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다

입력 2011-03-01 23:02 수정 2011-03-04 10:50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다

앎이 깊어질수록 기존의 앎에 상처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알아갈수록 상처는 더욱 깊어져 더욱 아픔의 강도는 심해진다. 그 아픔이 두렵다면 앎의 행로를 지금 여기서 빨리 멈춰야 한다. 그런데 알아감으로 인하여 생기는 상처를 견디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앎으로 인해 생기는 상처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상처는 아물게 마련이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숱한 상처의 흔적에 기억과 추억이 새겨지고 아름다운 앎의 무늬로 재탄생한다. 가시 없는 장미 없듯이 아픔 없는 아름다움도 없다. 아름다움은 앓고 난 사람이 보여주는 인간적 면모나 사람다움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앓음다움'과 '아름다움'은 동격이다. 아픈 앎의 뒤안길에 생긴 숱한 얼룩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 낸다.

알면 알수록 기존의 앎이 잘못되었다는 깨달음의 무늬는 심한 두뇌수술의 고통을 동반한다. 지적 충격이 주는 즐거움의 고통이다. 삶이 공부이고 공부가 삶이라면 공부나 삶이나 상처받고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상처의 골이 깊을수록 깨달음의 깊이도 깊어진다. 깨뜨리면 얼룩이 생기고 깨달으면 무늬가 생긴다. 그런데 깨달음의 무늬도 깨뜨림의 얼룩 없이 생기지 않는다. 뭔가를 깨달으려면 스스로를 먼저 깨뜨려야 한다. 스스로를 깨뜨리지 않으면 깨진다. 깨지면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 깨지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한계와 굴레, 속박과 타성의 틀을 깨부숴야 한다. 그래서 깨달음의 여정은 아픔의 연속이다. 아름답게 보이는 쇼윈도우의 마네킹 뒷면에는 수많은 시침이 꽂혀 있다. 마네킹은 보이지만 마네킹을 아프게 하는 시침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앎의 무늬는 아름답지만, 앎의 얼룩은 아프다. 사람들이 보는 것은 앎의 무늬이지 아픔의 얼룩이 아니다. 그들은 앎의 무늬에 주목하고 앎의 얼룩은 쉽게 보지 못한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알면 알수록 아프다. 그 아픔의 진면목을 믿고 부단히 정진해야 아픔을 아픔으로 치유할 수 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처럼 이통치통以痛治痛)의 원리로 이전의 아픔을 다음의 아픔으로 치유하는 방법이다. 앎은 앓음이다. 앎이 성장하고 성숙할수록 몰랐던 사실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기존의 앎이 깨지는 심각한 통증이 수반된다. 그 통증을 감내하는 유일한 방법은 또 다른 앎의 행로를 찾아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앎의 행로를 부단히 전개하는 수밖에 없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배움은 그래서 일종의 지적 호흡이다. 호흡을 멈추면 생명체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배움을 멈추면 성장을 멈추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배움은 새로운 것을 아는 과정인 동시에 모르는 것을 새롭게 아는 과정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을 알면 알수록 기존의 앎이 허술하거나 부실한 앎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럴수록 더욱 앎에는 생채기가 생긴다. 그래서 앎은 기존의 앎에 심한 생채기를 내는 과정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앎에 환멸을 느껴야 하고 심각한 불편함과 심지어는 도덕적 분노를 느껴야 한다. 한마디로 기존의 앎에 마음이 편안하지 않아야 한다. 환멸 없이 환상 없고, 일탈 없이 해탈 없다! 환멸의 끝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환상이 시작되고, 정상에서의 궤도 이탈이나 일상으로부터의 일탈 끝에 새로운 이해의 지평이 열리며, 해탈의 경지에 접근할 수 있다. 

길 밖의 길에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열려 있다. 길 밖의 길을 가는 과정은 위험천만한 일이고 불안하기 짝이 없으며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길이다. 익숙하지 않기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앎을 향한 여정을 찾아 나서야 한다. 친숙함 또는 익숙함이 지나치면 무심함으로 흘러버린다.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스쳐지나간다. 반복되는 일상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의 친숙함에서 벗어나 낯선 불편함의 세계에 자신을 의도적으로 노출시켜놔야 한다. 그럴수록 기존의 앎은 심각한 불편함을 겪게 되고 아픈 생채기가 생채기 위에 엊혀 생긴다.

상처투성이의 앎에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상처가 생긴다. 그 견딜 수 없는 심각한 아픈 통증 후에 찾아오는 잠깐 동안의 앎의 희열은 다음 상처를 견디기 위한 기반일 뿐이다. 상처가 아물기 전에 또 다른 낯선 세계, 불안한 앎의 세계로 자신의 몸을 내던져야 한다. 깨달음을 주는 배움은 정상궤도에서 벗어났을 때 오는 경우가 많다. 참 스승은 달리는 고속도로위에 있지 않고 남이 가지 않은 길 밖에 있다. 그러니 남이 간 길을 쫓아가지 말고 길 밖의 길을 가라. 거기에 깨달음의 원천이 있고, 각성의 디딤돌이 있으며, 새로운 앎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
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s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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