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디자이너’로서의 다산 정약용

입력 2010-01-07 00:07 수정 2010-01-07 00:07


‘지식 디자이너’로서의 다산 정약용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르게 행동하려면 남들과 다른 자극에 자신을 끊임없이 노출시켜야 한다. 남들과 다른 자극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으면 늘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고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된다. 자극이 다르면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진다. 언제나 비슷한 자극을 받는 사람은 비슷한 생각의 틀에서 벗어날 길이 없으며,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비슷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을 색다른 자극에 노출시키는 방법으로 남들이 읽지 않는 다른 책을 읽는 방법이 있다. 남들이 늘 읽는 비슷한 책, 예를 들면 경쟁자도 읽는 베스트셀러만 읽으면 당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준과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전과 비슷한 반복적인 행동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남들이 읽지 않는 책을 읽어야 남들과 다른 발상과 시도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중요성과 가치는 인정하지 만 실제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은 책이 바로 고전이다. 고전은 이미 한물간 책이라고 생각하거나 고전 속의 지혜는 시대적으로 뒤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것을 익혀서 새로운 지식을 창조한다는 말이다. 고전 속에 미래가 들어 있다. 고전은 단순히 과거의 책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지혜의 보고(寶庫)다. 고전은 과거에 쓰여졌지만 지금의 현실을 말해주고,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혜안을 제공해준다. 고전을 통한 배움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지혜에서도 얻을 수 있다. '법고'란 옛 것을 본받지만 옛 자취에 매몰될 수 있는 문제점이 있고, '창신'이란 옛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만 상식을 벗어나기 쉬운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예 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통할 줄을 알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서도 법을 지킬 줄 안다면, 다시 말해 ‘법고’와 ‘창신’을 병행한다면 오늘날에도 고전과 같은 훌륭한 글을 지을 수 있다. 수많은 고전이 있지만 다산 정약용이 저술한 500여권의 책은 지금 읽어도 지금을 살아가는 안목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얻을 수 있다. 다산은 18년간 약 500여권의 책을 썼다고 한다. 년 간 평균 28권을 썼으니 한 달에 2권 이상의 책을 썼다는 이야기다.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이라는 책을 쓴 한양대 정민 교수는 “세계의 정보를 필요에 따라, 요구에 맞게 정리해낼 줄 알았던 전방위적 지식경영가”로 평가하고 있다. 그야말로 지식편집의 귀재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과 같이 인터넷도 없었고, 글쓰기를 도와주는 컴퓨터도 없었다고 생각하면 다산의 왕성한 저술력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산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방대한 저술 작업을 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을까? 우선 다산은 일상적 삶 자체를 저술의 원천으로 생각했다. 다산의 일상은 저술에 필요한 아이디어의 보고였다. 맹자가 학문하는 방법 중에 좌우봉원(左右逢源)이라는 말이 있다. 가까이 있는 것을 취해 학문의 근원까지 파악한다는 뜻이다.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방법으로 하되, 가까이에 있는 것부터 깊이 연구해 그 근원까지 탐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산은 하찮은 일상을 남다른 호기심으로 파고들면서 ‘질문의 그물’을 던졌다. 물음이 답을 결정한다. 묻지 않으면 답은 나오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물어보느냐에 따라 내가 얻을 수 있는 답의 성격과 방향을 결정한다.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없다. 이유없이 존재하는 생명체는 없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다 존재이유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복잡하고 산만하게 그냥 거기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잘 보면 무질서 속에서 질서가 보이고 패턴이 발견된다. 패턴을 발견하면 법칙을 정립할 수 있고 법칙을 알면 가까운 미래 현상을 예언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다산은 하찮은 자연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삶의 진리를 캐내려고 호기심으로 물어 보았다. 답은 도처에 존재한다. 다만 묻지 않기 때문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다산이 방대한 저술을 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원동력은 질문의 그물에 걸린 수많은 데이터를 일정한 구조와 틀로 엮어서 정보를 만드는 편집과 가공능력이다. 질문의 그물에 걸린 다양한 사실과 현상을 관심을 갖고 관찰하면서 일정한 분류체계에 따라 기록하면서 체계화시키고 구조화시켜 책을 완성하는 방법을 썼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정보가 없어서 문제가 생기기보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문제가 생기는 시대에는 도처에 산재하는 정보를 어떻게 분류하고 정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경쟁력으로 등장한다. 다산은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주제에 따라 분류하고 체계화시키는 과정을 습관처럼 반복했다. 방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축적, 필요한 주제에 따라 뼈를 만들고 살을 붙여서 책을 만드는 놀라운 정보가공술을 발휘하였다. 다산은 책 한권을 완성하고 나서 다음 책을 구상하지 않고 동시에 여러권의 책을 썼다. 한 권의 책을 쓰면서 또 다른 책의 아이디어로 발전시키면서 양수겸장(兩手兼將), 일거양득(一擧兩得)의 전략으로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썼다. 한 마디로 도랑치면서 가재도 잡고,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은 전략으로 동시병행적 글쓰기를 시도한 셈이다. 일상에 대한 관찰에서 통찰력을 얻고 통찰력을 근간으로 새로운 지식을 창조했던 다산이야말로 삶을 통한 공부, 공부를 통한 삶을 완성시키려고 치열하게 노력했던 사람이다.

‘지혜’는 ‘지식’을 반복해서 축적하는 가운데 어느 날 갑자기 발현된다. ‘지식’은 ‘정보’를 실제 문제 상황에 적용하면서 느끼는 깨달음의 결과 탄생한다. ‘정보’는 ‘자료’를 구조화․체계화하는 가운데 일정한 틀을 갖추게 된다. 자료에서 정보로, 정보는 다시 지식으로, 지식은 결국 지혜로 발전한다. 지혜를 얻으려면 일상과 주변에 산재한 자료를 수집해야 되고, 수집된 자료는 그냥 방치하면 아무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된다. 엮어야 정보가 탄생한다. 정보는 다시 문제상황에 적용하면서 자신만의 깨달음과 고통체험이 가미되면 비로소 지식으로 탄생한다. 정보는 많지만 지식이 많지 않은 이유는 남의 정보든 내가 가공한 정보든 정보를 내가 직접 적용해보면서 깨달음을 얻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공유는 주장하지만 정보가공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절대로 정보는 지식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정보에 나의 문제의식, 나의 고뇌와 체험이라는 양념이 가미될 때 맛있는 나의 지식으로 탄생한다. 다산은 삶이 공부였고 공부가 삶의 전부였다. 눈먼 시대 눈을 뜨게 하는 지식은 남의 눈에서 나오지 않고 나의 눈에서 나온다. 나의 관점과 문제의식으로 내가 직접 몸의 체험을 통해 깨달은 지식이야말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해준다. 다산은 눈먼 시대 세상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주는 이 시대 진정한 지식인이었다.
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s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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