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입력 2011-06-29 13:50 수정 2011-07-18 11:01


  수치심을 잃어버린 사회에서는 법과 규범이 흔들리고 자칫 무질서 내지 무정부 상태로 가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The war of all against all)이 벌어진다. 질서(order)가 유지되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규범과 약속을 지키려는 도덕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양식있는 시민들이 사회질서를 어길 경우에 부끄러워하는 까닭은, 그들이 사는 사회의 바탕이 되는 도덕성을 저버렸다는 자책감 때문일 것이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무엇인가 서로 연계되어 있다고 느끼게 되는, 수치심이 실종된 에피소드 몇가지를 들여다보자. 



  # “헤이그 밀사 사건이 알려지자 일진회의 송병준은 고종의 면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일황(日皇)에게 사과하든지 대한문에 나가 일제 주차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세미치에게 항복하든지 하라고’ 윽박질렀다. 일진회와 매국경쟁을 하던 이완용은 대신들을 대동하고 고종에게 양위를 요구했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이완용이 칼을 빼어들고 고함을 지르며, ‘폐하께서는 지금이 어떤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라고 협박하였다고 적고 있다.” (중앙선데이, 이덕일, 근대사를 말하다, ‘11.6.26).
  침략자의 완장을 얻어 차고 기고만장하는 신하가 이빨 빠진 군주를 안하무인으로 조롱하며 마구 물어뜯는 비극적 장면이다. 개는 먹이를 주는 주인이 바뀌면 바로 전 주인을 물 수 있는 동물이다. 





  # 30대 초반에 참모총장까지 올라간 어떤 인사가 중심이 되는 6.25 특집을 공영방송에서 방영했다고 한다. “그는 일제시대 독립군 토벌에 앞장 선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전력이 문제돼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이 때문에 다큐 방영 전부터 논란이 컸다. 독립운동단체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연대해 다큐 제작 및 방송 취소를 촉구했고, 방송국 내부에서도 비판이 일었다.” (한국일보, ‘11.6) 

  이 기사에서 말하는 간도특설대는 대한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특수 유격부대로 일본인은 얼마되지 않고 대부분 조선인들이었다. 적으로 하여금 적을 죽이게 하는 일제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술책에 넋을 팔아넘긴 사람들이 많았다. 그 부대는 무차별 학살과 약탈 그리고 부녀자 유린 같은 반인륜적 범죄 행위를 서슴없이 저질러 오죽하면 공포의 '쥐잡이부대'로 불리기까지 했다.  세상에는 꼭 해야 할 일이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해서는 절대 아니 될 일이 있다. 그러나 힘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아무 것이나 “하면 된다.”는 그릇된 사고방식, 거짓 신념에 찬 망나니들이 많은 사람들을 못살게군다.



  # "시골 어느 중학교에 재직 중인 50대 교사는 이달 초 학교상담실에서 학생에게 맞았다. 이 학생은 수업 시간에 잡담을 하며 시끄럽게 떠들었다. 도저히 수업을 계속하기 어렵자 담당교사가 이 학생을 생활지도교사에게 맡겼다. 상담실로 온 이 학생은 갑자기 문을 잠그고 상담교사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그 교사는 지금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 (조선일보 '11,6)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사람들에게는  심장의 고동이 멈추고 가슴을 저미는 이야기다. 물론 이 기사가 경제성장으로 학생들의 체력이 향상되어서, 힘센 중학생 제자가 선생과 주먹으로 맞붙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절망적인 이 사건들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연계되어 있다고 느끼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개구장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하며 오직 핏줄만 생각하는 동물적 의식구조 때문인가? 반민족행위, 반민주행위 같은 큰 죄를 저지른 인사들이 선량한 사람들을 훈계하고 혼내주겠다는사회분위기가 이어진 때문인가? 사회적동물이라고 하는 인간이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그저 나만 살겠다고 하면 결국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이어진다.
  홉스(T. Hobbes)가 말한 것처럼 그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만이 작용하는 사회에서 미래를 내다보기가 어렵다. 아무리 강한 힘도 결국에는 소멸되거나, 더 큰 힘이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힘을 함부로 쓰는 자에게 힘은 스스로의 족쇄가 되는 일이 흔하다." 평소에 “힘이 정의다” 그리고 “인생이란 불공평하다.”고 외치며 으스대던 인사들도 "저승가는 길목에서야 비로소 세상은 공평하다는 것을 깨닫고 흐느낀다."는 어느 스님의 말씀이 귓전을 울린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 관련 글들은 네이버블로그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easynomics.blog.me

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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