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맞어?

입력 2013-02-26 09:30 수정 2013-02-26 09:30


꽈~악 막힌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아까워, 명절이 지나고 일주일 뒤에 고향에 내려갑니다. 마음까지 시원하게 뻥 뚫린 도로와, 친정에서의 오붓한 시간에 대한 기대감으로, 밀려오는 작은 행복을 맛보는 시간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고향이건만, 그리 낯설지 않음은 부모님이 계신 곳이라서 그런 가 봅니다. 가끔 3,4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풍경이라도 만나면 반가움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고향에 사는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고, 고향 밖에 사는 사람들은 고향의 보존을 원하지요.



 지나는 길에 있는, 모교 초등학교 울타리에 ‘반갑다. 친구야!’라는 프랭카드가 보입니다. 고향에서 활동하는 동창들이, 명절을 맞아 찾아오는 동창들을 위해 걸어 놓았나 봅니다. 문구가 고마워, 미소 한 번 짓게 됩니다. 어디서 뭘 하며 지내는지, 30년 세월이 흘러 길 가다가 만나도 그냥 스칠 친구들도 궁금합니다. 이제는 친구라고 하기도 어색할 텐데 말이죠.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는 데, 친구의 범위를 어디까지 두어야 할지 애매하기도 합니다. 어쩌다 만나는 친구의 친구도 친구로 포함하는 사람도 있고, 아는 사람정도를 친구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많음을 자랑하기도 하지요. 많든 적든 아무렴 어떻습니까. ‘강남’까지 따라갈 만큼, 친구는 좋은 존재인데요. 그래도 가끔은 수(數)의 많고 적음을 떠나, ‘진정한 친구’라고 할 친구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옛날, 어느 부잣집 주인이 항상 친구가 많음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에게 “당신에게 친구가 많은 건, 당신의 돈 때문이에요. 술 사주고, 밥 사주니 사람이 꼬이는 거라구요!”라는 핀잔을 들었습니다. 부자는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특별히 친한 세 친구에게 이 말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첫 번째 친구는 “나는 자네에게 전 재산이라도 줄 수 있네”라고 했고, 두 번째 친구는 “나는 자네를 위해 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네”라고 말하고, 세 번째 친구는 “나는 자네에게 줄 건 없지만, 자네와 함께 해서 기쁘네”라고 우정을 과시했습니다. 부자는 크게 음식과 술을 나누며 기뻐했습니다.



 부자가 집에 돌아와 부인에게 큰소리를 치자, 부인이 부자에게 제안을 합니다. 깜깜한 새벽에 부자는 손수레에 거적을 덮은 멧돼지를 싣고 친구들 집을 찾아갑니다. 첫 번째 친구집의 문을 두드리며 말합니다. “여보게!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네. 날 좀 도와주게.” 그러자 친구는 문도 안 열어주고 “이 사람아. 그런 곤란한 일로 나를 찾아오면 어쩌나. 그냥 돌아가게”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친구에게 가서 똑같이 말하자,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구먼. 우리사이는 없던 일로 하세!”라는 쌀쌀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부자가 실망하여 돌아가려다가 마지막으로 세 번째 친구에게도 찾아가 같은 말을 합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여보게 얼마나 놀랐는가? 어서 들어와 어찌해야 할지 나와 상의하세!”라며 급히 부자를 방으로 들입니다. 그날 부자와 세 번째 친구는 멧돼지로 잔치를 벌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세 번째 친구 같은 진정한 친구를 찾으시겠다구요?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런 친구가 되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게 더 쉬울 테니까요.(^^)



<김윤숙 coool66@daum.net>
공감소통연구원 대표, 대전혜천대학 겸임교수로 활동중이며, '행복 인생 만들기'란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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