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함께했던 2002 월드컵, 그 혁명의 기록

입력 2006-05-28 10:22 수정 2006-06-28 17:49
1. 프롤로그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중요한 경기가 있던 시각마다 공교롭게도 나는 대산선생님의 주역수업을 듣고 있었다. 이제 장도에 오르는 한국팀의 선전을 기원하며 이 글을 올린다 -




4년전 그 때,  그저 월드컵을 개최만 하면 무슨 수라도 날 듯 미리부터 방송에서는 떠들어댔고, 6월 한달은 온나라가 온전히 월드컵을 따라 춤을 추었다. 그렇지만 모래성을 쌓았다가 부수고 부수었다 쌓는 것이 도대체 무슨 得失이 있으랴 싶었다. 세계 40위 권의 한국축구가 32팀으로 축약된 월드컵 본선에 오른 것 만으로도 장한 일이 아닌가? 그만하면 된 것이건만, 한번만 이겨도 천행일 것이요, 16강 진출이란 꿈은 특별한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수학적으로는 계산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국민의 기대만 부풀려놓았다가 만일 실패라도 하면 어찌할까가 오히려 걱정이었다.




2. 서울, 6월 4일 저녁 6시반, 대학로  ; 대폴란드전

대학로에서 주역강의가 있어 혜화 전철역을 무심코 내린 나는 눈과 귀를 의심해야 했다. 천지를 울리는 대~한민국의 함성과 붉은 옷을 입은 젊은이들로 전철입구부터 꽉 매여서 불과 30m떨어진 강의장소로의 진입이 불가능했다.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다보니 나중에는 눈감고도 찾을 수 있는 코앞의 좌표조차 머릿속에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급기야는 어떤 사람이 내가 방금 나온 혜화전철역을 묻자 나는 반대방향을 가리켜주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말았다.

사람의 밀림속을 어찌어찌 헤매다가 간신히 거꾸로 뒷골목으로 들어가서야 건물에 접근했고, 천신만고 끝에 강의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후유하고 한숨을 내쉬며 강의실로 들어섰지만 나는 다시 한번 경악을 하고 말았다. 우리 강당의 아래가 바로 붉은 악마들의 본부였던 것이다. 대형 스크린과 무대가 강의실 바로 앞에 펼쳐져 있어서, 귀를 멍멍하게 만드는 마이크음으로 교실은 진동하고 있었다. 경기도에서 강의를 들으려고 전철에 이리 밀리고 저리밀리며 1시간 반 동안 백리길을 달려온 나에겐 참으로 맥빠지는 일이었다.

사실 나는 헛된 꿈에 최면이 걸린 한국축구에게, '되지도 않을 일을...'하면서 마음속엔 이미 승패를 판정해놓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된 바에 그래 봐주자, 오죽하면 저러겠나 싶어 그렇게라도 해서 한번이라도 이기면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한국이 1승을 기록한다고 하니, 강의를 하루 못들어도 어떠하리! 나는 짧은 순간에 큰마음을 먹고 저들을 용서해주리라고 마음먹었다.




“오늘 渙卦네요. 흩어지면 모이고 모이면 흩어지는 것 아닙니까? 오늘 우리 강의는 저 밖으로 사람들이 흩어져서 무리를 이루었고(六四 渙 其羣 元吉 渙 有丘匪夷所思), 흩어진 사람들을 모으려면 정성을 모아서 民心을 얻어야만 큰 내를 건널 수가 있네요(渙 亨 王假有廟 利涉大川)! 다만 보통 사람은 생각할 바가 아니라고 했으니(匪夷所思), 깊이들 생각해보세요.”




그리고는 잠시후에 나는 평생 들어보지 못한 엄청난 함성속에 파묻혀버렸다... 우리가 기적처럼 이기고 있었다...







3. 6월 18일, 대이탈리아 8강전

온 나라가 들썩였다. 공동개최국 일본은 16강에서 그쳤고, 덩치 큰 이웃 중국은 수업료만 내고 우리의 활약을 배아파했다. 우리는 승승장구하는 여세를 몰아 이탈리아마저도 꺾을 수 있을 것처럼 기세등등했다. 사람들은 역사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붉은 옷을 입고 시청 앞 광장으로 나섰다. 학교에서 얼굴에 울긋불긋 분칠을 하고 온 집아이들이 선생님과 저녁에 시청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보채는 애들 손잡고 시청 앞 광장에 나가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살아있는 축구의 전설이었다.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경기에서 아이들에게 한국축구가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대신에 1시간 반을 붉은 옷으로 넘실대는 전철을 타고가서 말씀을 들었다.




“건너고 나면(旣濟) 못건너네요(未濟). 오늘 우리가 건너겠습니까 못건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날도 마법처럼 정말로 꿈은 이뤄져가고 있었다. 아니, 우리가 축구의 교과서 이탈리아를 무너뜨리다니! 그 날 또 우리 모두는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기적을 이루었다. 아! 이럴 수도 있구나! 현해탄도 만리장성도 구만리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작은 먼지에 불과할 뿐이었다. 젊은이들은 너나없이 아무 차나 올라타고 길거리를 질주했고, 버스 지붕 위에 올라가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4. 새로운 시작 : 꿈★은 이루어지리라

무한대로 펼쳐지던 우리의 꿈이 3․4위 전에서 또다시 현실을 만났다. 아쉬웠다. 이길 수도 있었건만! 그 아쉬움을 뒤로 남긴 채 우리는 울지 않았다. 그 날 우리는 거침없이 승자의 손을 들어주었고, 함께 뛰놀았다. 월드컵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역사의 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우린 좁고 어둔 과거의 터널을 벗어났고, 자유로운 미래의 빛을 보았다.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언제 저렇게 성숙했던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승리의 영광에 자만하지 않았고, 패배의 아픔에 좌절하지 않았다.

취했던 꿈에서 깨어나던 날, 나는 또 주역의 새로운 장을 듣고 있었다. 상하경이 끝나고 계사전 첫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날 선생님은 또 주역을 공부하는 중요한 방법을 말씀하셨다.




“주역은 格物致知를 할 줄 알아야해요. 우리가 渙卦 공부하던날 얼마나 큰 함성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지 않았습니까?(九五 渙 汗其大號 渙 王居 无咎) 16강전을 할때에 대전에서는 동인괘를 공부했어요. 사람과 함께 외치고 큰 군사가 싸움에서 이기지 않았습니까?(九五 同人 先號咷而後笑 大師克 相遇) 환괘에도 동인괘에도 부르짖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旣濟에서는 高宗이 鬼方을 이긴다고(九三 高宗 伐鬼方 三年克之) 했습니다. 자연 그대로입니다. 이런 것을 보아야 합니다. 이게 격물치지입니다. 이게 바로 주역이에요.

주역은 쉬운 것입니다. 쉽게 볼 줄을 알아야 합니다. 올해 우리나라 운세가 뭡니까? 임오년으로 작괘를 해봐요. 壬은 9번째 천간입니다. 작괘를 하려면 八卦니까 8을 제하면 1이 남습니다. 一乾天으로 상괘를 짓고, 午는 7번째 地支이니 그대로 七艮山으로 하괘가 되어서, 天山遯卦가 되네요. 乾卦는 雜卦傳에서 大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붉은 옷을 입는 것이 나와요. 艮卦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아시아의 동북방 우리나라지요. 乾卦는 하늘이니 天圓입니다. 둥글어요. 공이 둥글지요. 또 乾은 말이라고 했습니다. 소는 뛰지 못하지만 말은 뜁니다. 艮方에서 둥근 공을 가지고 말처럼 뛰는 상이 있네요. 이게 뭡니까? 월드컵입니다. 임오년의 월드컵입니다. 동효를 구해보면, 壬午의 수를 합한 16을 六爻니까 6으로 제하면 4가 남습니다. 즉 四爻 動이죠, 4位가 동했으니, 4강이 되고 4位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또 돈괘는 卦體가 4陽2陰아닙니까? 陽은 剛하고 陰은 弱하니, 승패로 말하면 4승2패가 되네요.

돈괘는 도망치는 때입니다. 우리의 현재 국운이 그렇습니다. 動爻를 구하면 돈괘가 風山漸으로 변하니, 물러나는(雜卦傳 : 遯則退也) 상황인데, 나아갑니다(漸卦 彖曰 漸之進也). 우리의 국운도 물러나다가 이제 점차 나아가는 것으로 변하네요. 그럼 누가 나아갈까요? 누가 주인이 되느냐? 漸卦 六四 爻辭에 ‘기러기가 나무에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이 뜻을 잘 생각해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에서 열가지 백가지 천가지가 나옵니다. 주역은 쓸 줄을 알아야지, 뭐가 나왔다고 그거 하나만 가지고 고지식하게 보아서는 역이 아닙니다. 변화할 줄 아는게 역입니다.“




나는 그렇게 월드컵을 주역으로 읽었다.

공은 둥글고 승부는 돌지만,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서 우리가 치른 월드컵 속에는 의미가 있었다. 진심으로 찾고 구하는 자에게는 머지않아 꿈이 이루어지리라는 징조가 있었다. 뙤약볕에 쓰러져가면서도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모여든 젊은 그들이여, 길거리에 나앉아서도 책을 들고 공부하던 맑은 눈동자들이여,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거리 거리를 말끔히 치우던 그 깨끗한 손들이여! 그 순수한 마음이여! 언제나 현실은 어렵고 미래는 험난할지라도, 우리는 이렇게 변화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클 것이다.

그것은 쌓았다 부숴지는 모래성이 아니었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아니었다. 축구는 축구가 아니었다. 혁명이었다. 말로만 떠들어대는 혁명이 아니라, 온 국민을 한덩어리로 일으켜세운 진정한 혁명이었다.

 축구를 통해 역사를 고쳐쓴 우리 젊은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2002 한일월드컵, 그 축구를 통해 이룩했던 젊은 혁명의 이면에 내가 보고 우리가 함께 목도했던 작은 개인의 역사를 적어둔다.

 

2006월드컵에서도 당당한 우리의 힘을 보여주기를 바라며!

힘찬 기상과 젊은 꿈이 만나 무궁한 국운을 열기를 바라며!


현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철학박사 , 주역과 도교철학을 중심으로 중국철학을 전공했으며, 중국문화 사상사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저서로는『주역 왕필주』, 『왕필의 老子注』, 『術數와 수학사이의 중국문화』, 『언어의 금기로 읽는 중국문화』등이 있다. 2011수필부문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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