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피점’을 기억하십니까? ‘잘각일’의 추억

입력 2008-09-19 15:46 수정 2009-05-21 14:39
 

 

 어렸을 적, 우리는 사진인화를  ‘디피점’에서 했다. 간판에 ‘DP&E’라고 씌어 있어 그렇게 불렀다.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른 채.

Developing, Printing & Enlarging, 즉 현상 인화 확대라는 뜻이었다. 굳이 왜 이런 어려운 영어 약자를 썼을까. ‘사진관’이라는 말이 더 편했을텐데… 아마도 촬영장비를 갖춘 스튜디오들이 ‘사진관’이라는 말을 쓰고 있어 이와 구분하기 위해서이었을 것이다.

한편 일반 사진관보다는 좀 더 큰 규모의 스튜디오나 전문성을 가진 사진관들은 굳이 ‘사장’이라는 말을 썼다. 당시 ‘허바허바 사장’은 TV광고를 할 정도로 규모가 컸었다.

서울의 경우, 주택가에서 디피점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서민의 생활과 밀접했던 업종이었다. 필름도 이곳에서 샀고, 카메라가 드물었던 시절이라 소풍을 갈 때 이곳에서 카메라를 빌리기도 했다. 주인 아저씨가 세팅해 놓은 조리개 8 셔터스피드 1/125는 죽어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철칙과, 해는 등지고 그늘에선 가급적 찍지 말라는 세칙을 머리에 새기면서…어찌했건, 당시 디피점 주인은 주민들에게 기본적인 사진기술을 가르치는 역할도 했던 것이다.

 

이젠 필카를 멀리 하니 ''''뷰박스''''나 ''''루뻬''''도 볼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어디를 한 번 놀러 가게 되면 이 디피점에 최소 3~4번은 들러야 했다. 필름 살 때 우선 들르고, 필름 맡기러 또 오고 찾으러 한 번 더 오게 된다. 이 때 단체 사진이나 여럿이 찍은 사진이 포함되어 있으면 인원수대로 추가로 인화를 주문해야 하므로 한 번을 더 오게 된다. 그래서 디피점 주인은 동네 사람들과 많은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더욱이 사진을 통해 가족 관계나, 어디를 놀러 다니는지 등 개인사도 속속들이 알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필름을 맡길 때 많은 옵션이 있다. 사진 사이즈나, 인화지 종류, 흰테두리 유무 등 일반적옵션과 더불어 필름 현상 결과물을 안 본 상태에서 선택해야 할 것들이 있다. 한 번 더 찾아 오는 번거러움을 줄이기 위해 ‘인원수대로’라는 주문과, 잘 나오던 못나오던 한 장씩 뽑아달라는 ‘무조건 한장씩’, 그리고 ‘잘각일’이라는 용어가 있었다.

아무 말 안하고 맡기면 ‘무조건 한 장씩’이 되므로, ‘잘 나온 사진만 각각 한 장씩’만 뽑아달라는 주문이다. 필카시절, 생각 없이 막 누르다 보면 노출이나 핀트 안 맞는 사진이 허다하기 때문에 이런 사진은 뽑지 말라는 뜻이다. 사진을 망쳤다는 아쉬움에다 인화값의 압박은 그 고통을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카메라 들고 갖은 폼 다 잡고 친구들에게 큰 소리 치며 찍어온 소풍 사진이 망가졌을 때 그 참담함이란…

이러한 과정 속에서 디피점 주인과 옥신각신 하는 경우가 생긴다. 촬영은 정상적으로 됐는데, 사진을 잘 못 뽑아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잘각일’이라 했는데, 촬영을 잘못한 사진을 왜 뽑았느냐는 걸로 다투게 된다. 문제는 잘 못된 사진에 대한 인화료를 받느냐 안 받느냐가 쟁점이 된다. 또 하나의 쟁점은 잘못 찍은 사진의 기준이다.

중학교 시절, 암실사용이 용이하지 않았던 나는 동네 디피점을 자주 들락거렸는데, 초기엔 이 집 주인과 많이 다퉜다. 항상 주문을 ‘잘각일’로 했기 때문이다. 당시 현상을 맡겼던 필름들은 일반적인 기념사진보다는 나름대로 작품사진이라고 찍은 것들을 많이 맡겼기 때문에 잘된 사진의 기준이 모호했을 것이다. 어느 날은 역광 사진 위주로 잔뜩 찍어 맡겼더니 사진을 2~3장 밖에 안 뽑은 적도 있었다. 다 노출 부족이라서 안 뽑았다나…

그래서 이후엔 한 번 더 가게 되더라도 ‘현상만’ 해서 직접 내가 필름을 보고 인화할 사진을 골랐다. 자주 간 만큼 그 아저씨와 친해질 수 있었고, 고등학교 시절엔 그 가게에 있는 암실도 사용할 정도가 되었다. 대신에 주문 들어온 흑백사진을 뽑아주는 노동력도 제공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칼라시대가 도래하면서, 흑백사진은 도태되고 빨리 칼라사진을 뽑아주는 45분, 27분, 23분칼라에 ‘디피점’은 존재 의미를 잃기 시작, 80년대 들어서면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때 그 주인 아저씨는 지금쯤 디지털 현상소 사장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 길을 제대로 옮겨 타 갔으면 말이다.


까까머리 시절, 암실에서 첫 인화의 감동을 먹은 후 아직도 빛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40년차 아마추어 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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