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 질서

입력 2010-10-13 09:00 수정 2011-02-28 10:35
  이 세상에는 꼭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정말 안 될 일이 있다. 예컨대, 과거를 보려는 자식에게 열심히 글을 읽도록 독려하는 일은 어버이로서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경쟁력이 없는 자식을 편법을 동원하여 등용시키는 일은 적어도 공복(公僕)이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그냥 “하면 된다”고 하면서 무엇이든 밀어붙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느 누군가는 특혜를 입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더 큰 불이익을 반드시 당하게 마련이다.
  비단 우리사회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유력 인사들 중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투명하고 정상적 절차보다는 여기저기 줄을 대고 물밑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러다가 제 뜻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상대 조직 전체를 묶어서 매도하면서 "사람을 몰라보는 버릇없는 놈들"이라고 욕하기 일쑤다.

  이렇게 힘을 자랑하던 인사들일수록 권한은 최대한 향유하고 책임은 무조건 회피하는 행태를 보이기 일쑤다. 사람들을 준엄하게 꾸짖고, 핏대를 올리며 훈계하던 인사들이 정작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자, 줄행랑을 치는 해괴한 꼬락서니를 애처롭다고 해야 할 것인가?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여야 책임 있던 자리에 있던 사람의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개인은 떠나도 조직과 사회는 계속하여 유지, 발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맹자는 사회질서 유지의 틀을 패도(覇道)와 왕도(王道)로 구분하였다. 덕으로서 인(仁)을 행하는 것을 왕도(the rule of right)라 하고, 힘으로써 인을 가장하는 것을 패도(the rule of might)라 하였다. 패자(覇者)는 무력을 과시하거나 여차하면 혼내 주겠다고 은연중에 겁을 주어 권위를 유지하려고 한다. 권위주의적 카리스마 질서는 신뢰사회의 근간이 되는 합법적 질서, 전통적 질서를 교란시킨다. 조금만 생각하면, 힘의 질서가 막무가내 판치게 되면 법과 원칙이 뒤틀리고 꼬이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일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카리스마(charisma) 질서 즉 힘의 질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단단해 보여도 무너지기 쉽다. "패밀리"의 우두머리가 힘이 있을 때는 충성을 맹세하고, 같은 패거리라는 것을 뽐내는 인사들이 늘어난다. 그러나 그의 힘이 약해지고 더 힘센 인사가 나타나면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나는 누구의 사단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모습도 우리는 보았다. 그래서 “패권사회에서 우두머리의 성공과 실패는    곧바로 추종집단 전체의 이합집산으로 이어진다.”라고 막스 베버(Max. Weber)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신뢰의 기반 없이 힘으로 유지되는 관계는 힘이 있으면 모이고, 힘이 없어지면 그대로 흩어지는 장바닥 세리지교(勢利之交) 즉 까마귀들이 모였다 흩어졌다 하며 깍깍거리는 오집지교(烏集之交)가 된다는 말이다.

  상을 받을 사람이 상을 받고 벌을 받을 사람이 벌을 받는 신상필벌  원칙이야 말로 모든 합리적 질서의 기본이 된다. 그런데 힘이 남용되는 조직과 사회에서는 벌을 받을 자가 오히려 상을 받고, 상을 받을 사람이 벌을 받는 일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특히 공조직에서 이러한 일이 생기면 조직과 사회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희미하게 뒷전으로 물러나고, 실력자 개인을 위하여 뛰는 끄나풀들이 힘을 쓰고 앞에 나서게 된다. 조직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면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글자 그대로 "콩가루 집안"이 되기 쉽다.
  힘의 질서가 잔존해 있으면 갖가지 경로를 통해 시장경제 시스템을 이리저리 좀 먹는다. 이를 배척하고 법과 원칙에 의한 질서를 다지려는 각오와 실천이 바로 "정의가 넘치는 사회" 그리고 "공정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걸음마가 아니겠는가?

  권위주의가 상당 기간 이어졌던 사회에서는 "카리스마"를 흉내 내는 인사들의 모습도 엿보인다. 꽤 시간이 흐른 이야기다. 외국어와 애매모호한 표현을 섞어가며 권위(?)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재주를 가진 인사가 있었다. 어느 날 어떤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도 엉뚱한 말로 얼버무려 설명했다. 한 풋내기는 “역시 카리스마가 있다”고 외경심을 가지는 데 반하여, 다른 노련한 기자는 “이제는 정말 맛이 갔어” 하며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 가장된 카리스마가  시장에 엉뚱한 신호를 몇번이나 보냈을까? 그 피해는 다 선량한 사람들이 뒤집어 쓴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말자.

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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