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를 무시하면 ‘사이비’가 됩니다!

입력 2010-01-14 03:52 수정 2010-01-15 01:42


‘사이’와 ‘사이비’: ‘사이’를 무시하면 ‘사이비’가 됩니다!

‘사이’가 ‘차이’를 만든다. 사람에 담겨진 본래의 의미를 되살려보면 사람은 어떤 사람을 뜻하는 인(人)은 두 사람이 어깨를 기대로 있는 모습을 형상화시킨 한자라고 한다.   인간(人間)도 사람(人)과 사람(人) 사이(間)를 지칭하는 인간관계(人間關係)의 약자다. 사람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살림살이를 영위해 나가는 존재다. 살림은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며 삶을 바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사람은 삶+앎이 합쳐져서 된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은 살림살이를 통해서 앎을 추구해나가면서 깨우침을 터득해나가는 존재다. 결국 삶도 앎도 모두 나와 다른 사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동양의 인(仁)는 두 이(二)자가 하늘과 땅을 의미한다고도 하지만 사람(人) 둘(二)이 모여서 어진 삶을 추구함을 의미한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어울리고 감흥하면서 만물의 일체감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존재를 나타내는 문자다(이어령, 2003b). 동양의 사람과는 다르게 서양에서 얘기하는 개인(個人)의 ‘개’(個)는 사람이 죽어 딱딱하게 굳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를 지칭하고 있다. 사람 속에 사람의 존재가 없어진 상태, 외부와의 소통관계가 끊어지고 철저하게 고립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상태를 지칭한다. 한 마디로 사람과 사람사이에 관계가 끊어진 관계고장과 관계 장애가 발생한 상태다. 학문적 발전이 개별 분과학문으로 전문화․세분화되면서 학문이 전체적 조망력을 상실하고 딱딱하게 굳어져 학문적 탐구대상 뿐만 아니라 개별학문내 또는 개별학문간 소통이 불통된 상태로 전락하고 있다. 개별 분과학문 내외적으로 심각한 관계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 개별 학문과 개별학문 사이에 소통이 되지 않고 관계 장애가 발생하면 무엇을 위한 삶이며 무엇을 위한 탐구인지를 망각할 수 있다. 나 혼자만 잘하고 내 분야만 열심히 탐구하면 된다는 생각은 결국 심각한 관계 장애를 불러온다.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며 다른 분과학문과 경계를 넘나드는 학문적 소통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관계 장애와 관계가 고장된 상태에서는 사람이 제구실을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인성도 사람다운 인성으로 가꾸어지기 어렵다. 왜냐하면 인성이란 한 인간이 일생을 통해서 맺어온 관계성의 역사적 투영물기 때문이다. 즉 "인성이란 여러 개인이 더불어 만들어내는 장(場)의 개념이다"(신영복, 2004, p.42). 인성에는 타고난 선천적 기질이나 성격도 어느 정도 남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어떤 기질이나 성격을 선천적으로 부여받는다고 해도 그 사람이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맺음을 만들어왔는지에 따라서 인성은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인성과 마찬가지로 한 인간의 능력은 외부와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노력으로 습득된 독립적 역량이 아니라 그 사람이 발 딛고 서 있는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신영복, 2004). 결국 인간도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사회도 수많은 인간관계가 또 다른 인간관계오 연결되어 구성되는 거대한 관계망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깨닫는 것, 즉 각에 있어서 최고 형태는 바로 세계는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세계의 구조에 대한 깨달음이 가장 중요한 깨달음입니다”(신영복, 2004, p. 475). 공부하는 목적도 개별적 사실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서 특정 현상이나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있다.  

세계가 관계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과 사람과 사이 또는 두 가지 이상의 이질적인 학문적 경계에 존재하는 사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함민복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보면 “모든 경계에 꽃이 핀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학문적 경계에 꽃이 피려면 분과학문 사이에 소통이 있어야 한다. 분과학문의 발전이 거듭될수록 분과학문간 경계는 점차 더 높아져 가고 있다. 분과학문간 경계가 높아진다는 이야기는 분과학문간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차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가 최고라는 인식은 우물안의 개구리, 즉 좌정관천(坐井觀天)형 속 좁은 전문가만 대량으로 양산하게 되었다. 지금의 시대는 ‘전문가’(Specialist)보다 ‘전인’(Whole Man)을 요구하는 시대다. 전문가의 전문성이 깊어질수록 타분야에 대해서는 전문적으로 문외한으로 되어가면서 각종 병폐와 역기능을 양산하는 장본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자기 분야에 대한 인식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인접 유관 분야에 대한 몰이해도 함께 깊어가고 있다. 심지어는 자기 분야 내에서도 사용하는 전문용어의 차이로 인하여 전공영역간 사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전공영역간 또는 전문 분야간 벽이 높아지고 경계가 확연하게 구분되면서 자기 분야 이외에서 어떤 시도와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지식은 아는 사이다. 사이에 지식이 존재하고 사이에 지식이 흐른다. 지식은 정적 실체로 존재하는 명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끊임없는 변신을 거듭하는 동사다. 전문 분야와 분야 사이, 전문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사람의 생각과 생각 사이에 지식은 끊임없이 흐른다. 

김광규 시인의 ‘생각의 사이’라는 시를 보면 전문 분야별 사람들의 생각 사이를 고민하는 사람이 없으면 생각은 죽은 생각, 즉 사각(死角)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생각의 사이  

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고
군인은 오로지 전쟁만을 생각하고
기사는 오로지 공장만을 생각하고
농민은 오로지 농사만을 생각하고
관리는 오로지 관청만을 생각하고
학자는 오로지 학문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시와 정치의 사이
정치와 경제의 사이
경제와 노동의 사이
노동과 법의 사이
법과 전쟁의 사이
전쟁과 공장의 사이
공장과 농사의 사이
농사와 관청의 사이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만  

휴지와
권력과
돈과
착취와 형무소와
폐허와
공해와
농약과
억압과
통계가
남을 뿐이다

사이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야 사이를 만들어가는 분야가 살아 숨 쉴 수 있다. 사이는 틈바구니다. 틈바구니는 경계다. 경계에 꽃이 필 수 있도록 경계와 경계 사이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경계와 경계 사이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경계는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구획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경계와 경계 사이를 고민하는 사람이 없어질수록 경계는 넘어설 수 없는 한계로 다가온다. 세상은 수많은 사이가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혼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른 존재와의 사이라는 이름으로 관계로 존재하는 것이다. 사이는 경계와 경계 사이에서 살아가는 빈틈이다. 사이가 나빠지면 벽은 높아지고 건널 수 없는 경계가 생긴다. 벽이 높아지고 경계가 생기면서 넘을 수 없는 벽과 건널 수 없는 경계가 앞을 가로막는다. 경계가 한계로 바뀐다. 친구사이가 적대적 관계로 바뀌고, 애인(愛人) 사이가 애증(愛憎)의 관계로 바뀌는 것도 모두 너와 나, 나와 너 사이를 고민하지 않고 나는 나, 너는 너라는 극단적 자기 중심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진리는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 진리는 언제나 사이에 흐르고 있다. 진리가 경계를 넘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 진리는 편협된 생각에 물들어 자기 분야, 자기가 그어놓은 경계 안에서만 진리로 통용되는 편리함으로 전락된다. 자기 편의주의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진리는 전문 분야 사이와 사이를 흐르지 못하고 한 곳에 정체되어 편안함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편파적 의견으로 전락한다.

유영만, 지식생태학자, 청춘 경영 저자
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s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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