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버리는 과정이다

입력 2011-02-23 14:39 수정 2011-03-06 08:12






  아시아 외환금융위기 이전 어떤 저명인사에게 "망할 기업이 망하지 않아 앞일이 걱정된다."고 하였다가 “기업이 흥해야 수출도 하고 먹고 살지 망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핀잔을 받은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97 외환금융위기를 초래한 원인의 하나는 부실기업이 도산하는 것을 그냥 놔두지 못하고 구제 금융을 퍼부어 지원하거나 건강한 기업에 억지로 인수시키는 과정이 반복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일부 대기업집단은 대마불사 속설에 젖어서 선단(船團)경영을 하면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끌어안으려 했다. 물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부둥켜 붙잡고 있으면 다 같이 빠져 죽는다. 그래서 서로 붙잡고 있었던 기업은 나라 경제에 큰 부담을 안기고 무너져 갔고, 미련을 버리고 재빨리 부실기업에서 손을 뗀 기업은 재기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처럼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기업은 기업대로, 금융회사는 금융회사대로 깊은 멍이 들게 되었다.



  사양산업, 부실기업이 도태되지 않으면 인적 물적 자원이 저부가가치 산업에 묶이게 되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하지 못한다. 실업률이 어느 정도 되어야 새로운 산업이 피어나듯이 모든 사람들이 고용상태에 있다면 도전정신이 없어져 산업구조 고도화가 진행되지 못한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자. 고무신 공장의 고용효과가 높다 하여서 공장이 잘 돌아가도록 이리저리 지원하면 단기적이나마 경영자는 경영안정을 기할 수 있고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안정된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저생산성 저임금 산업이 계속 돌아가게 함으로서 나라 전체의 생산성은 그만큼 저하된다. 그리고 근로자는 생산성이 높은 산업에 종사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낮은 임금을 감수하여야 한다. 결국에는 생산성이 높은 타 제품에 밀려 공장은 결국 문을 닫아야 한다.



  만약 자본 기술 정보 같은 생산요소들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저부가가치 산업에 묶이고도 높은 성장을 달성하게 된다면 물가상승, 거품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당장은 어떨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생산성을 저하시켜 성장잠재력을 낮추게 한다.

  바둑을 둘 때 폐석이 되어가는 무거운 돌을 애써 살리려고 힘을 들이다 보면 무리수를 두게 되고 결국 게임을 망칠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컴퓨터에 지워버릴 것은 지워야 속도가 빨라지는데 이것저것 옛날 것이 아까워 지워버리지 못하면 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말이지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미래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제 때에 퇴출되도록 유도하여야 인적 물적 자원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하여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길이다.



  경제성장에 관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쿠즈네츠도 경제성장은 "쉬지 않고 버리는 과정"이라고 하였다. 이 세상의 모든 환경과 문물은 끊임없이 변해가고 있으므로 과거의 낡은 생각의 틀, 낡은 관습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산업에 발달하고 결과적으로 더 큰 성장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어린이가 자라면서 체격에 맞게 옷을 바꿔 입어야 하는데 옛날의 비단 옷이 비싸다고 그냥 입히면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이치와 꼭 같다. 생각건대 쿠즈네츠가 이런 주장을 한지도 벌써 반세기가 훨씬 더 지난 지금,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으므로 버리는 과정도 한층 더 빨라져야 할 것이다.



  애벌레가 비상하려면 허물을 벗어버리는 탈바꿈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지향하면서 100불, 1,000불 시대의 낡은 관념과 법규의 틀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 볼 일이다.

  한국경제가 이제는 소위 “트리플 1조 시대”를 맞았는데, 시장을 억지로 끌어당기거나 막무가내 억눌러 성과를 달성하려는 어리석은 자세도 버려야 한다. 개발초기 단계에서는 설사 최종목표와 중간목표가 엇갈리는 정책을 펼쳐도 성장속도가 빨라 그 부작용이 덮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커졌는데도 미봉책을 쓰다가 목표와 수단이 어긋나면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커지게 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기업부분에서도 힘이 약한 기업이 가까스로 개척한 시장을 잠식하여야 클 수 있다는 낡은 생각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과거 산업화시대의 영역확장에 집착하는 발상에서 벗어나야 획기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할 수 있다.
 
  세상에는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는데 그저 “하면 된다”는 자세가 자칫 모든 것을 망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easynomic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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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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