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자.

입력 2006-08-28 01:54 수정 2006-08-28 02:04
아이는 혼자 자랄 수 없습니다.

힘도 없고 방법도 몰라서 부모가, 사회가 그들을 이끌어주고 지켜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라는 말의 폭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유치한 행동이나 생각에 대해 우리는 애들 같다는 말로 지적합니다. 요즘은 이 애들 같은 어른들이 점점 우리 주위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어떤 작가가 조금 이름이 알려지게 되자 기자가 물었습니다.

“이제 원고료를 더 받으니 여유가 생기셨겠어요?”

“아뇨. 그 부분에서는 무명 때가 더 좋았죠.”

“왜요?”

“돈 떨어지면 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 하면 됐거든요.”

 

‘캥거루족’ 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릴 때 부모의 주머니에서 편히 살던 버릇을 못 버리고, 커서도 주머니 속에서 지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입니다. 부모의 주머니 속은 안전과 안락함이 보장되어 있는 곳이니까요. 때로는 부모가 다 큰 자식을 자기 주머니에 넣고 내놓으려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면 ‘철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이를 많이 먹어서 일까요?

‘철들자 노망’ 이라는 표현에 들어맞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처음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와 스승과 선배, 동료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지원과 보호의 손길에서 벗어나 혼자 나아가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그들에게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우리를 도와 주느라 지쳤고, 이제 우리가 당당하게 혼자 나가는 모습을 보고싶어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날아오르지 못하는 우리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우리가 혼자 시작한 후에도, 계속 우리 주위에서 필요할 때 손을 뻗기 위해 지켜 봐주고 있을 것입니다.

 

수타니파타경에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했습니다.

물론 깊은 뜻은 다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혼자 세상 속으로 걸어갈 때를 알아야 합니다.

한발 내딛어보면 그 다음 발걸음부터는 다소 가벼워질 것입니다.

 

발걸음이 너무 무겁다고 느꼈다면 우리는 비로소 처음으로 삶의 무게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슬퍼해야 할 일이 아니라,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내 삶이 주인을 찾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제 가슴이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마음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머리로 계산하고 이익부터 따지는 문명을 버리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심장으로 기억하는 새로운 문명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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