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적자(deficit of trust)

입력 2009-11-17 09:00 수정 2011-02-28 11:20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서로 속이고 속는 혼탁한 모습을 보이던 전국시대인 BC359년 진나라 진효공의 신임을 받은 상앙(商鞅)은 야심찬 개혁안을 마련하였다. 그는 백성들이 신뢰하지 않고, 따르지 않으면 어떠한 개혁도 물거품이 되기 쉽다는 점을 간파하였다.

  상앙은 개혁 시행하기에 앞서, 남문 앞 저자거리에 3장(丈) 크기의 나무를 세워 놓고 그 것을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거금 10금을 주겠다고 방을 붙였다. 어느 누구도 이 약속을 믿지 않고 코웃음만 치자, 상금을 50금으로 크게 올렸다. 밑져도 본전이고 크게 혼날 일이야 있겠냐는 생각을 한 어떤 백성이 그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자, 즉시 그 큰돈을 상으로 주었다. 나라에서 한 약속은 무엇이든 반드시 지킨다는 모습을 백성들에게 실천으로 보여 준 셈이었다.

  그 다음 새 법령을 공표하고 왕족이건 천민이건 차별 없이 지키게 하였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믿고 따르자 나라는 부강해지고 진나라가, 500년 이상 이어져 온 춘추전국시대를 평정하고, 통일천하를 이룩하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사마천의 사기 상군열전(卷68 商君列傳)에 있는 이 고사는 사람들 사이에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깨우쳐 주는 교훈이다.

  신뢰는 사람들로 하여금 합리적 사고와 정직한 행동을 예상하게 하는 도덕적 기반을 뜻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존중하고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규범의 바탕이 신뢰다. 신뢰는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필수불가결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된다.

  어떤 사회의 경제적 역량이 그대로 경제적 성과로 연결되려면 그 공동체의 신뢰기반이 구축되어야 한다. 경제개발 초기단계에서는 구조가 단순하므로 설령 신뢰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저 열심히 하면 극복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숙단계에 접어들어 경제구조가 복잡해져 신뢰관계가 망가지면 경제의 순환에 문제가 생긴다. '97년 아시아 외환·금융위기도 그리고 작금의 세계경제위기도 국가, 금융기관, 기업, 가계에 대한 전반적 신뢰의 상실이 그 원인이며 결과가 되었음을 돌이켜보자.

  신뢰관계가 깨지면 경제활동의 편익은 줄어들고 비용은 늘어난다. 서로 믿지 못하면 의사결정 지연과 시행착오에 따른 비용은 물론 신용조사, 보험료, 과다 리스크 프리미엄 등 추가비용 지출로 경쟁력이 저하된다. 신용경색(credit crunch) 상태가 벌어지면 초우량기업을 제외하고는 아무리 금리도 높여도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이에 더하여 신뢰가 부족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행태가 혈연과 지연 학연 등 자신의 과거 인연에 얽매이게 되어 인재 발굴이 어려워진다. 오염된 사람이 조직의 책임자가 되면 청렴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에 앉지 못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예부터 서양에서는 결제능력에 대한 신용(credit)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동양에서는 인간적 신뢰(trust)를 중시하여 왔다. 신용불량은 형편이 좋아지면 곧바로 회복되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에 신뢰관계가 일단 망가지면 원상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조직이든 사회든 외부요인에 의한 간난신고는 힘을 합쳐 극복할 수 있지만 공동체 내부의 신뢰관계가 무너지면 좀처럼 헤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다. 고대 로마도, 부르봉 왕조도 그리고 근세조선도 그 쇄락의 원인은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무너진 데서 비롯되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사회에서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경제사회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일이 중요한데, 그 실천방안의 처음과 끝은 바로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다. 그래서 “국가경영에서 무역적자, 재정적자보다 신뢰의 적자(deficit of trust)가 더 위태롭다”라고 후꾸야마(F. Fukuyama)는 일찍부터 경고하였다.
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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