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장의 사진 --- 대웅전

입력 2008-02-16 08:01 수정 2008-07-08 15:53
 


 


 최근 이사를 하느라 짐을 꾸리고 풀던 중 이 한 장의 사진을 찾아냈다. 정확히 30년 전 고딩시절에 찍은 사진이다. 마치 숨겨놓은 보물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진을 찍다 보면, 마치 낚시꾼이 거대한 입질을 받았을 때 느낌처럼, 찍는 순간 가슴이 뛰는 경우가 가끔 있다. ‘작품이다!’하는 이런 느낌 말이다. 이 사진이 나로 하여금 셔터를 누를 때 처음으로 가슴 뛰게 했던 사진이다.


 



camera : ASAHI PENTAX KM,  lens : 50mm(f1.4),  film:GOF


 


 보문동엔 보문사처럼 큰 절 말고도 작은 절이 있다. 학교에서 나와 보문동 쪽으로 사진 찍으러 어슬렁거리며 다니다 꽤 높은 지역 주택가(달동네)에서 우연히 발견한 절이었는데 사찰명이 청룡사인가… 그랬다. 이후론 한 번도 그곳에 가본 적이 없어 지금 그 자리에 자리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겠다.


 


 사찰로 보이는 건물에 작지만 오래된 듯한 문이 빼꼼이 열려있어 그 틈으로 들어서니 긴 육각의 공간구성이 눈길을 확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오는 대웅전의 현판. 그 밑으로 계단의 라인이 빛을 받아 선명히 살아났다.


절 입구의 구조를 보면, 대문이 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서 밑에서 위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가야 뜰이 나오고 대웅전이 나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서 사진을 만들어주었던 포인트는 대문이었다. 문이 거의 닫혀 있는 상황이라 계단과 벽면들이 어둡게 나올 수 있었고 그래서 육각의 형태가 더 뚜렷하게 보일 수 있었다. 만일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면, 계단과 천정이 환하게 나와 그 형태를 쉽게 포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선이 선명하여 핀트 맞추기도 좋았다. 일단은 이 상황에서 몇 장 찍고 대웅전이 있는 뜰로 올라갔다. 엄마를 따라온 여자아이 하나가 뜰에서 뛰놀고 있었다. 순간 이 아이를 입구에 앉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숙한 분위기와 언밸런스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접근했다. “오빠랑 사진 하나 찍자… 이쁘게 찍어줄께” 그러자 이 아이는 일언반구 없이 바로 튀어버린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모델촬영엔 취미가 없던 나는 바로 포기하고 경내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경내를 나오기 위해 계단을 내려 오다가 한 컷 더 찍겠다는 생각으로 돌아보니 ‘오호..귀여운 것’. 시키지도 않았는데 난간에 걸터앉아주는 것이 아닌가. 찍자고 할 땐 안 찍겠다더니...거기다 다양한 포즈까지 취해준다.


애든 어른이든 여자는 다 여우...내숭덩어리다.


원래 생각은 반대쪽에 앉히려고 했지만, 그 위치도 괜찮다 싶어 셔터를 눌렀다. 지금 찍었다면 필름 한 통 다 찍었겠지만 돈 없는 고삘이라 동작 표정 봐가며 딱 3장 찍었다. 거기서 건진 사진이 이 사진이다.


 


 


이 사진은 당시 선배들에게도 반응이 좋아 전시회 때 여러장 추가 인화되기도 했다. 내친김에 이 사진을 처음으로 월간 ‘영상’지에 학생부도 아닌 일반부에 출품(월간 콘테스트)을 했으나 입선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 어린 마음에 그 이상의 결과를 기대했던 나는 그 이후로 어느 콘테스트에도 출품하지 않게 되었다. 어찌했던 간에 이 사진은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알려 준 사진이다.


 


이 사진의 아이도 이제는 30대 중반 주부가 되어 있겠지. 아마?
까까머리 시절, 암실에서 첫 인화의 감동을 먹은 후 아직도 빛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40년차 아마추어 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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