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백서

입력 2012-11-27 22:32 수정 2012-11-27 22:32




외삼촌댁에서 100세 가까이 사시다가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아파트에 사시는 걸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집안에 있다는 것이 그랬고, 김장을 마당에서 담그지 못한다는 게 그랬습니다. 노년에 풍 때문에 몸이 조금 불편해 지시면서 화장실타박은 없어졌지만, 김장만큼은 마당에서 담그고 땅에 묻은 항아리에 넣은 걸 제일로 치셨지요. 짠한 동치미국물과 항아리 속 김치 맛 때문인지, 한 겨울 위풍 센 우리 집에서의 며칠을 기다리곤 하셨습니다. 이젠 친정도 땅에 묻은 항아리가 아닌, 김치냉장고를 들여 놓은 지 벌써 몇 해가 지났습니다.



 김장을 하러 친정에 다녀왔습니다. 무려 200포기. 김치공장 수준입니다. 5남매가 1년 가까이 김치걱정 안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합니다. 더운 여름에 친정아버지가 심어놓은 배추가 실하게 자라 마당에 가득했습니다. 하나 둘, 엄마의 손맛이 최고라고 기억하는 DNA를 가진 5남매가 김치통을 들고 모여듭니다. 마당 한편으로 쌓아놓은 김치통들이 또 다른 장관을 이룹니다.



 양념이 버무려지고 저마다 입을 벌린 김치통들이 자리를 잡고, 모두 둘러 앉아 김치통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똑 같은 재료로 버무리는 김치지만, 엄마가 버무리는 김치는 맛이 달라 단연 인기입니다. 서로 자기 통을 가져다 놓고 엄마가 버무린 김치를 얻어가려고 눈치작전이 심합니다. 엄마의 손맛을 욕심내는 우리들의 전쟁이 흐뭇하신지, 엄마는 200포기를 혼자서 다 버무리실 기세로 손이 점점 빨라지십니다.



 김장의 필수품은 돼지고기 수육입니다. 된장 한 숟갈, 대파, 무, 양파를 듬뿍 넣어 부드럽게 삶은 돼지고기와 배추속은 일 년에 한 번 누리는 미식(美食)이지요. 가을배추와 김치양념, 삶은 돼지고기는 비길 데 없는 찰떡궁합입니다. 아버지는 막걸리 한 병을 꺼내 오시고, 갑자기 과다해진 노동으로 아파진 허리도 혀끝의 호사와 함께 저절로 펴집니다. 철없을 땐 수육과 배추속을 너무 먹어 배탈이 나기도 했었지요.



 여든이 가까워지시면서 김장때마다 “나 없더라도 김치는 사먹지 말고 담어 먹어”라는 엄마의 말에, 없긴 왜 없냐고 제가 화를 냅니다. 두 분이 안계시면 자식들이 ‘근본 없는 김치(?)’라도 먹게 될까 걱정이십니다. 막걸리 한 잔을 걸치신 아버지도 한마디 덧붙이십니다. “밥 잘 먹고, 운전 조심허고, 사람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그럼 되는 겨.” 매번 듣는 충청도 양반의 ‘인생어록’입니다. “아부지~ 우덜 밥 잘 먹을라믄 엄마, 아버지가 담근 김치 있어야 하니께 오래오래 사셔유!” 진한 사투리와 함께 막걸리 한 잔을 채워드립니다. “허허허~” 몇 개 남지 않은 아버지의 이가 환하게 얼굴을 내밉니다.



 김장은 하셨는지요?
<김윤숙 coool66@daum.net>
공감소통연구원 대표, 대전혜천대학 겸임교수로 활동중이며, '행복 인생 만들기'란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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