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의 양심 때문에"

입력 2011-03-03 14:37 수정 2011-05-03 10:13


  한때 프로복싱 유망주였으나 승부조작에 연루되어 부두노동자로 전락한 테리(말론 브란드)는 악덕 노조위원장이 저지른 살인사건에 휘말린다. 부두노동자들의 인권이 유린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지의 성직자 배리 신부(칼 말든)가 양심에 호소하며 줄기차게 설득하자 테리는 번민한다. 진실을 증언하면 밀고자로 매도당하여 목숨을 보전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진실을 외면하자니 억울하게 죽은 자에 대한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다. 정신적 방황을 거듭하던 테리는 “그 놈의 양심 때문에 미치겠다.”라고 절규하다가 마침내 법정에서 진실을 밝힌다. 1950년대 영화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에 나오는 미국 “하류 사회”의 양심과 용기에 관한 이야기다. 밑바닥 인생들도 몸부림치며 지키려한 그 거역할 수 없는 자부심이 “20세기 팍스 아메리카나”의 주춧돌이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끼리끼리 편을 가르며 특별이익을 은밀하게 나누어 가지려는 조직이나 사회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일이 오히려 배신행위로 낙인찍히기 쉽다. 사람들이 당당하게 진실을 밝히기를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어쩔 수 없이 유언비어가 떠도는 것이 정해진 이치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이름을 내걸고 잘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공동체 정신은 실종되고 어둠 속에서 상대방을 음해하는 투서가 난무하기 마련이다. 한 때 사정기관에 근무하였던 어떤 인사가 우리나라를 “투서공화국”이라고 하며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결단을 내리고 양심에 따라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을 보호하고 격려하기보다는 오히려 밀고자라는 멍에를 씌워 수렁에 빠트리는 분위기 때문인지 모른다.

  한국의 “대우사태”처럼 미국 경제에 큰 파장을 미친 엔론(Enron) 사태를 보자. 에너지 기업 엔론은 포천지에 의하여 ‘96~'01 6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되었으며, 비즈니스위크지에 의하여 올해의 에너지 기업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관계회사와의 허위, 내부거래를 통하여 장부상의 이익을 부풀리고 그 동안에 정작 CEO는 자기주식을 내다 파는 파렴치한 일들이 자행되었다. 외부에서 보는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이면에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경제적 사대주의가 판을 치던 IMF 사태이후, 아마추어가 전문가를 희롱하던 그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온갖 거드름을 피던 “아서 앤더슨”도 엔론의 회계행위를 조언하다가 같이 무너졌다.



   만약 거짓과 부정을 바로 잡으려고 호루라기를 힘차게 부는 내부경보자(whistle blower)가 제 때에 나타났다면 미국경제의 파장이 그리 크지 않았고 일류기업 엔론 주주들의 손실도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최고경영자가 종신징역형을 선고받는 일도 막았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 사건 이후 "호루라기 부는 사람"에 대한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장려하는 조치가 단행되었다. 외부 감시제도가 아무리 발달하여도 내부에서 직접 일을 하며 지켜보는 사람만큼 문제점을 똑바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정직하고 용기 있는 시민만이 하는 것이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구약성서 레위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이웃이 잘못하였을 때 속으로 욕하지 말고, 잘못한 점을 지적하여 바로잡도록 할 의무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아마도 근대 서구사회 시민정신의 기틀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사족 하나 덧붙이자. 잘잘못을 당사자 앞에서 정당하게 가리지 않고, 뒤에서 이리저리 꾸미고 비난하는 자를 어찌 친구라고 하겠는가? 


easynomic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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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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