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설날 연휴를 맞아 필자의 지인의 추천으로 영화‘ 그을린 사랑’을 보러갔다.

그을린 사랑은 내겐 충격이었다. 점점 드러나는 어머니의 처절한 과거, 전쟁은 인간의 모든 기본적 윤리들을 송두리째 뭉개버리는 가공할 만한 게임이라는 걸 알게 된 두 남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필자 역시 뭔가 얻어 맞은 듯 기분이 이상했다.

자식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영화를 떠나 우리는 살면서 너무도 많은 사건들에 직면하게 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갈등’이란 너무도 필연적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는 것이다.

“용서할 수 있을 만큼 용서하라”는 말이 있는 데, 상대를 용서하지 않고 궁지로 내모는 것, 복수를 위해 이를 가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활 환경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의견 차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상대의 의견이 이치에 맞지않으면 그가 항복할 때까지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킨다. 그런데 전쟁의 사유가 너무도 기가 막힌다.

나와는 다른 이교도는 처단하고 학살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종교로서의 의미를 잃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람도 마찬 가지다.
자신과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고 배척하는 것 자체가 내공이 부족한 것이다. 자신만의 의견을 고집하는 것은 독재자마인드인 것이다. 이는 신념과는 다른 것으로 고집불통의 자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원제 Incendies는 불어고, 영어로는 Scorched인데, 우리말로는 '그을린' 이라는 뜻이다. 여주인공의 사랑은 레바논 내전을 통해 '그을리고' 비극적인 결과를 빚는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사랑하는 장면 같은 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레바논의 기독교도인 여주인공 나왈이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인 무슬림과 사랑하나, 당시 서로 적대관계이던 두 세력간의 극심한 갈등으로 나왈의 가족에 의해 연인이 죽으면서 나왈의 비극은 시작된다.

영화는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쌍둥이 남매는 유언장을 받아들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유언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문을 하고 있었다. 첫 번째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를 찾아 내 편지를 전달할 것. 두 번째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큰오빠를 찾아 내 편지를 전달할 것. 세 번째, 앞선 두 개의 주문이 달성되지 못할 경우 제대로 된 장례를 치루지 말 것. 남매는 유언을 따라 어머니의 인생을 관통하는 여정에 오른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와 오빠를 찾아낸다. 모두 마주한 그 길 위에서, 그들은 말이 없다.

줄거리를 요약해서 쓰면 이 영화를 볼 분들에게 예의가 아닐 것이다. 이 영화는 나왈이 죽으면서 남긴 유언장에 따라 그녀의 쌍둥이 아들딸이 자신들의 태생과 어머니의 과거를 추적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처절한 비극은 결국 레바논 내전, 즉 기독교도와 무슬림 간의 지금도 끝나지 않는 경제적, 종교적 갈등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영화의 무대는 가상의 중동 국가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 속 에피소드들을 지켜보면서 곧 이 공간이 레바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잠시 역사적 맥락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레바논은 비잔틴 제국의 영토일 때부터 뿌리깊은 기독교(마론파) 지역이었다. 그랬던 것이 오스만 제국에 지배되면서 급속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결국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가 5:5 정도의 비율을 이루게 되었다. 세계대전과 이스라엘 건국 이후 요르단 내전을 거치면서 고향을 빼앗긴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레바논에 유입되었다. 자연히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는 기독교 민병대와 이슬람교도의 지원을 받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사이에 내전이 발생했다. 복수와 그에 대한 복수와 다시 그에 대한 복수가 이어지던 나날들이었다. <그을린 사랑>은 바로 이 시기를 다루고 있다. 어머니는 기독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좇아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가담했었다. 쌍둥이 남매는 아버지와 오빠를 찾기 위해 그 때 그 시절을 추적해야만 한다.

영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선 진실을 찾을 것. 그리고 모든 것이 명백해졌을 때, 함께 살아갈 용기와 의지를 갈구할 것. <그을린 사랑>은 진실을 안다는 것의 고단함과 피폐함,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갈 의지를 모색하는 행위의 숭고함에 대해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외치는 영화다. 자기 반성에 대한 최소한의 의지조차 망각하고 수만가지 서로 다른 낯빛과 변명으로 자기만의 주관적인 역사를 창조해내는 사람들의 나라에서, 이 영화의 생떼는 매우 선명하고 처연하게 우리를 겨누고 있다.
‘사람이 이치를 모른다는 것은 단점이고, 이치를 고집하는 것은 맹점이다’라는 명언이 있다.

자신의 행동이 옳을 경우 타인을 용서하는 태도가 기고 만장한 태도보다 타인을 설득하고 변화시키는 데 더 효과적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그들의 형제이자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 무덤에 찾아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처절한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자신이 옳다는 걸 세상이 다 아는 데, 상대를 몰아붙일 필요가 있는 가 에 대한 용서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아나운서 이서영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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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내커 칼럼니스트 이서영
-프리랜서 아나운서(SBS Golf , YTN, ETN, MBC,MBC SPORTS, NATV, WOW TV 활동)
-국제 행사 및 정부 행사 영어 MC
-대기업 및 관공서 등에서 스피치, 이미지 메이킹 강의
-국민대, 협성대, 한양대, 서울종합예술학교 겸임 교수 및 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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