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질문은 무엇입니까?

입력 2011-03-01 22:58 수정 2011-03-01 22:58
당신의 질문은 무엇입니까? 

공부는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현상에 대해서 남다른 호기심과 의심의 눈초리로 당연과 물론의 세계에 시비를 걸면서 의문을 던지고 구체적인 질문으로 만들어보는 과정이다. 공부는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여러 가지 현명한 답, 현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당신의 대답은 무엇입니까?’(What's your answer)보다는 당신의 질문은 무엇입니까?(What's your question?)가 더욱 중요하다. 남다른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그 동안 선각자가 던지지 않은 질문을 찾아 헤매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연구 성과물을 통독(通讀)하고 정독(精讀)하면서 묵독(黙讀)해야 한다. 대강 대충 읽어서는 여전히 이전의 선각자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만 보이지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없다.

다른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기존의 학자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허점을 파고들어야 하며, 물론 그렇다고 간과한 부분을 들춰내야 하며, 원래 그렇다고 폄하한 부분을 헤집고 드러내야 한다. 평이한 질문은 식상한 답을 가져다주지만, 색다른 질문은 일면 몰상식한 답을 가져다준다. 겉으로 보기에 그리고 지금 당장 보기에 몰상식해 보이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몰상식한 답에 세상을 뒤집는 비밀의 열쇠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학문발전은 소수의 몰상식한 사람이 일으킨 지적 혁명의 산물이다. 몰상식한 소수 이외의 다른 사람은 몰상식한 사람이 제기한 문제의식에 조소와 조롱, 비난과 저항, 질책과 시비를 건 사람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몰상식한 초기의 문제제기에 어느 새 동조세력으로 바뀐 상식적인 사람들일 뿐이다.

공부하는 즐거움은 남들이 무조건 반대하는 사안이나 불가능하다고 모두가 포기한 일에 도전하는 과정과 우여곡절과 산전수전의 어려움 끝에 마침내 해내는 성취감에서 비롯된다. 모두가 반대하고 비난하거나 조소를 보낼 때 자신을 믿고 묵묵히 걸어간 사람의 뒤안길에 전대미문의 창조가 이루어진다. 누구보다도 자신을 굳게 믿고 신념을 굽히지 않고 세상을 향해 문제의 그물을 던진 사람들이 색다른 답을 건져 올릴 수 있다. 쉽지 않은 길이다. 주류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 그 안에서 알을 품고 새끼를 기르는 일은 편안하고 안락한 공부 여정이될 수 있다. 색다른 관점을 가질 필요도 없고 난해한 책을 읽을 필요도 없으며,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철학적 논의를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앞서 간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면서 간간히 들려오는 새로운 학문적 뉴스레터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만 소화시키면 된다.

쓸데없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편지풍파를 일으켜봐야 학문적 일신상에 심각한 손해만 다가올 뿐이다. 그런 길에는 가슴 설렘도 도전도 꿈도 없다. 이왕 공부하는 길에 들어섰으면 뭔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험난한 여정을 떠나야 하지 않을까? 공부한 길이 앞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으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를 통제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참으로 지루하고 재미가 없을 것이다. 적당한 불안감과 불확실성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불확실성이 가져다주는 긴장감이 학문적 탐구를 가열차게 달구는 열정의 불길이 되는 것이다.

열정은 목표에 대한 강한 의지와 더불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불확실하다는 판단이 있을 때 타오른다. 하고 있는 일이 너무나 확실하다고 생각되면 적당히 해도 되고 지금껏 해오던 방식대로만 하면 된다는 안도감이 생긴다. 안도감은 현실 안주를 불러오고 결과적으로 안락사를 불러오는 장본인으로 작용한다는 치명적인 사실을 우리는 똑바로 인식해야 된다. 전나무도 주변 환경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불안감이 가중될 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엄청난 열매를 맺는다. 종족 보존을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 해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다는 엄청난 불안감이 폭발적인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앞날이 불확실한 전나무의 이같은 종족 보존을 위한 분투노력을 앙스트블뤼테라고 한다. 공부하는 과정도 전나무의 앙스트 블뤼테 (Angstblute)와 같은 불안감이 열정을 불러일으키게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된다. 앙스트블뤼테는 불안감이 피워낸 열정의 꽃이다. 불안감은 일단 현실을 부정하는 가운데 생길 수 있다. 물론 긍정적인 자세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기도 하지만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긍정과 더불어 지금 있는 그대로의 당연과 물론, 원래 그런 세계에 대한 철저한 부정의식이 더욱 중요하다. 깊게 긍정하려거든 우선 심하게 부정해봐야 한다. 심한 부정의 부정 끝에 찾아오는 긍정이라야 쉽게 뒤집히지 않는 긍정이 될 수 있다. 쉽게 인정하는 긍정은 쉽게 걱정할 수 있는 부정으로 돌변할 수 있다. 일단 철저하게 부정하라. 그것이 긍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수 있다.




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s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228명 37%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392명 63%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