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 - 보수와 진보

입력 2011-05-04 14:24 수정 2011-08-21 09:13


  보수와 진보의 설전을 듣다보면 누가 보수주의 생각을 가졌는지, 누가 진보주의 사고를 하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들은 무엇이 보수인지 무엇이 진보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내편과 네편을 가르기데 급급하다는 인상이 든다. 그러니 그저 싸움질만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보수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고 보전하겠다는 것이고 진보는 변화와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뜻이다. 아무 것이나 욕심껏 움켜쥐는 것이 아니고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을 지켜야 진정한 보수의 의미가 있다. 또 변화를 모색할 때는 과거나 현재보다 발전되고 더 가치 있는 길이어야 진보의 길이 빛나게 된다.
  논어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불가분의 보완관계에 있음을 갈파하고 있다. 바로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 爲政 11)” 는 구절이다. 배운 것을 때때로 익히고, 새롭게 터득해 가면 그 배움과 응용이 더욱 넓어지고 커져 귀감이 될 만하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고(故)는 예전에 배운 것이요, 신(新)은 지금에 새롭게 터득하는 것이라고 풀이된다. 온고지신의 자세로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각각 다른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빛나는 세기였던 "르네상스"는 온고지신의 시각으로 보수와 진보를 조화시켜 이 땅에서 “인간의 부활”을 이끌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 인문주의자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인류가 최고의 문화를 달성했고 그 이후에는 점차 부패하기 시작하여 중세암흑사회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종전과는 달리 역사를 종교적 연속선상이 아닌 사회 문화적 발전단계로 보고 “온고지신”의 자세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산을 재발견하고 재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테는 신곡(神曲)을 쓰면서 신보다는 인간의 이야기를 하였고,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는 고전을 대중이 접근할 수 있도록 속어로 정리했다. 이처럼 옛것을 가다듬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태도는 이후의 예술, 과학 등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쳐 문예부흥(文藝復興) 시대를 이끌었다. 조금만 생각하면  보수와 진보가 본질에서 다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배운 것을 맹목적으로 외우기만 하고 이에 집착하여 서로 따지기만 하고 물고 늘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조선시대 유교를 빌미로 하여 골육상쟁이 그칠 날이 없었던 것은 온고지신을 외면하는 행위였다. 사이비 유학자들이 하찮은 사건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인 기사환국, 갑술옥사, 경신대출척 같은 옥사는 지키는 것도 나아가는 것도 없는 한낱 진흙탕 싸움일뿐이었다.



 항상 그래왔듯이 우리 근대사를 들여다보아도 보수와 진보의 뿌리는 뒤바뀌는 느낌이 든다.
  구한말 소위 수구파는 나라의 명줄은 생각하지 않고 가렴주구에만 눈이 멀어 있었다. 오히려 나라의 전통을 지키려 했던 우국지사, 독립군들은 당시 기득권과는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늘어져 가는 나라의 명줄을 지키려고 헌신했던 이들이 바로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닌가? 백범일지를 보면 그가 나라의 전통을 지키려 온 힘을 기우린 정통 보수주의자임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신문물을 받아들여야 나라가 깨우칠 수 있다며, 침략의 야욕을 불태우는 외세에 기대어, 한탕하려든 소위 개화파 인사들은 어찌 되었는가? 초심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나라의 흥망은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매국노가 되는 등 만신창이가 되었다. 시류에 따라 탈바꿈을 거듭한 무항배(無恒輩)들이 어찌 이들뿐이겠는가?



  묵은 때와 먼지를 털어낼 생각을 하지 않고 “이대로” 가자고 하면서 제 이익에만 집착하면 어거지 수구세력으로 전락하게 된다. 또 새롭게 가자는 길이 사람들을 더 피곤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면 그저 망나니가 될 뿐이다. 기회주의자들이 보수의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도 엿보이고, 또 막가파들이 진보의 탈을 쓰고 사람들을 우롱하는 행태도 자행되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은 이상은 없고 환상에 빠진 거짓 진보와 그저 약삭빠르기만 한 가짜 보수의 다툼에 따라 사람들이 엉뚱하게 편을 가르고 있다는 일이다. 쓸데없이 적대적 모습을 보이며, 어처구니 없이 미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킬 것은 지키고 나아갈 것은 나아가야 더 큰 것을 이룩할 수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보수와 진보는 견제와 균형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경제사회에서도 온고지신의 자세로 기왕에 이룩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새롭게 터득하고 나아갈 길을 찾아야 더 큰 성장과 더 조화로운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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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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