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 묻고싶다.

입력 2014-03-03 08:40 수정 2014-03-03 08:40
올해의 첫 칼럼은 즐거운 주제를 가지고 쓰고 싶었다.
미루다보니 두 달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화가 머리끝까지 나게 만드는 기사를 읽고나니, 더 이상 좋은 일을 기다릴수가 없었다.조금만 시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기사를 읽었을터이다. 식당일을 하던 어머니가 넘어져서 팔을 다쳤다. 당장 수입이 끊어지니 하나는 병을 앓고 있고, 다른 하나는 신용불량으로 마땅한 직업이 없던 딸 둘과 함께 꾸리던 생계가 막막했다. 그들은 어렵게 마련한 월세와 전기세 등을 담은 봉투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정말 화가 나는 사실은 그들이 남긴 봉투에는 오히려 미안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힘든 세상에 원망의 단어 하나를 남기지 않았다. 그들이 죽음을 결심하게 만든 이 나라와 사회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없이 주인에게 죄송하다는 표현만 두 번이나 써놓았다.기사를 읽은 날은 하루종일 비참했고, 도저히 살아갈 길이 없어 죽음을 결심하고나서, 세 모녀는 얼마나 서로를 위로하며 울었을까하는 생각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맻힌 60여년의 세월을 피땀으로 살아낸 어머니와, 아직 이루고 싶은 삶을 펼쳐보지도 못했을 두 딸의 죽음에 우리 사회는 분명히 책임이 있다.보편적 복지를 이야기할 때마다 많은 정치가들과 일명 보수 단체들이 들고 일어나서 포퓰리즘이네 어쩌네 떠들어댄다. 아직도 경제관료들과 정부부처들은 성장위주의 정책으로 일관하던 옛날에 붙잡혀있다. 언제쯤 사회구성원들이 희생하며 이만큼 이루어놓은 풍요를 골고루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지, 아니 이미 알면서도 못하고 있는 이 상황이 어느 세월에나 변화할지 막막하다.세계 몇 위의 경제 대국이라고 뉴스는 외치지만, 눈만 돌리면 우리의 노인들은 길가에서 폐지를 줍고 있으며, 수 많은 아이들이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하고 있는데도, 경상수지가 24개월째 흑자라고 포털을 뒤덮는다.더욱 화가나는 것은 세 모녀의 죽음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이룬 보편적 복지에 대한 절실함이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른 뉴스들로 잊혀져 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언제까지 우리가 엄마의 팔이 부러지면 세 모녀가 자살해야 하는 나라에 세금을 내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냐고 이 나라의 정부에 묻고싶다.
제 가슴이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마음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머리로 계산하고 이익부터 따지는 문명을 버리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심장으로 기억하는 새로운 문명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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