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와 차선

입력 2010-05-27 09:00 수정 2011-02-07 08:30
  새벽 공항 다녀오는 길에 올림픽대로에서 상당한 고급차가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끼어들어 당황하기도 하고 기분도 좋지 않았다.

  수십 년 전 신병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운전교육대에서 비인간적 취급을 받으며 배운 두 가지 운전수칙은 지금까지도 내 삶의 교훈으로 남아 있다. 그 하나는 “브레이크를 가장 먼저 점검하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차선은 미리미리 바꾸어라”였다.

  # 우리가 자칫 잊기 쉬운 일이지만 운전할 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은 제 자리에 제때 정지하는 기능이다. 달리는 것은 좀 늦게 달려도 되지만, 멈추는 일에 착오가 생기면 정말 큰 일이 날 수 있다.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 났을 때,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되어야 엎친데 덮친데 불행을 막고 삶의 “연착륙”을 이끌어 낼 수 있다.

  # 다음 속도가 빠른 도로에서는 미리 미리 차선을 바꿔야 불의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예컨대 고속도로 나들목 같은데서 누군가 갑자기 끼어들면 상대방이나 자신이나 미처 방어할 기회를 갖지 못하여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이 변화가 빠른 사회는 고속화도로와 다름없어 언제 어디서 뜻하지 않게 충격이 올지 모른다. 변화의 방향을 내다보는 자세로 한계지점에 이르기 전에 대응하여야 위험을 극소화할 수 있다. 예컨대, 고급인력이 고임금을 받고 지진과 화산을 연구하는 목적은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화산이 폭발하기 전에 경보를 울려야 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금융·외환위기는 브레이크를 제 때 밟지 못하였고 차선도 바꾸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덩치가 커지면 기업도산에 따른 사회적 파장이 커지므로 “구제금융”을 퍼부을 것이라 판단하고 과잉투자에 대한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라는 전시효과 때문인지는 몰라도, 경상수지 적자가 불어나는데도 저환율을 고집하였다. 날개 달린 환율은 저만치 날아 나가는데, 허공에 대고 구멍 난 잠자리채를 휘두른 꼴이 되었다.

  지금 우리경제에 내연하고 있는 과동유동성 문제와 엇갈리는 부동산 시장 문제를 생각해볼 때, 제동장치와 차선 바꾸기가 제 때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이 간다.
 
                                                                   졸고 "더블 딜레마 " 참조

 개인과 기업은 물론 국가도 제동장치와 차선 바꾸는 일을 소홀히 하게 되면 눈앞의 실적과 수치만 생각하는 단기업적주의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예방조치를 하는 보석 같은 일을 하찮게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사회에서도 그저 사단(事端)이 벌어진 후에야 야단법석을 하며 땜질을 하는 일이 대단한 것처럼 여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사람들이 오히려 유능한 것으로 평가되는 우스꽝스러운 일도 자주 벌어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원칙보다 묘수를 더 평가하는 풍토가 조성된 것도 사실이다. 바둑 한 판에 세 번 이상 묘수가 나오면 진다고 하는 교훈을 생각해보자.

  무릇 모든 일이 그렇듯이 앞으로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멈출 수도 있고, 돌아갈 수도 있어야 한다. 한 때 일세를 풍미하던 인사들 중에 명예롭지 못하게 물러난 사람이 많은 까닭은 그저 나아갈 줄만 알았지 물러설 줄은 몰랐기 때문이 아닌가?

  이 세상에는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그런데도 무엇이든 그저 “하면 된다.”는 독선이 제동장치를 제 때에 작동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앞을 내다보지 않으려는 근시안적 자세가 차선을 미리미리 방향을 바꾸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 볼일이다.
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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