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화두(8.6)- 관성의 법칙과 ‘참나’의 유지

 

‘참나’는 존재한다.

운동하던 물체는 계속 운동하려고 하고, 정지된 물체는 계속 정지하려는 속성이 있다. 물질은 운동 관성이 있고 정신은 길들여진대로 생각하는 관성이 있다. 관심 분야 집착, 가치관과 습관, 기존 관계를 지키려는 의리, 뿌리 깊은 종교관, 좋아하는 일의 선호, 잊고 싶지만 계속 달라붙는 기억 등은 다 정신의 관성이다. 물리적 운동 관성과 정신의 생각 관성은 짝을 이룬다. 운동 관성과 오로지 한마음을 갖는 항심(恒心)이 짝, 정지된 물체와 특정 생각에 묶이는 집착이 짝, 물질 속을 뚫고 나가는 중성자와 통찰이 짝을 이룬다. 실존 물체가 있듯 실존하는 ‘참나’가 있다. ‘참나’는 기억 속의 내가 아니다. ‘참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평온, 온화, 존귀한 실체다.

 

‘참나’로 돌아가자.

작은 일로 다투고 상대의 공격에 분노하는 것은 집착 때문이다. 집착을 끊어야 ‘참나’로 돌아갈 수 있다. 집착은 정신을 파먹는 벌레이며 에고의 하수인. 돈에 집착하면 건강을 해치고, 색에 집착하면 추해지고, 한 곳에 집착하면 오로지 에고에 잡히고, 성과에 집착하면 매력을 잃는다. 엔진을 멈추려면 동력을 끊어야 하듯, 자기만의 에고에서 ‘참나’로 가려면 집착을 끊어야 한다. 그러나 욕심과 결탁된 집착을 끊는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어렵다. 집착에서 벗어나려면, 집착의 흉한 꼴을 스스로 응시하여 자각하고, 집착의 최종 상태는 허무한 싸움임을 깨닫고, 집착은 ‘참나’를 죽이는 독극물임을 각성하자.

 
‘참나’를 잊어라.

강을 건넜으면 배를 놓고 가야하듯 ‘참나’를 찾았으면 ‘참나’를 잊어야 한다. ‘참나’는 각성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나’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유지. 전선(戰線)을 넘는 병사는 자기마저도 잊어야 산다고 했다. 일을 시작하면 ‘나’라는 존재마저 잊자. 하루살이도 비행을 할 때 우주의 일부가 되고, 인간보다 청각과 시각이 100배 이상 발달한 개도 자유롭게 뛸 때 그 감각을 느끼고, 우리는 ‘참나’마저 잊고 묵묵히 행동할 때 성장한다. 마음이 변하는 것은 기적, 그 기적을 행하게 하는 마음은 깨우침, 깨우침을 완성하는 것은 ‘참나’이며, ‘참나’마저도 잊게 하는 것은 불멸의식이다. 우주의 영원한 일부임을 각성하여 두려움 없이 당당하자.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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