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정수기와 소주 가습기

입력 2011-02-26 13:06 수정 2011-02-26 13:06


데페이즈망, 창조의 신천지로 가는 이종결합 

중국 상하이에 가면 죄수복을 입고 수갑을 찬 채 철창에 갇히는 식당이 있다. 음식이 나와야 수갑이 풀리고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생각만 해도 호기심이 가면서도 특이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식당이라는 생각이 든다. 식당과 감옥의 만남,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특이한 두 가지 이질적 경험의 실체가 만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준다. ‘고객체험의 경제학’이라는 책에 보면 앞으로 기업의 고객가치를 결정하는 요소가 상품과 서비스가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에 어떤 체험을 담아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즉 고객으로 하여금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체험을 제공해주느냐가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가장 부가가치의 수준을 결정해준다는 주장이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에 따르면 욕망은 주체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배치가 주체의 욕망을 부추긴다고 주장한 바 있다. 욕망이란 ‘나’라는 주체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가 만나는 것들과의 관계에 속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프랑스 전 축구감독, 르네 지라르도 사람은 어떤 대상 자체를 보고 욕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제3자가 그 대상에 대한 욕망을 부추길 때 욕망을 느낀다고 밝힌 바 있다. 내가 대상과 만나는 관계가 바뀌면 이제까지 꿈틀거리지 않았던 잠재욕망이 욕망의 탈출구를 향해 질주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라는 상품도 고객의 요구를 분석해서 탄생한 제품이 아니라 고객의 욕망을 자극하는 대상과 현상을 재배치함으로써 본래 고객이 요구하지 않은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익숙했던 일상적 관계를 낯설게 배치하거나 조합함으로써 세상과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어 깨울 때 내면의 잠재된 욕망은 탈출구를 향해 이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의 분출구로 미술은 인간적 삶에서 때로는 현실적이지 않은 것을 현실적으로 구현시키는 강력한 매개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현실에서 접할 수 없는 사건과 이미지, 그리고 대상과 장면을 재배치하고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조합함으로써 감정적인 충격과 놀라움을 주는 초현실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사조라고 볼 수 있다. 벨기에의 르네 마그리뜨는 이런 측면에서 세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초현실주의 화가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꼽을 수 있다. 초현실주의 거장, 마그리뜨가 사용하는 방법이 다름 아닌 데페이즈망 방법 또는 위치전위법이다. 데페이즈망 방법이란 우리에게 친숙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들을 동일한 화폭에 결합시키거나, 어떤 오브제를 전혀 엉뚱한 환경에 위치시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기법이다. 한 마디로 늘 익숙하게 접했던 것을 낯설게 조합하거나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결함함으로써 당혹감과 충격, 놀라움과 신비감을 주는 초현실주의적 화법이다. 진중권은 ‘미학오디세이 2’라는 책에서 데페이즈망 기법은 어떤 사물을 원래 있던 환경에서 떼어내 엉뚱한 곳에 갖다놓는 '고립', 독수리를 돌의 재질과 같이 변형시키는 식으로 사물이 가진 성질 가운데 하나를 바꾸는 '변경', 성채와 나무 밑 둥을 결합하는 식의 '사물의 잡종화', 작은 사물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하는 식의 '크기의 변화',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두 사물을 나란히 붙여놓는 '이상한 만남', 두 사물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 하는 '이미지의 중첩',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이 한 그림 안에 존재하는 '패러독스' 등의 방법으로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마그리트의 대표작 ‘이미지의 배반(the betrayal of images)을 통해 상상력을 기반으로 일상의 사물,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언어, 믿어 왔던 상식이나 고정관념 등을 뒤흔들어 놓는다.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이성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 상상력의 세계를 회복시키고 인간정신을 해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은 21세기적 하이브리드 문화로 새롭게 계승․발전되고 있다. 흔히 접했던 것을 색다른 방법으로 결합함으로써 뜻밖의 충격과 효과를 줄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함으로써 놀라움과 경이의 체험을 제공하는 데페이즈망 방법은 초현실주의 화가가 사용하는 방법을 넘어서서 일상에서 창조적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전환될 수 있다. 본래 창조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활동이이라기보다 기존의 유(有)와 유(有)를 남다른 방식으로 엮으면 제3의 새로운 유(有)가 탄생하는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데페이즈망 기법은 익숙한 이미지를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낯선 방식으로 조합함으로써 새롭게 창작하는 방식이다. 어떤 사물을 원래 있던 환경에서 떼어내 엉뚱한 곳에 갖다놓는 '고립'을 통한 창조적 변종(變種) 또는 이종결합(異種結合)을 추구하거나 '사물의 잡종화' 방법을 통해 이제까지 접목되지 않았던 새로운 창조물을 탄생시키는 방법이 다름 아닌 데페이즈망 방법이다. 데페이즈망 방법은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두 사물을 나란히 붙여놓는 '이상한 만남'이자 ‘낯 설은 충격’이지만 두 사물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 하는 '이미지의 중첩'을 통해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여줌으로써 창조적 상상력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수 있다


신발에 센서를 부착시켜 사용자의 상태를 점검하고 음악과 목소리로 운동하는 사람을 독려하고 좋은 기록을 유도하는 나이키 신발도 데페이즈망 방법을 활용한 신제품이다. 도마뱀 로봇(Stickybot)이라는 로봇을 발명한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한국인 김상배씨는 도마뱀의 발과 로봇을 결합시켜 수직의 벽도 쉽게 올라갈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 2006년 Time지가 선정한 올해의 과학 발명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정수기 위에 있는 물통 대신에 소주병을 크게 제작하여 꽂아 놓으면 소주 정수기가 탄생한다. 빨간 버튼을 누르면 따뜻한 정종이 나오고 파란 버튼을 누르면 차가운 사케가 나온다. 소주와 정수기의 낯선 조합으로 소주 정수기가 탄생한 것이다. 소주나 맥주는 액체 상태로 마셔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가습기에 채우는 물 대신에 소주나 맥주를 채우면 술을 액체 상태로 마시지 않고 기체 상태로도 마실 수 있는 새로운 음주법을 탄생시킬 수 있다. 비단 소주나 맥주뿐만 아니라 자신이 마시고 싶은 술을 종류별로 물 대신에 가습기 물통에 집어 넣고 마시고 싶은 양만큼만 분사량을 조절한다면 이제 음주를 기체 상태로 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릴 수 있다. 이런 이미지의 낯선 조합은 언뜻 장난처럼 보이지만 본래 창조는 난동을 일으키는 작란(作亂)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작란하면서 노는 장난과 놀이가 창조적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되는 셈이다. 창조는 놀이나 유희 충동에서 비롯된다는 심리학자 칼 융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낯선 것을 익숙하게 바꾸는 것이 일이라고 한다면 익숙한 것을 낯선 것으로 바꾸는 행위를 놀이라고 한다. 놀이가 언제나 재미있고 기대가 되는 이유는 어제와 다른 낯선 방법으로 변형 또는 변용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놀고 있으면 ‘놀고 있네’라는 비아냥거리거나 장난을 치면 ‘장난하고 있냐 지금’이라고 바로 핀잔을 주기 일쑤다. 창조는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이상의 정보나 사물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색다르게 조합하는 데페이즈망에서 유래된다면 재미있고 즐겁게 놀고 장난치는 가운데 전대미문의 창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너무 엄숙하고 무거운 권위주의적 일터 분위기나 문화를 하루 빨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의미를 찾아 재미있게 하는 방법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재미있어야 의미 있고, 의미 있어야 재미가 따라온다. 재미와 의미 없이 몰입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몰입 없이 창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s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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