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으면 읽힌다!

입력 2012-12-28 17:20 수정 2012-12-28 17:20
읽지 않으면 읽힌다!



유학 시절에 만끽했던 즐거움 중의 하나는 도서관 신간코너에 주기적으로 가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이책 저책을 들춰보고 거들떠보면서 제목이 끌리거나 목차가 마음에 들면 무조건 복사하는 습관이다. 가난한 유학생이 신간을 사보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책을 통째로 복사해서 하얀 종이위에 담긴 저자의 숨결을 따라 읽으면서 지적 희열감을 느끼고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다른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와 연결시키면서 다양한 지적 도전체험을 했던 추억은 아직도 눈에 선하고 귀에 생생하다. 복사를 반복해서 하다보면 숙달이 되어 순식간에 책 한권을 복사하는 노하우까지 덤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그렇게 복사한 책을 도서관의 조용한 서가에 앉아 읽다보면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다.



또 하나 도서관에 가서 주기적으로 했던 일은 신착 저널을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목차를 읽어보고 그 내용이 마음에 끌리면 무조건 복사해서 읽어보는 일이다. 한 개의 저널에서 하나의 아티클을 읽다보면 그 논문을 쓴 저자가 인용한 글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등장한다. 한 편의 논문을 쓰기 위해 가장 최근까지 발표한 관련 논문을 충분히 읽고 각각의 논문이 간과한 문제나 분야가 무엇인지, 그리고 한계점이나 치명적인 약점이 무엇인지를 파고들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인 논문을 쓴다. 따라서 학술지의 논문 한 편을 제대로 소화해내기 위해서는 수십 편의 논문과 수십 권의 책, 많게는 수백 편의 논문과 수백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논문과 책을 찾아 도서관을 헤매는 가운데 지치기도 하지만 뜻밖의 생각지도 못한 논문이나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참을 수 없는 공부의 즐거움이었다. 찾고 찾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인식의 광맥을 만나 한 동안 그곳에 머물러 그 우물을 파다가 예상하지 못한 인식의 깊이와 넓이에 부딪혀 좌절과 절망감을 맛보기도 한다. 이 많은 글을 언제 다 읽어낼 것이며, 설혹 그걸 다 읽는 다 해도 나는 어는 정도 수준의 인식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한없는 의문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새벽이 가까워지면 복사한 책과 논문을 들고 다시 연구실로 들어가 밤을 밝히면 읽고 또 읽었다.



읽어야 다른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읽지 않으면 읽힌다. 다른 글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글을 읽었는지에 따라 좌우된다. 우리는 평생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어야 사람을 읽을 수 있고, 세상을 읽을 수 있다. 읽어야 일거에 일어날 수 있다. 읽은 책을 통해 깨달음이 축적되면 어느 순간 일거에 일어나는 경이로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읽지 않으면 잃는다. 읽지 못하면 안목과 식견이 생기지 않고 나를 잃는다.

 
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s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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