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크기를 키워라!

입력 2011-11-22 18:21 수정 2011-12-17 19:25


존재의 크기를 키워라! 

"언젠가 나 더없이 위대하다는 사람과 더 없이 왜소한 사람이 맨몸으로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저들은 서로 너무나 닮아 있었다. 더없이 위대하다는 자조차도 아직은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것이다! 더없이 위대하다는 자조차도 그토록 왜소했으니! 이것이 사람에 대한 나의 싫증이었다! 그리고 더없이 왜소한 자들이 영원히 되돌아오다니! 이것이 모든 현존재에 대한 나의 싫증이었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 363).

사람의 자질과 역량을 판단 할 때 그릇의 크기에 비유한다. 저 사람은 그릇이 그 정도 밖에 안 되기 때문에 기대하는 수준 이하로 실망을 시킨다는 말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그릇은 영어로 컨테이너Container에 해당한다. 화물차나 화물기차에 짐을 실을 수 있는 최대 용량은 그릇의 크기, 즉 컨테이너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콘텐츠Contents를 담을 수 있는지는 그 사람이 타고날 때 갖고 태어난 컨테이너의 크기에 비례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컨테이너보다 컨텐츠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컨테이너가 부실하면 아무리 좋은 컨텐츠를 담아도 의미가 없어진다. 컨테이너는 여자고 컨텐츠는 남자다. 부실한 여자가 아무리 건강한 남자를 만나도 건강한 아기가 탄생할 수 없듯이 컨테이너는 컨텐츠를 담아 제3의 지식으로 숙성시킬 수 있는 일종의 인큐베이터다. 텃밭이 좋아야 어떤 씨앗을 뿌려도 잘 자라는 것처럼 컨테이너의 포용력과 수용성이 컨텐츠를 소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크기를 결정한다.

컨테이너는 타고나는 그릇이지만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컨텐츠를 담을 수 있는 용량뿐만 아니라 질적 수준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그 크기와 수준을 키우고 높일 수 있다. 컨테이너는 니체가 말하는 존재의 크기와 맥을 같이 한다. 작은 문제와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존재의 크기도 그 만큼 작아진다. 커다란 문제와 싸움하면서 크는 사람은 존재의 크기도 그 만큼 커진다. 늘 만나는 익숙한 문제만 만나는 사람의 존재의 크기는 성장을 멈처버린다. 이런 사람에게 갑자기 시련과 역경이 다가오면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다. 야성(野性)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신체에서 야심만만한 꿈이 자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야망(野望)을 불태울 수 있는 컨테이너의 화력(火力)이 뒷받침 되지 않기 때문이다. 코이라는 비단잉어가 있다. 조그만 어항에서 키우던 코이를 작은 연못에서 기르면 어항속의 코이보다 크게 자란다. 작은 연못에서 자라던 코이를 흐르는 강물에서 키우면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성장한다. 내가 꾸는 꿈의 크기가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높이를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내 존재의 크기가 꿈의 크기를 결정하며, 결국 꿈의 크기는 내 성장의 가능성을 결정한다.

니체는 왜소해진 인간의 신체와 약해진 마음을 공격한다. 틀에 박힌 문제와 씨름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몸과 마음이 모두 왜소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고 하찮은 일에도 쉽게 휘둘리고 고민하고 절망한다. 크나큰 문제들에 휘청거린다면, 나의 건강을 더 탄탄하게 하면 된다. 문제의 크기보다 더 큰 나를 만들면 된다. 존재는 존재의 집에서 살아간다. 존재가 어떤 집을 짓는지에 따라서 그 집에서 살아가는 존재는 전혀 다른 존재로 자랄 수 있다. 느닷없이 새로운 집들이 가지런히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의아했다. 그래서 말했다. 아니 이것들은 아니리라! 어떤 멍청한 아이가 장난감 상자에서 이 작은 집들을 꺼내 놓은 것은 아닐까? 그랬다면 또 다른 아이가 나타나 그것들을 다시 상자에 집어넣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거실과 작은 방들은 또 무엇인가? 어른 들이 드나들 수나 있겠나? 차라투스트라는 멈춰서서 생각해보았다. 마침내 그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것이 작아지고 말았구나!"(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 277). 작은 집에서는 작은 존재만이 살아갈 수 있다. 큰 집을 지어야 존재의 크기도 그 만큼 크게 자랄 수 있다.

니체 철학의 핵심적인 질문 중의 하나는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는 대로의 우리가 되는가?”이다. 모든 지적 탐구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미지의 세계인 인간 저편의 세계를 지향하는 인간 존재는 주어진 상태로서의 정적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신하는 과정으로서의 동적 존재이다. 니체에게 존재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즉 인간 존재는 존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양한 힘들이 투쟁관계를 통해서 부단히 생성되는 존재이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이 문제를 다음과 질문으로 바꾸어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가-새로운 자, 유일한 자, 비교할 수 없는 자, 스스로 법칙을 세우는 자, 스스로 창조하는 자가 되고자 하는가?(p. 307). 이진우(2009)는 니체의 이런 실존적 물음을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바꾸어 해석한다. ”우리는 어떻게 창조적 생성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결국 인간은 한 곳에 머물러 존재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몸부림치는 존재가 아니라 지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존재로 변신을 거듭하는 창조적 생성으로서의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 창조적 생성으로서의 존재라야 니체가 말하는 ‘새로운 자이며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자이며, 스스로 법칙을 만들어 창조하는 자’이다.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라는 글에서 니체는 창조적 생성으로서의 존재의 모습을 ‘존재의 수레바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돌고 돈다. 모든 것은 죽고 모든 것은 다시 소생한다. 존재의 해는 영원히 흐른다...매순간 존재는 시작된다. 모든 여기를 중심으로 저기라는 공이 굴러간다.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 영원이라는 오솔길은 굽어있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 361). 니체에게 존재라는 개념은 ‘존재하는 것은 숨을 쉬는 것이다’라는 존재의 어원적 의미를 초월하여 ‘나는 이리저리 거닌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 한다’는 개념으로 발전시켜 생성적 존재론을 주장한다. 존재하기 위해 이리저리 거닐지만 분명한 목적의식과 의욕이나 욕망을 갖고 움직이는 존재다. 모든 존재는 의지를 갖고 의욕하는 존재이며, 의욕을 갖고 끊임없는 변신을 시도하는한 존재는 변화이며 생성이다. 그러므로 존재=의지=운동=생성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백승영, 2005). 존재는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다른 존재와의 다양한 관계맺음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면서 이전의 존재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되어가는 것이고, 되어가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백승영, 2005).’ 되어가는 생성적 존재는 이전의 존재와 질적으로 다른 존재로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니체의 생성 존재론적 입장에 비추어 볼 때 ‘정체성’은 ‘정체’되어있는 ‘인성’이나 ‘성격’을 의미하는 자기 동일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체성을 의미하는 ‘아이덴티티Identity’는 ‘이드Id’와 ‘엔티티Entity’의 조합이다. ‘이드’는 말 그대로 본능, 자신 안에 내재된 본질적인 측면이고, ‘엔티티’는 그것을 현재화한다는 의미다. 즉 ‘아이덴티티’는 없던 것을 어디서 갑자기 만들어낸다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서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공유하는 것이다. 문제는 본능을 의미하는 Id도 다른 존재나 환경과 부단한 상호작용과 관계를 맺으면서 이전에 없었던 다른 의욕을 갖고 욕망한다. 왜냐하면 관계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관계를 통해 힘을 주고받는데, 여기서 힘은 무엇인가를 지향하고 의욕하는 힘이다. 무엇인가를 소유하겠다는 욕망, 어딘가에 도달하겠다는 성취욕망, 누군가를 지배하겠다는 권력의지 등이 모두 힘에 해당한다. 이렇게 내면적 Id가 부단히 만나는 관계 속에서 다른 힘을 주고받으면서 이전과 다른 의욕과 욕망이 생기고 그런 욕망은 그 시점에서 이전과 다르게 현재화된다. 잠자는 Id를 흔들어 깨우지 않으면 나의 정체성은 정체되고 성장을 멈춘다. Id에게 큰 문제와 직면하게 만들면 문제와 사투를 벌이면서 문제의 크기만큼 나의 Id도 커진다. 나를 키우는 비결은 곧 내 존재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다. 어제와 다른 문제를 만나고 어제보다 더 큰 문제를 의도적으로 만나라. 문제가 커지면 나도 커진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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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s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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