섭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실력 있고 잘난 사람들 중에 사람이 아닌 사람은 더 무섭다
 참 무섭다
언제나 웃고 있는 너그러워 보이는 탈을 벗기면
 흉악한 얼굴들이 보인다.
언뜻 언뜻 나의 얼굴도 보인다.
몸서리치게 무섭다.


easynomic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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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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