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고독하라!

입력 2011-11-27 18:51 수정 2011-11-27 18:51
차라리 고독하라!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너는 하찮은 자들과 가엾은 자들을 너무 가까이에 두고 있다. 저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앙갚음에서 벗어나라! 저들이 네게 일삼는 것은 앙갚음뿐이니“(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 86).

모든 위대한 창조는 혼자 있을 때 일어난다. 창조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주변 환경과 부단한 대화를 나누는 여정을 거친다. 하지만 결정적인 창조의 순간에는 오로지 자신과 외롭게 대처해야 한다. 일상적 삶은 시끌벅적한 시장터에서 이루어지지만 일상적 삶을 혁명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위대한 아이디어는 오로지 철저한 고독 속에서 잉태된다. 내가 누구인지는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다른 사람 또는 그 사람이 쓴 책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지는 철저하게 자신과 대면하는 고독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현대인들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는 고독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언제나 접속되어 있고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메신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말을 걸어온다. 이메일이 수시로 들이닥치고 블로그 위젯에 시시각각으로 정보가 돌아간다. 내가 집중하고 몰입하면서 나를 찾아 나서는 고독한 여행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기술들이 일종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고독하지 않은 자는 참 나에게 접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창조에 이르는 여정에 동참할 수 없다.

인간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는 언제나 혼자이다. 가장 위대한 창조의 꽃이 피는 순간에도 어김없이 혼자이다. 가장 슬픈 가난은 고독 속에서 자신과 대면한 경험이 없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가장 심각한 정신적 허기를 느끼는 이유는 가난한 고독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고독(孤獨)’한 시간을 가져야 내가 무엇에 ‘중독(中毒)’되어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고독’하지 않으면 뭔가에 ‘중독’되어 더 이상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침묵과 함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없다. ‘고독’은 ‘중독’을 치유할 수 있는 ‘해독제’다. 혼자 중얼거리고 혼자 견뎌내고 혼자 울면서 절박한 위기 상황을 견뎌낸다. 타인의 손도 내 안의 절실한 고독과 맞닿을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우선 혼자 견뎌내야 혼자로 지내지 않는다. 홀로 있을 때만이 온전히 자신의 상황을 되돌아볼 수 있다.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러니 최악의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고독 속으로 도망가는 것이다-신혜경의 ‘부정하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니체도 말한다. 벗이여,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사납고 거센 바람이 부는 곳으로! 고독 속에서 올곧이 자신을 세우고 물어보라. 나는 지금 어디로 왜 무엇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는지. 고독 속에서 던지는 질문이어야 진정한 나로 향하는 물음이 된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에 소음이 개입되고 주의를 분산시키는 환경 속에 놓이면 나로 향하는 질문은 멈춘다.

고독, 고생, 고통은 견디기 어려운 인생의 삼고(三苦)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인생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인생의 삼고(三高)다. 고독하지 않으면 몰입할 수 없으며, 고생하지 않으면 대가(大家)가 될 수 없으며, 고통체험을 맛보지 못하면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없다. 삶의 모든 의미와 가치는 고독 속에서 잉태되고, 고생을 통해 더 높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며, 고통 속에서 나의 지식으로 체화된다. 함께 고생할 수 있지만 함께 고독해질 수 없으며, 고통을 분담할 수 있지만, 고독은 나눠서 할 수 없다. 더 철저하게 고독해지는 길만이 고고(呱呱)하게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삶은 ‘장벽’을 넘고 ‘절벽’을 건너는 고난의 연속이다. 꿈의 목적지는 언제나 ‘장벽’ 너머에 존재하고 ‘절벽’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 ‘장벽’을 넘고 ‘절벽’을 건너야 ‘새벽’을 맞이할 수 있고, ‘개벽’은 주로 어둔 밤의 끝자락인 ‘새벽’에 일어난다. ‘새벽’에 맞이하는 ‘개벽’의 우렁찬 깨달음을 위하여 우리는 철저하게 고독해야 한다. ‘장벽’의 높이가 높아질수록 고독의 심연으로 파고 들어가는 깊이도 깊어져야 한다. 절망은 ‘절벽’ 앞에서 살아간다. ‘절벽’에 직면한 절망이 샘해질수록 고독으로 파고들어가는 깊이도 깊어져야 하며, 고독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갈급함의 바람도 더욱 세게 불어야 한다.

창조로 연결되는 고독은 ‘고독감(孤獨感)’이 아니라 ‘고독력(孤獨力)’이다. “감상적인 고독감(loneliness)과는 달리 고독력은 영어에서 'Solitude로 쓴다. 고독감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상태라면 고독력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고독감이 느낌이라면 고독력은 혼자일 수 있는 힘이다. 자기를 일부러 고독하게 만드는, 그만큼 강한 사람이다.” 이시형의 <내 안에는 해피니스 폴더가 있다>에 나오는 말이다. 깊어가는 밤, 책장 넘기는 고요함 속에서 즐기는 고독함이 ‘고독감(孤獨感)’의 우수(憂愁)로 빠지지 않고 ‘고독력(孤獨力)’의 향연으로 이끄는 절친(切親)을 만날 수 있다. ‘고독감’은 고독함에 빠져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들지만 ‘고독감’은 고독함을 통해 고고(呱呱)한 자아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독함에 우는 사람은 고독감에 시달리지만, 고독함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고독력으로 위대한 창작을 한다. 심금을 울리는 위대한 작곡을 했던 베토벤은 작곡가에게 생명이나 다름없는 청력을 잃고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좌절과 절망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베토벤의 위대한 음악은 청력을 잃은 순간부터 창작되었다. 그는 고독감으로 스스로를 우울의 늪에 빠뜨리지 않고 고독감으로 자신과 전쟁을 치루면서 인류사에 영원히 빛나는 선물을 주고 떠났다.



개인의 고독 속에서 성장하고 성숙하듯이 기업도 마찬가지다. 경영자의 ‘고독’ 없이 기업의 ‘고도성장’은 불가능하다. ‘고독’은 ‘고도성장’을 위한 침묵 속의 용틀임이다. ‘고독’이 성장할 수 있는 ‘고도’를 결정하는 셈이다. 모든 창작은 시끌벅적한 시장바닥에서 탄생되지 않고 처절한 ‘고독’의 몸부림 속에서 탄생한다.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히트상품도 시장 바닥에서 연원하지만 히트 상품이 창조되는 마지막 순간에는 철저하게 고독과 함께 한다. 기업(企業)이라는 한자에도 경영자의 고독이 담겨 있다. 우선 기(企)라는 한자를 보면 경영자(人)가 멈추어 서서(止) 침묵과 함께 앞을 내다보는 형상이다. 경영자가 멈추어 서서 고독을 즐기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린다면 어느 순간 침몰할 수 있다. 업(業)이라는 한자는 수많은 팀원들(羊)을 데리고 풀밭(艸)이 있는 시장으로 인도하는 외로운 리더(人)를 상징한다. 결국 기업은 리더인 경영자가 멈추어 서서 미래를 내다보면서 풀밭이 있는 시장을 찾기 위해 구성원들을 이끌고 외롭게 걸어가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조직이다. 시장의 움직임은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그럴수록 경영자는 고독과 함께 빠른 움직임을 일으키는 이면의 힘을 꿰뚫어 읽어내는 고독한 시간이 필요하다. 자리가 높아질수록 독방(獨房)에서 고독(孤獨)을 벗 삼아 독수공방(獨守空房)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출처
지식생태학자의 블로그: http://kecologist.blog.me/70125144105
지식생태학자의 트위터: http://twtkr.olleh.com/kecologist
지식생태학자의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kecologist
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s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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