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地圖)’와 ‘생각의 지도(指導)’

입력 2011-06-06 17:54 수정 2011-06-06 17:54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Map, 地圖)’와
 ‘생각의 지도(Leadership, 指導)’:
‘사각지대(死角地帶)’에서 벗어나 ‘생각지도(生角地圖)’로의 여행

  태어나서 지금까지 우리는 다양한 음식도 먹어왔지만 다양한 지식을 습득해왔습니다. 그런 지식이 내가 생각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내 몸의 건강이 달라지는 것처럼 내가 어떤 지식을 먹느냐에 따라 내 생각도 달라집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생활도 바뀝니다. 다르게 생각하지 않으면 생활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생각을 바꿔야 생활이 달라집니다.

당신이 이루거나 이루지 못하는 것들 모두는 당신이 품는 그 생각들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오늘 당신은 당신의 생각들이 데려다 준 그곳에 있고, 내일 당신은 당신의 생각들이 데려다 줄 그곳에 있을 것이다. ‘생각이 만드는 기적’이라는 책의 저자, 제임스 앨런의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의지나 의도와 관계없이 남의 생각이 내 생각 속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들어옵니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들어온 남의 생각이 내 생각의 주인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내 생각도 내 생각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생각을 기반으로 제기되는 의견도 그래서 편견일 수 있습니다. 내 생각으로 이해한 것이 오해일 수 있습니다. 내 생각으로 구성되는 의견과 이해가 편견과 오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세 가지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 “당연하지”, “원래 그런 거야.” 물론 그렇고 원래 그렇고,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물론과 당연, 그리고 원래에 물음표를 던지고 시비를 걸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생각의 임신이 가능합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명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갈매기는 근시(近視)라서 아무리 높이 날아도 멀리까지 볼 수 없습니다. 누워서 떡먹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식은 죽 먹기처럼 쉽다는 말입니다. 과연 누워서 떡 떡 먹는 것이 말처럼 쉬울까요? 누워서 떡 먹다가 기도가 막혀서 죽을 뻔했던 사람도 많습니다. 그만큼 누워서 떡먹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말에 대해서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당연’한 것은 없고, ‘원래’부터 그런 것도 없으며, '물론' 그렇지 않은 현상이 너무 많이 존재합니다. 모든 생명체를 비롯해서 사물이 거기에 그렇게 존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이유 없이 무엇인가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모두 나름의 이유를 갖고 살아가며, 특정한 원인 때문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 발생합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 그런데 과연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누구나 생각하면서 산다고 하지만, 생각한다는 것은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것, 타성과 고정관념에 젖어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이전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하루에 떠올리는 생각은 평균 5만 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만가지 잡생각’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하루에 약 6만 가지 생각을 1초마다 한다고 합니다(잠자는 8시간 제외). ‘오만가지 잡생각’ 중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얼마나 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새로운 생각을 임신할 수 있는 가능성의 지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면서 ‘의견(意見)’을 제시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의견’은 습관적으로 생각해온 ‘의견’, 즉 자기 중심적 ‘편견’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본 ‘선입견’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의견(意見)’도 ‘의심(疑心)’해 볼 만한 ‘의견(疑見)’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나이만큼 키워온 개(犬) 두 마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 개 이름은 ‘편견(偏見)’과 ‘선입견(先入見)’입니다. 내가 이제까지 먹은 생각이 편견과 선입견으로 포장된 습관적인 생각이나 고정관념, 타성이나 관성을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주로 사각형이라는 생각의 틀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로 사각형 안에서 그리고 사각형과 함께 생각하면서 생활합니다. 사각형의 아파트, 사각형의 집안에 있는 사각형 소파에 앉아 사각형 TV를 보다가 사각형 방안의 사각형 침대에서 잠을 잡니다. 사각형 방안에서 나와 사각형 화장실에서 사각형 거울을 보면서 출근준비를 하고 사각형 집의 사각형 문을 열고 나와 사각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옵니다. 사각형 버스나 사각형 지하철을 타고 사각형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사각형 건물의 사각형 출입구를 열고 들어가 다시 사각형으로 된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각형 사무실로 들어갑니다. 일정을 체크하는 다이어리와 달력도 사각형입니다. 사각형 사무실에서 사각형 책상위의 사각형 컴퓨터 모니터를 켜놓고 사각형으로 된 책을 보고, 사각형 노트에 메모를 하고, 때로는 사자성어로 그 뜻을 음미하면서 생각도 사각형으로 하고, 사각형 책을 보면서 사각형 책을 쓰고 있습니다. 사각형의 명함 집에서 사각형 명함을 꺼내 서로 교환하면서 우리는 점차 생각이 사각형인 사람들의 클럽인 ‘사각지대’에 가입합니다. 더불어서 생각도 사각사각(死角死角) 죽어갑니다

 

온통 사각형의 박스 안에 내 관점이 들어가고 거기서 나오면서 사각형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 사각형 안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고 필요 없는 것으로 사각형 밖으로 추방됩니다. 기존의 틀이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사각지대에 가입하는 순간, 관습과 타성에 젖어 안색은 사색이 되고, 그 때부터 ‘상식’의 덫에 걸려 ‘몰상식’한 발상을 인정하지 않는 ‘식상’한 삶을 살아갑니다. 

상식은 다시 습관과 결탁하여 ‘고정관념’으로 변질됩니다.
상식은 좌정관천의 경험과 합작하여 ‘편견’으로 전락합니다.
상식은 새로운 생각을 거부하면서 ‘선입견’으로 굳어집니다.
상식은 관습과 어울리면서 웬만한 타격으로는 깨지지 않는 ‘타성’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상식은 살아가면서 여러 번 불량결혼을 합니다. 상식과 고정관념, 상식과 편견, 상식과 편견, 상식과 타성이 불량 결혼하면서 낳은 자식이 ‘식상’입니다. ‘상식’이 ‘식상’해지기 전에 기존 상식에 통렬한 문제를 제기하는 몰상식한 발상이 필요합니다.  

‘상식’은 ‘몰상식’은 포용하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상식에게 몰상식은 수용과 인정의 대상이 아니라 비난과 배척의 대상입니다. 이렇게 되면 다수의 상식적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뒤집어엎는 새로운 몰상식하고 비정상적인 발상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생각의 임신을 통한 새로운 생각의 출산이 이루어지 않은 상태로 습관적이 생활이 전개됩니다.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타성에 물들면서 습관적이고 상식적인 생각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도 재단하고 평가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소수의 몰상식한 발상의 소유자가 이끌어 갑니다. 정상보다는 비정상, 합리보다는 비합리, 체계보다는 비체계, ‘상식’보다는 ‘몰상식’이 틀에 박힌 타성과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관행에 시비를 걸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갑니다.

“작은 시골에서는 그 마을에서 가장 예쁜 아가씨를 세계 최고의 미인이라고 여깁니다.
그보다 더 예쁜 아가씨를 보기 전에 그들은 그보다 더 예쁜 아가씨가 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합니다.“ ‘수평적 사고’의 저자 에드워드 드 보노의 말입니다.

내가 경험한 것만큼 보입니다. 내가 경험한 대로 세상은 보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경험한 것을 근간으로 내가 보고 싶은 방식대로 세상은 보입니다. 경험이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원천이면서 동시에 기존의 경험이 다른 가능성의 문을 보지 못하게 막는 장본인도 됩니다. 경험한 대로 보이기 때문에 경험하지 못한 것은 경험한 것을 기반으로 이해됩니다. 경험은 다른 경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기반을 제공해줍니다. 동시에 경험은 다른 경험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다른 방향의 사유를 차단해버리는 관성과 타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전의 경험과 또 다른 경험이 축적되면서 습관이 형성되고 그 경험으로 인해 선입견과 편견이 생기면서 다르게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이 닫힙니다. 예전에 생각하고 행동했던 대로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타성이 생깁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다이아몬드, 강철,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인식이라고 합니다. 아마 자신에 대한 인식은 다이아몬드나 강철보다 단단해서 바뀌기가 가장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자신에 대한 인식은 지금까지 경험한 것을 자기 방식으로 정리한 체험적 깨달음에 근거합니다. 체험적 깨달음은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기반 지식의 역할을 합니다. 문제는 과거의 어느 시기에 축적된 체험적 깨달음으로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어리석음에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운다고 합니다. 어제의 성공보다 더 위험한 적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위협은 경쟁사가 아니라 성공이 우리를 안주하게 만드는 과거의 성공체험입니다. 과거에 성공했던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방법론을 절대시하는 과오를 범하는 현상을 아널드 토인비는 '휴브리스(hubris, 오만.자기과신 )'라고 불렀습니다. 

송나라의 한 농부가 토끼가 나무에 부딪쳐 죽는 것을 본 뒤 농사는 팽개치고 매일 나무그루를 지켰다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의 고사가 있습니다. 자신의 성공체험에만 의존하는 어리석은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만큼 성공체험을 통한 깨달음은 약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휴브리스나 수주대토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뇌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색다른 자극을 끊임없이 주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지만, 뇌가 고프면 지식을 섭취합니다. 음식을 먹는 이유는 배가 고프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먹는 이유는 뇌가 고프기 때문입니다. 뇌가 고프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알고 있는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기존의 경험과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협화음이나 불균형이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뇌가 불균형 상태가 되면 외부로부터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흡수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이때부터 뇌는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뇌가 뭔가 부족하고 결핍되었다고 깨닫기 시작합니다. 이때야 말로 뇌가 지식을 먹을 수 있는 최적의 시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배는 때가 되면 고파서 주기적으로 음식을 먹지만, 뇌는 때가 되어도 고프지 않아서 주기적으로 지식을 먹지 않습니다. 이전의 체험적 깨달음을 통해 체득한 지식에 의존합니다. 음식은 주기적으로 먹지만 지식은 주기적으로 먹지 않는 이유는 뇌가 고프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정상적인 균형상태가 깨지면 다시 균형을 회복하려는 자기조정적 시스템(Self-Organizing)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신체는 더우면 땀을 흘리고 추우면 옷을 입으며,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어서 깨진 균형을 자기 스스로 채우려는 자기 조정적 회복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그런데 뇌는 배와 다르게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뇌가 이전과는 다른 지식을 먹을 필요와 욕구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전과는 다른 현상이 발생해도 기존의 지식과 생각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며 해석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생각은 임신되지 않고 생각의 자손은 태어나지 않습니다. 기존의 생각에 새로운 생각이 접목되지 못할 정도로 생각의 각질이 생기고 생각 때가 끼어서 생각은 더 이상 살아있는 생각이 되지 못하고 기존의 생각을 고수합니다. 습관적인 생각, 타성과 고정관념에 물들어 생긴 생각벌레들이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습니다. 

배가 고프면 설렁탕이나 추어탕과 같은 음식을 먹어 허기진 배를 채우는 노력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개합니다. 음식은 매일 먹으면서 지식은 매일 먹지 않아도 생활하는 데에는 심각한 불편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뇌로 하여금 새로운 생각을 임신하게 하려면 뇌가 이제까지 받아보지 못한 색다른 자극을 주어야 합니다. 색다른 자극이 뇌에 입력되면 뇌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색다른 자극이 바로 뇌가 고프면 먹는 ‘뇌진탕’을 의미합니다!

‘뇌진탕’은 주로 일시적 의식 소실을 동반하는 증상을 말하지만 광범위하게 뇌에 충격이 가해져서 “뇌가 놀랐다”는 상황까지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뇌를 놀라게 한다는 말은 편안한 뇌에 이제까지 받았던 자극과는 다른 자극을 줌으로써 뇌세포가 움직이게 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뇌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뇌를 이제까지와는 다른 자극에 의도적으로 노출시켜야 합니다. 비슷한 자극을 주면 뇌는 비슷한 반응을 보여줍니다. ‘뇌진탕’은 결국 뇌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모든 외부적 자극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뇌진탕’은 뇌가 고프게 만드는 자극입니다. 색다른 자극이란 뇌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모든 자극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이제까지 읽어보지 못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경우, 이제까지 가보지 못한 낯선 곳을 여행하거나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전개하는 경우, 이제까지 제기하지 않는 낯선 질문을 던지거나, 뇌가 경험해보지 못한 한계나 위기 상황에 직면할 때를 말합니다. 

낯선 경험이 낯선 자극을 뇌에게 전해줍니다. 낯선 경험의 폭과 깊이가 뇌가 생각할 수 있는 폭과 깊이를 결정합니다. 낯선 경험에 직면하면 반사적으로 뇌는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이전과는 다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 뇌는 긴장모드로 전환됩니다. ‘설렁탕’을 먹으면 위장이 배가 부르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하지만 정신적 위장인 뇌는 뇌를 흔들어 놓는 '뇌진탕'을 아무리 먹어도 늘 뇌고프다고 말합니다.  

나는 오늘 어떤 ‘뇌진탕’을 먹었는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뇌진탕’을 먹기 위해 어떤 지식을 의도적으로 흡수하려고 하는가? 뇌를 심각하게 고프게 만들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지식을 흡수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전개하고 있는가? 뇌가 편안하면 어떤 정보를 흡수해도 뇌는 특이한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자극이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며, 다른 생각이 다른 행동을 유발합니다. 특이한 자극에 의도적으로 뇌를 노출시키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전개하고 있습니까?

 
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s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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