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시대의 초상

입력 2011-05-12 14:19 수정 2011-05-19 15:20


  얼마 전 이름이 알려진 “폴리페서”, “폴리포터”, “폴리티션” 들이 모여 벌이는 대담을 보면서 정말 가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인사들이 벌이는 언쟁인지 논쟁인지 모를 "언어의 유희"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① 상대방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② 상대방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중간에 끼어들어 엉뚱한 이야기로 초점을 흐린다. ③ 상대방의 주장은 무조건 틀렸다고 억지를 부리다가 끝내 언성을 높인다. 이들이 과연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여론을 이끌고, 나라의 중대사를 논하는 지도층이란 말인가?



  토론이란 여러가지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교환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바르게 이해하고 발전적 해결방안을 탐색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이 유명인사들은 서로 다른 시각, 다양한 의견들을 조율하고 결집하려기보다, 그저  "네 편과 내편은 다르다"는 이야기 뿐이다. 토론 도입부에서 주장한 의견을 종결부분에서도 일사분란하게 외치며 처음부터 끝까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막무가내 “너는 지고 나는 이겨야 한다”는 조급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토론의 목적인 문제의 미래지향적 해결방안 모색은 애당초 관심 밖에 있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방청객이나 모두 헛수고를 하는 셈이다.

  상대방을 무조건 불신하며 몰아붙이니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하였다. 자기 자신조차 불신하다보니 다른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버릇이 생겼는가 아니면 막무가내 상대방을 불신하는 모습을 보이다보니 자기 자신도 불신하게 된 것인가? 그 좌우전후를 모르겠다.

  얼핏 생각건대, 사람들 사이에 일부러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여 적을 만드는 한편, 그 보다 더 많은 “적의 적”을 만들겠다는 교모한 수작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적의 적은 결국 내편이라는 계산이 아니겠는가? 생각건대, 내 편을 만들기 위하여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반목하는 분위기를 고의로 조성한다면 이들이 바로 “공공의 적(public enemy)”이다. 우스꽝수러운 장면은 그리 험하게 싸우던 그들이 서로 굽실거리며 킬킬거리는 막후장면이 비쳐졌는데, 그 토론이 다반사로 벌이는 직업상의 「쇼」인지 모르겠다는 고약한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이 인사들의 주장을 보면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이요, 견강부회의 억지를 부리고 있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이란 흐르는 강물에 빠트린 물건을 찾겠다고 뱃전에 떨어트린 자국을 표시하는 일이다. 송파나루에서 떨어트린 숟가락을 마포나루까지 흘러온 돛단배 밑에서 건져내라고 뱃사공들을 들볶는 일과 다를 바 없다. 견강부회(牽强附會)란 가당치도 않은 말을 강제로 끌어다 붙여 저보다 힘없는 사람이나 전후좌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을 속이고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을 억지로 주입하려는 짓거리가 아닌가?

  문제는 이들이야 말의 성찬을 나누는 것으로 허기를 채우면 그만이지만, 거짓말에 거짓말이 섞여 퍼지다 보면 이와전와(以訛傳訛) 즉,사람들이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사람들이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를 모르게 되는 희극이 계속되다 보면, 가치관의 전도와 그에 따른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주변에서 보면 멀쩡했던 인사가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어느 사이에 무지몽매한 가치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거짓 신념에 찬 꼭두각시가 되어 아무에게나 눈을 부라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와전와 현상의 한 단면이다.



  그들이 말의 향연에서 보여주는 그칠 줄 모르는 적대감과 불신의 에너지를 신뢰와 우호 그리고 생산적 방향으로 전환할 수는 없을까? 자신의 의견과 틀리더라도 남이 왜 그런 의견을 제시하는지 생각해보는 자세가 아쉽다. 고정관념과 독단은 예외 없이 미움과 불화를 잉태하기 마련이다.
                                          
                                               졸고 신뢰의 적자(deficit of trust) 참조
easynomic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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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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